1월 2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인사’와 ‘취업규칙 지침’ 등 노동개혁 양대 지침을 발표했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이번 지침은 일반해고 부분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기존 판례와 외국 사례를 검토해 해고 기준을 정당하게 제시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3월 17일부터는 해당 지침 정착을 위한 지원단까지 운영하고 있다.

  노동 관련 단체들은 이번 지침을 두고 행정권의 남용이라며 반발에 나섰다. 사실상 ‘쉬운 해고’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양측의 갈등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저성과자 해고 지침의 내용과 문제점을 살펴봤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지역본부(본부장=윤종광)는 1월 26일 전주 구(舊) 코아백화점 앞에서 정부의 2대 행정지침에 반대하는 선전전을 펼쳤다. 사진제공|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저성과도 해고 이유로 추가해
  법률상 해고는 ‘사업장에서 실제로 불리는 명칭이나 절차와 관계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와의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다. 현행법과 판례는 해고의 종류로 크게 세 가지를 허용하고 있는데, 경영상의 어려움에 따른 정리해고, 명예훼손 및 근무 태도 불량 등에 따른 징계해고, 그 외의 정당한 이유에 따른 일반해고가 그것이다.

  대법원은 일반해고가 가능한 정당한 이유에 대해 “노동자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 정도가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라고 판시했다. 부상·질병 등 신체적·정신적 결함 혹은 장애로 인해 근로 계약상 노무 제공을 할 수 없는 경우 등이다. 위의 조건으로 근로자를 해고하면 통상적으로 징계가 아닌 퇴직으로 처리돼 ‘통상해고’라 불리기도 한다.

  이번 지침은 위의 조건에 저성과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성과자로 판단되는 근로자가 교육과 배치전환으로도 업무능력 개선이 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임영(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침은 저성과자를 신체적·정신적인 결함 내지 장애가 있는 무능력자로 취급한다”며 “근로계약상 근로제공을 할 수 있음에도 사용자가 기대하는 성과에 이르지 못하면 해고할 수 있게 하는 지침인 셈”이라고 말했다.

 

헌법과 법률 무시하는 행정지침 
  전문가들은 이번 지침이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헌법 제32조 제3항을 우회하고,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요건 역시 일탈하는 지침이라는 것이다. 김선수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헌법상의 근로권과 근로조건 법정주의,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해당 지침은 위헌·위법적인 내용을 무리하게 담고 있어 행정권의 남용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지침 도입의 근거로 삼은 판례들 역시 일부 하급심의 경우라 정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덕 법무법인 새날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판례는 실적 부진이 징계의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해고의 사유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무한 경쟁과 고용 불안을 야기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모든 일자리를 고용불안으로 내몰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태롭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며 “고용안정이 모든 노동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격한 요건과 안전망 먼저 갖춘 외국
  ‘저성과’ 관련 해고 제도를 실제로 운영 중인 나라는 저성과 이외의 다양한 조건이 엄격하게 충족돼야만 해고를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자에게 주어진 목표가 실현 불가능했거나 저성과의 원인이 직무능력 부족이나 비행에 있지 않거나 사유가 중대하지 않으면 법률상 해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조임영 교수는 “프랑스에서 해고와 관련해 성과부족은 그 자체로는 해고사유가 될 수 없고 해고사유를 구성하는 하나의 징표에 해당하거나, 부수적으로만 고려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성과의 책임이 노동자에게만 전가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독일의 경우 사용자가 직접 저성과가 노동자의 개인적 사유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며 “해고 예고 시에 노동자 본인과 노동자대표의 이의제기권이 보장되는 등 보다 엄격한 절차가 마련돼 있는 것도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포괄적인 사회 안전망 구축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지침을 실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승윤(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93년 덴마크 노동 시장 개혁 때도 관대한 실업 급여와 기술 향상 및 직업 훈련을 통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함께 이뤄졌다”며 “노동개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진행하는 경우,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한 안정화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역시 2015년 12월 펴낸 ‘선진국 노동시장 개혁 사례 연구’ 보고서에서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선진국보다 사회안전망의 포괄범위와 수준이 낮다”며 “실업 급여 보장이나 재취업 지원 고용 서비스 등의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채 저성과자 해고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