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 지나들 수 있는 문을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면 토끼를 따라 토끼굴에 들어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느낌이 든다. 서점을 기대하고 도착한 지하엔 꽃다발부터 보였다. 잘못 왔나 생각이 드는 순간, 시집 열 댓 권을 손에 쥐고 있던 서점 주인이 나타나 책을 정리할 테니 잠시 구경하란 말을 남겼다. 짙은 청록색 벽지가 지하 공간을 한층 어둡게 보이게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책상과 책장 가득 시집들이 놓여있다. 서점보단 누군가의 서재란 느낌이 드는 이곳은 시집과 시와 관련된 책을 파는 ‘다시서점’이다. 이곳의 주인 김경현(남·30) 씨는 시집 ‘시월세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가 좋아 시를 쓰고, 시집을 파는 그에게 독립서점을 차리고, 시를 쓰는 이유를 물었다.  

 

▲ 김경현 대표는 시가 좋아 독립서점인 '다시서점'을 차렸다. 사진 | 서동재 기자 awe@

 

- ‘다시서점’을 차린 이유는 무엇인가
“서점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서점을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집, 시인의 산문류를 취급한다. 독립출판물의 경우 시와 에세이 위주로 입고를 받고 있고, 기성출판물들은 시집이나 시인과 관련된 책, 시인이 쓴 산문을 사들여와 팔고 있다. 독립출판하는 시인들의 책은 대형서점에서 팔지 않다 보니 더 많이 팔린다. 최근 들어 컨셉 서점, 독립출판물을 위주로 하는 서점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서점은 인디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타겟이 확실하다보니 일반 서점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독립출판하는 친구들도 이곳에 들러 새로 나온 시집이나 문학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 최근 SNS 시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SNS 시는 ‘좋은 카피’라고 생각한다. 다만 SNS 시는 시의 장르는 아닌 것 같은데 행간으로 나눠져 있어서 사람들이 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순간을 공감하긴 하지만 그 시에서 삶을 봤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이런 종류의 시는 쉽게, 금방 읽힌다. 마치 과자 같다. 과자도 좋지만, 과자만 먹으면 안 된다. 밥도 먹어야 한다.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해서 옳은 건지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한다. 위로 받고 싶을 수는 있지만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SNS에서 시를 쓰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가벼운 시를 쓰는 건 아닌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   

 

- 본인의 직업은 시인인가 서점주인인가
“기성시인들도 시만 쓰지 않는다. 교수로 학교에 나가 강의도 하고, 농부인 사람도 있고. 보통 투 잡(two job)은 기본이다. 시란 건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나도 그냥 내 삶을 사는 것이다. 강의는 불러주니까 나가고, 책방은 하고 싶었으니까 운영하고 있고. 다만 시 쓰는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시인으로 불린다. 시 쓰는 일은 돈 벌기 위한 직업이라기보다는 평생 해야 하는 업에 가깝다. 남이 나를 시인이라 불러주게끔 시인으로서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시인은 명예스러운 칭호니까.”

 

- 시를 왜 쓰는가
“예전엔 왜 시를 쓰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시를 쓰면 삶을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요즘 말로 하면 힐링이고, 꼰대같이 말하면 정신수양이다. 사람들이 왜 시를 쓰냐고 하면 나는 ‘사람을 위해서’ 시를 쓴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이든, 나라는 사람을 위해서든. 사실 모든 시가 사람을 위해 쓰는 거다.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도 자연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 시를 쓴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인간은 죽어야하지 않겠나(웃음)”

 

- 시를 왜 읽어야 하나  
“요즘 사람들 얼마나 삶이 힘든가. 가령 독립해서 살면 월세, 공과금 등 금전적인 것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책을 살 돈도 없다.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한 세상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책을 안 산다느니’, ‘시를 읽어야 한다느니’ 하는 것은 책 팔려고 하는 거짓말이고, 광고 술수다.  

내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다보면 시를 읽게 될 것이다. 어떤 이야기이든 다 삶에 닿아있다. 무엇보다도 내 삶을 먼저 챙기는 게 독서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바쁜 삶에서 내가 나서서 여가시간을 챙기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겨야 한다. 자기 자신이 행복해야 시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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