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에도 운수가 있다면 불운한 팔자다.” 김언종(문과대 한문학과) 교수는 자신이 번역한 <혼돈록>의 서문에서 이렇게 책을 소개했다. 정약용은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찬묘지명> 등에서 자신의 저술을 하나하나 소개했지만, 혼돈록 원고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약용은 미완성에다가 시비(是非)성의 문자가 있기도 한 이 원고를 자신의 저작 목록에 넣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약용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던 <혼돈록>이 가지는 가치와 의의는 무엇일까. 김언종 교수에게 <혼돈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 <혼돈록>은 무엇인가요
  “혼돈은 일상용어인 ‘혼돈스럽다’에서 쓰이는 말 그대로입니다. 모든 것에서 명백한 것을 추구했던 다산선생은 일상 어휘의 잘못된 용례나 혼란스러웠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을 그냥 둘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모아 시비를 가리는 글을 모은 것이 <혼돈록>입니다. 
  <혼돈록>은 원래 다산이 명나라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이나 우리나라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같이 문학, 사학, 철학 전반에 걸쳐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던 내용에 대한 진실과 실체를 알리려고 했던 책입니다. 하지만 사정상 여의치 못하자 중도에 집필을 그만 둔 미완의 원고였습니다. 필사본으로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으나 2001년부터 시작된 <정본 여유당전서> 발간 사업 중 책의 가치가 재평가됐고, 그래서 널리 알리고자 번역하게 된 것입니다.”

  - <혼돈록>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다산같은 대학자가 아니면 범범하게 넘어갔을 문제도 다산의 날카로운 분석 앞에 오랫동안 감춰졌거나 오해되었던 사실들이 환하게 밝혀집니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떠드는 것을 인운역운(人云亦云)이라 하는데 적어도 다산의 경우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다산은 <혼돈록>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당파에 얽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역사를 평가했고, 중국 역사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비판적으로 역사를 검토했습니다. 당시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던 이야기도 실려 있지요. 이처럼 다산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고, 여러 저작의 원천 자료 역할을 했던 <혼돈록>은 기록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산은 여러분과 비슷한 대학 신입생쯤 되던 나이에 ‘이 세상의 모든 모순이나 문제점을 모조리 바로 잡겠다’라는 원대한 꿈을 품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런 원대한 꿈을 실천하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주신다면
  “다산은 풍자를 문학의 한 본령(本領)으로 생각한 분입니다. 영조 38년, 조정에서 금주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조정에선 이를 어기고 집에서 술을 담가 마신 윤구연이란 장군을 잡아 남대문 앞에서 목을 베어 한양 백성들에게 왕법의 위엄을 과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영조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장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산은 이주국이란 대장도 술을 마셨다는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 영조의 이중적 태도를 기록해두었습니다. 아마 아끼던 신하였던 게지요. 다산은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전제군주의 법 집행을 비꼰 것입니다. 이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발표가 됐다면 크게 논란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지요.”

  -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좀 엉뚱한 대답입니다만, 저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조선시대 양반과 관료들의 사고가 꽉 막혔다고 생각하지만, <혼돈록>에 적힌 이야기들을 보면 당시 양반이나 지식인들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등, 의외로 다채롭고 부드러운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기에 이르러 무능한 집권자들과 세도정치에 의해 조선왕조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만, 당시의 지식인들이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만 해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대단한 문화민족이었구나 하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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