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이미 쉽다
해고는 이미 쉽다
  • 김진철 기자
  • 승인 2016.03.20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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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해고되니 특별한 느낌이 들지도 않네요"

  통계청은 16일 15~29세 청년 실업률이 12.5%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비현실적인 통계조사 방법에 의거해도 56만 명의 청년이 일자리 없이 살아가는 셈이다. 이는 청년 실업률을 조사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대치이다.

  이들 중에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다. 해고를 당한 청년에게 ‘쉬운 해고 지침’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려 3명을 찾았다. 그들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청년은 이미, 충분히, ‘쉽게’ 해고되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오늘도 잘 버텼다 (김익환 남·29, 정규직)
  
대기업 계열사에서 5년간 일했던 김익환 씨는 2015년 11월 26일 희망퇴직을 권고받았다. 휴식시간 10분 전인 오후 2시 50분, 인사과인 상생팀에서 김 씨를 불러 희망퇴직을 권고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희망퇴직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아직 입사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고, 나이도 젊은데 설마 나한테 제의가 오겠냐고 생각했죠. 그런데 회사가 어려우니까 제가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입사 5년 차인데 희망퇴직 대상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자리에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답했어요.”

  기한이 지난 다음 주, 회사 측은 김 씨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사무실에 대기하라는 말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1주일 지속됐다. 그리고 12월 7일, 김 씨는 인천 송도의 한국뉴욕주립대 강의실로 대기 발령이 났다. 회사 측은 그곳에서 교육을 했다. 이름만 교육이었다. 대기 발령 시 총 업무 시간인 8시간 40분 중 4시간 10분은 ‘명상과 마음의 정화’라는 시간이 배정됐다. “교육이 아니에요. 명상의 시간을 갖고 클래식을 듣고 회고문을 쓰는 게 하루 일정이었어요. 휴대전화는 모두 걷고 화장실 출입도 횟수를 제한했죠. 12월 31일까지 계속했어요.”

  1월 4일 회사는 김 씨를 다시 회사로 불렀다. 회사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대승적 결단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다시 다닌다. 하지만 희망퇴직 권고 이후 김 씨는 회사를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일하다가 실수하면 움츠러들고,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면 위축되기도 한다. “기존의 회사와 느낌이 달라요. 옛날에는 하루하루 출근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저 ‘오늘도 잘 버텼구나’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해고가 올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해고보다 못한 계약만료 (이가현 여·24, 기간제 계약직)
  
이가현 씨는 2013년 9월 16일부터 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업체 역곡역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도 회사는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씨는 이에 대해 바로 당당하게 묻지 못했다. 해고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지 며칠 후, 회사 측은 근로계약서를 가져왔다. “지나가면서 슬쩍 ‘저희는 근로계약서 안 써요?’라고 흘렸어요. 물어보면 잘릴 것 같아서요. 근로 계약서 작성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여기, 여기 체크해.’, ‘일하는 시간은 그냥 형식적으로 써’라는 매니저의 말을 따랐죠.”

  2014년 9월 14일, 이 씨에게 전화가 왔다. 점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15일 매장에 나와서 같이 이야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점장을 만난 그 날, 이 씨는 해고됐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것을 이유로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1시간가량 그 얘기만 했어요. ‘일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해고 통보된 날의 다음 주 일정도 매니저와 정하고, 근로시간도 늘리기로 합의했었는데 이렇게 해고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죠.”

  이 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사실 신청하기 전에도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회사 측은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해고했다고 입장을 밝혔어요. 한 노무사가 말하길, 비정규직 관련 법률이 개정된 이후 갱신기대권이 인정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주변에서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어떻게 되든 한 번 해보겠다고 생각한 거죠.”

  이 씨는 2015년 10월에도 또다시 해고됐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 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득 패스트푸드점 점장에게서 전화가 온 1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점장은 빵이 팔리지 않으니 이번 주까지만 일하자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담담했다. “처음 해고됐을 때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2번 해고되니깐 그리 특별하지 않네요. 이제 해고는 일상인 것 같아요.”

 

  내일을 계획할 수 없다 (이영숙 여·31, 파견직)
  
이영숙 씨는 2014년 2월부터 독일계 제약회사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여름이 된 8월, 그를 포함한 80여 명이 해고됐다. 그조차도 하루 전에서야 알았다. “공산품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겨울에만 물량이 많아서 여름에 일자리를 잃었죠. 사실 언제 해고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내일 일할 명단만 벽에 붙거든요. 이름이 없으면 해고된 거죠. 내일을 계획할 수가 없어요.”

  2015년 2월 24일부터 이 씨는 치료제 전문 제약회사에서 파견직으로 일했다. 팩으로 된 링거나 앰프로 된 링거의 분량을 선별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6개월하고도 3일이 된, 8월 25일. 이 씨는 다시 해고됐다. “통보를 받은 것은 8월 17일이에요. ‘경영이 어려워서 그만 다니셔야할 것 같다. 좋은 곳 알아봐주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해서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났어요”

  이 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9월 불법파견이었음을 인정받아 제약회사가 그를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을 받아냈다. 하지만 회사는 기존에 일하던 경기도 안산으로 복귀할 수 없다며 경남 진주로 복귀하라고 제안했다. “회사 내부 취업 규칙상 대학 졸업자는 생산직 채용이 안 된다는 등을 근거로 안산에서 채용할 수 없다고 했어요. 진주로 어떻게 가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이 고용노동부에 문의한 결과, ‘직접고용을 다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달받았어요. 안산지청은 해당 내용을 근거로 제약회사에 과태료를 부과했죠.”

  이 씨는 현재 불법파견 문제를 계속해서 알리고 있다. 국회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 문제를 증언하기도 했다. “파견직은 항상 정직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럴 때면 ‘난 여기서 부품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힘든 것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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