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도의 필독서로 불리는 ‘경제학원론’과 ‘미시경제학’, ‘재정학’ 등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집필한 교과서는 현재까지도 많은 대학에서 교재로 이용되고 있다. 이준구 교수는 우리나라 미시경제학계의 최고 석학으로 손꼽히며 여러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밝혀왔다. 그와 함께 요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사진 | 이경주 기자 race@

- 성장과 분배 중 우선돼야 할 것은 무엇인가
“결국 공평성과 효율성 이야기인데, 장기적으로는 둘 다 가야해요. 성장만 우선하는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없어요. 성장만 우선하고 분배를 등한시하면 결국 성장 그자체가 멈추거든요.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을 이루며 분배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비해 좋은 방향으로 진전돼 왔어요. 분배 정도가 아주 나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처럼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 깨져 강력한 성장정책을 펼쳤다면 성장 그자체가 멈췄을 수도 있어요.”

-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 성장을 저해합니다. 사회적 자본이라 하는 상호신뢰, 협조 등은 공평한 분배가 정착된 사회에서 많이 축적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평등한 분배를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적어도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줄 것이고, 장기적으로 공평한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나는 소득세법을 손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재벌총수이 배당금 700억 원과 내 소득 1억 5000만원이 똑같은 최고소득세율에 적용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율을 올리는 게 아니라 최고세율 구간을 새로 설정해서 무거운 세금을 메겨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는 단순 계산으로도 상당한 조세수입이 들어오는 것이고 이를 통한 사회복지망 확충으로 저소득층계층의 소비능력이 향상되면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왜 세금을 깎아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세금으로 내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노동자에게로 간다는 낙수효과만 주장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는 선순환구조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확충된 사회복지망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복지의 목적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어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성장의 극대화뿐만 아니라 행복의 극대화예요. 빈곤에 허덕이는 이의 삶을 개선하지 않고는 사회 전체의 행복이 늘어날 수 없죠. 그래서 제일 관심 가지고 상황을 개선시켜줘야 할 것이 빈곤층 문제예요. 이것이 존 롤스의 <정의론>에 나오는 최소극대화 원칙입니다. 그걸 적용하자는 것이 사회복지프로그램이지요.
물론 나름대로 ‘효율성이 줄어든다’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무조건 사회복지프로그램을 확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담세능력에 맞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지요. 또한, 사회복지는 빈곤층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도 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의 구매력이 소비능력의 확충으로 인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중·저소득층의 소비능력이 커져야 하는데 주주나 경영진들만 이윤의 상당부분을 가져가고 근로자에게 별로 이윤분배에 인색하다면 소비기반의 확충이 이뤄질 수 없지요.

- 최근 성남시에서 실시 중인 청년수당은 사회복지의 개념인가
“사실 나는 청년수당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복지학이나 경제학계일부에서 ‘국민기초수당’이 지지받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수입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관점에서 청년수당을 보면 기초수당의 일환이고 바람직한 측면이 있어요. 언론과 일부 단체에서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없는 정책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푸드 스탬프’라는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푸드 스탬프를 저소득층이 빵도 사고 우유도 살 수 있지요. 하지만 담배나 술 같은 것은 살수 없어요. 하지만 몇몇 스탬프 사용자들이 장사꾼과 결탁해서 술과 담배를 사기도 해요. 모두 이런 문제를 알고 있지만 근절을 못하고 있어요. 어떤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악용 사례가 있다고 그 제도의 취지가 본질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에요. 청년수당도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함께 평가돼야 합니다. 만약 성남시가 정책비용 부담능력이 있다면 그건 해볼 만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부의 노동5개법으로 취업난을 해소할 수 있는가
“내가 노동전문가는 아니지만, 갑자기 고용이 늘고 청년실업이 해결되는 것은 경제학자의 상식으로 비춰볼 때 맞지 않아요.
예를 들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고용이 늘어날 것이라 하는데 그것의 논리적 맥락이 분명치 않아요. 난 임금피크제가 바람직하다고 봐요. 조기명예퇴직을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으로 청년고용을 늘린다는 말이 이해 안 돼요. 현재의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 저유가 등 ‘뉴노멀 스테이트’라고 하잖아요. 이런 추세가 당분간 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인위적인 부양정책으로 불황의 늪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럴 때일수록 경제를 정석대로 운영해나가야 해요.”

- 경제를 정석대로 운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현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이 부동산정책인데, 결국 부동산투기를 일으키고 주택가격을 띄우고 건설경기를 띄워서 경제 활성화를 이룩하려 하거든요. 이것은 정석이 아니에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결국 서민이 고통 받습니다. 아주 조금 성장률을 올리려고 서민들의 고통을 초래하는 것은 옳은 정책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정부지출에 필요한 만큼 걷고 쓰라는 것입니다.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너무 많이 지출하지도 말고 ‘증세는 없다’라는 신자유주의적 생각 때문에 필요한 세금을 걷지 않는 것도 정석과 어긋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입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잘 굴러가려면 무엇보다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정해야 합니다. 불공정한 플레이가 난무하는 곳에서는 경제의 활력을 극대화할 수 없어요. 저는 정부가 단기적인 성과 욕심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어요.”

이준구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후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올바니캠퍼스 경제학과 조교수로 활동하다 1984년 3월 귀국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취임했다. 교육의 측면에 더 큰 관심이 있던 그는 수많은 경제학 교과서를 집필했다. 이준구 교수의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원론>, <재정학>, <36.5℃ 인간의 경제학>, <경제학 들어가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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