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총서, 소설, 자기계발서에 밀려 판매량이 하위권에 머물렀던 시 출판계에선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초판본으로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가 출간 두 달 만에 판매 부수 15만 부를 돌파했다. SNS 시인들의 시집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출판계에선 70~80년대 시 열풍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시 열풍은 특히 SNS를 타고 번지고 있다. 좋은 서정시가 SNS에서 공유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자작시를 자신의 SNS에 올리고 있다. SNS의 속성은 현재 사람들이 시를 외면하는 시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있다. 이형권(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시도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SNS처럼 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시가 융성했던 시대에 시는 현실과 사회에 밀접했는데, 지금 시는 시인들끼리만 돌려 읽고 있다”며 “시의 시대성과 사회성을 강화해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고민하는 시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 최근 1년간 교보문고 시 분야 판매량은 전년대비 24.8%나 뛰었다.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시를 ‘쓰는’ 행위에서 위안을 얻다
  
SNS는 다양한 사람들이 시 창작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시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SNS에 서로 시를 게시하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13일까지 열린 ‘SNS 시인시대전’을 통해 새로운 장르로 등장한 SNS 시에 주목했다. 대중이 일상 속 언어로 시를 쓸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활동 중인 서덕준(남·25) 시인은 자기 자신을 달래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했다. 서덕준 씨는 “작년까지는 원고지에 시를 쓰고 보관하는 등 개인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데 사람들이 SNS에서 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늦게나마 SNS를 시작했다”며 “다른 사람을 대신해 울어주고, 공감해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시 필사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감성치유 라이팅북’도 등장했다. 2015년 초 김용택 시인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필사본 열풍을 주도했다. 최근 파란책 출판사가 출간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필사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판매 부수가 6000부를 넘었다. 파란책 출판사 김재운(전기전자전파공학부 00학번) 대표는 스마트폰이 주지 못하는 종이 특유의 감촉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재운 씨는 “평소 컴퓨터로 글과 그림을 만지다가 종이책에 필사하면서 펜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에 힐링 받는 느낌이 들었다”며 “필사 책을 사는 사람들도 자기 글씨체로 시를 써서 SNS에 올리는 행위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SNS에서 이미지로 향유
  
전통 장르인 서정시는 SNS에서 이미지로 향유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감성적인 사진에 서정시 전체 혹은 한 구절을 덧입힌 이미지가 대부분이며, 흰 바탕에 캘리그라피로 써진 시가 이미지 형태로 게시되기도 한다. SNS에 올라오는 시 이미지는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완결성을 가져 스크롤을 내리지 않아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시름시(詩)름’의 관리자 김형원(여·26), 강민주(여·26) 씨는 ‘많이 앎보다 앓음이 더 중요하다’는 슬로건을 걸고 이별이 주제인 서정시를 SNS에 올리고 있다. 이들은 “좋은 이미지가 시의 본뜻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며 “이미지는 글에 분위기를 더해주는 양념이기에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SNS 시 역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이미지를 차별화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SNS 시인들은 다른 예술 형식과 텍스트를 결합해 창조적인 시 형태를 선보인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웹툰을 시와 함께 배치하는 것이다. 시인이 직접 쓴 손글씨를 활용해 글자 자체를 이미지로 활용하기도 한다. 정영욱(남·25) SNS 시인은 자작시를 종이비행기에 손글씨로 써놓은 사진으로 1만 7000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정영욱 시인은 “내 고민을 종이비행기에 담아 날려버리고 싶다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며 “지금 SNS에서 많은 시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속에서 독특해 보이고 싶어 종이비행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SNS에서 이미지는 시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시대에 독자들이 장문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와 강렬한 짧은 문장에 더 길들어 있어서다. 소만섭(강원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서 모니터엔 수많은 이미지와 그래픽이 디스플레이 돼 있어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며 “따라서 SNS 같은 디지털 매체에서 문자텍스트는 길지 않고, 사용자 역시 이미지에 더 눈길을 준다”고 말했다.

  시와 이미지의 결합에 대해 전문가는 이미지가 시를 치장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의 문맥 속에 스며드는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하 시인의 ‘이 사진 앞에서’란 시가 그 예다. 타임지에 실린 소말리아 어린이의 바짝 마른 모습이 담긴 사진은 시의 문맥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형권 교수는 “현재 시가 독자의 눈에 띄게 하려고 이미지에 문자로 구성된 시를 덧붙이는 수준”이라며 “이미지가 시의 예술성을 보강하는 게 아니라 더 낮추는 경우도 있는 만큼, 이미지가 시 문맥에 들어가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 창작에서 독립출판까지
  
SNS 공간에서 시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시집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출판 기술 발달로 독립출판사가 늘어나면서 이를 통해 소규모로 시집을 출판하고 있다. 등단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이 쓴 시를 시집 형태로 간직하려 한다. 독립시집 ‘문학과 죄송사’를 낸 박준범 씨는 틈틈이 써놓은 시들을 묶어 시집으로 만들었다. 그는 “시를 책으로 만드는 것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소량만 제작했다”며 “기성시집인 ‘문학과 지성사’ 시집의 표지 디자인이 갖는 권위에 매력을 느껴 같은 모양의 시집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시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립출판 시집을 소장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최근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서점이 늘어나면서 독립출판 시집의 공급도 늘고 있다. 실제로 일반인에게 편집부터 출판까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IT업체 ‘부크크(BOOKK)’에는 시집이 111권 판매 등록돼 있는데, 이번 달에만 12권이 등록됐다. 한건희(남·29) 부크크 대표는 “최근 시를 출판하려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독자들 역시 SNS에서 시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집 자체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을 소장하고 싶어 해 시집 출판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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