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도시정비 정책 패러다임은 전면철거 재개발 정책에서 도시재생으로 바뀌었다. 4월 18일 황교안 총리는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어 신규 도시재생사업 33곳에 3100억 원을 지원할 것을 의결했다. 2000년대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쇠퇴한 구도심을 전면철거 재개발 방식으로 개발했지만, 주민 공동체를 파괴하고 골목길이나 시장 같은 도시문화 공간을 없애 도시 정체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도시의 과거 흔적과 주민 커뮤니티를 보존하면서 ‘재생’하고자 하는 정책적 지원과 연구가 활발하다. 낡거나 못 쓰게 된 물건을 가공해 다시 쓰듯, 도시재생은 구도심을 고쳐서 다시 기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 성북구 동선동 동선고가차도 아래 어두웠던 공간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사진제공 | 성북문화재단

주민이 참여해 도시기능을 회복시키다
  도시재생은 낙후된 기존 도시조직을 보존하면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다시 활성화하는 도시 전략이다. 산업구조의 변화, 인구 감소, 주거환경 노후화 등으로 인해 쇠퇴한 구도심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지역을 물리적으로 정비하는 동시에 지역주민들의 일자리와 주거복지, 교육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은 2013년 도시재생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장소 중심의 종합적 재생 △주민 중심의 재생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지원을 지향하고 있다. 김세용(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는 도시를 다시 작동시키기 위한 정책”이라며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연계된 커뮤니티 재생을 목표로 해서 도시 재개발 사업보다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은 오랜 역사가 담긴 도시 조직을 기반으로 개발계획을 수립한다. 도시재생은 재개발과 달리 주민공동체를 파괴하거나 골목길이나 시장 같은 도시문화 공간을 없애지 않는다. 도시가 원래 갖고 있던 자산 중 활용 가능한 요소는 보존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공용공간을 조성하거나 문화 프로젝트를 활용한다. 지역 내 노후한 주택을 고쳐 거주자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주민자치공간이나 주차장 같은 공용 공간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주민들이 피했던 공간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리모델링해 사람들이 활발하게 이동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김형 아시아도시재생연구원 사무처장은 “도시재생은 전통과 현대의 문화적 조화”라며 “오랫동안 남아있는 도시 조직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공간으로 재활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는 정책”이라 설명했다.

  도시재생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주민이 지방정부에 지역재생 방안을 요구하고, 지자체가 이에 맞는 종합계획을 수립했을 때 장기적인 재생이 가능하다. 도시재생의 모델로 손꼽히는 일본 요코하마의 모토마치 재래시장은 민간, 공공기관, 전문가가 참여해 만든 협정을 통해 마을을 재정비한 사례다. 시장 상인들이 건물 디자인 등을 개선하고 건물 1층을 안으로 집어넣어 보행로를 확보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지키면서 쾌적한 거리로 재탄생했다.

  한국 역시 도시재생특별법에서 주민 중심으로 도시재생 전략을 수립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지역에서는 도시재생센터가 주민들이 사업을 계획하고 입찰하는 주민공모사업을 장려하고 있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센터장은 “도시재생은 지역 구성원들의 합의를 거쳐야 하기에 긴 호흡이 필요하다”며 “지자체 역시 주민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교육을 병행하고, 가시적 성과가 보이는 상징적 사업을 보여줘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과 문화가 도시에 활력을
  예술과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은 지역 공간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예술은 동네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문화 활동은 주민모임을 형성해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성북지역 예술가와 성북문화재단의 ‘미아리고개 재생 프로젝트’는 고가도로 아래를 리모델링한 공간을 활용해 지역 주민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성북구 동선동 ‘미인도(미아리, 사람, 도시)’는 동선고가차도 아래 공간을 개조해 2015년 9월 조성된 문화예술 플랫폼이다. 고가차도 아래 공간은 밤마다 쓰레기를 상하차 하는 구역이고, 어두워서 주민들이 기피했다. 성북문화재단과 성북 예술가 모임인 ‘공유성북 원탁회의’는 주민들의 의견이 수렴해 예술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4월에 열린 ‘미인도 축제’는 미인도 공간에서 주민들이 동네 예술인들과 함께 장터를 열고, 공연을 선보였다. 최찬란 성북문화재단 미인도 담당자는 “미인도 축제를 함께 기획하면서 주민들에게 재생된 공간이 문화·예술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음 보여줬다”고 말했다.

  예술인과 주민들은 열린 공간인 미인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 올해 2월 생긴 미인도 주민모임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내면 전문 기획자들이 예술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예술인들은 미인도 공간이 조성된 이후 주민들 간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유희정 성북문화재단 문화기획팀 담당자는 “공간 활용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주민들이 새로 정착한 예술인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있다”며 “지역재생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은 앞으로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갈등을 해결하는 만남의 장소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계없는 작업실의 '테트리스 하우스' 사진제공 | 경계없는 작업실

작은 건축물로 활발해지는 도시
  건축계 역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건축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소규모 땅에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건물주의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길과 골목 활성화를 유도하는 건축 디자인적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도시재생을 통해 기존 마을 형태를 보존하면서 도시를 활성화하려는 정책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건축계의 고민은 5월 28일부터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의 주제 ‘용적률 게임’에 녹아있다. 용적률이란 건축물이 토지 면적과 비교했을 때 일정 면적 이상 갖지 못하도록 제한한 법적 규제다. 건축주가 가용 토지를 최대로 활용했을 때 건물 과밀화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으로 정해졌다. 과거에는 공간 확보가 어려운 작은 대지들을 통합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건축가들이 다양한 건축 디자인을 통해 작은 땅에서도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관 큐레이터 신은기(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작은 땅에서 요구되는 용적률 게임은 합필 없이도 소규모 단위를 유지하며 낙후된 지역의 개선이 가능함을 보여준다”며 “용적률을 최적화하기 위해 공간을 연구하는 건축가들의 개입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건축가들은 숨겨진 부피 공간을 활용해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대표작 중 하나인 ‘테트리스 하우스’는 각 집이 ㄱ과 ㄴ모양으로 수직적으로 합쳐져 큐브 형태를 이룬다. 테트리스 하우스를 설계한 건축사무실 ‘경계없는 작업실’의 조성현(남·33), 문주호(남·31), 임지환(남·31) 씨는 각 집을 3차원 형태로 만들면서 113㎡의 좁고 긴 모양 땅에서 용적률 200%를 달성했다. 조성현 씨는 “평면적으로 설계했을 당시 용적률을 150~160%밖에 확보하지 못했지만 3차원적 설계를 한 결과 숨겨진 공간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이라 말했다.

  2010년부터 낙후된 소규모 건축물을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건축 디자인을 고려하는 건축주가 늘었다. 땅값과 임대료가 오르면서 독특한 건축 디자인을 통해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 소비자 혹은 입주자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이러한 소규모 단위 재건축 유행 덕분에 건축가들은 공간 이용자의 삶의 질적 향상은 물론 도시에 활력을 일으킬 건축물을 시도하고 있다. 저층부는 길에서 이동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중층부는 고밀도의 주거 공간, 쾌적한 자연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옥상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경계없는 작업실 문주호 씨는 도시개발에서 소규모 필지 단위로 재건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가 아닌 가로수길에서 재미를 느끼듯이 도시 조직이 남아있는 작은 땅들이 조금씩 재개발된다면 도시에 활력이 돌 것”이라며 “좋은 도시는 작은 건축물 각각이 보행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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