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바라는 학생과 학생이 원하는 교수는 서로 어떤 모습일까? 교수와 학생들을 만나 서로를 향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일러스트|김예진 전문기자
교수가 바라는 학생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학생 – 염재호 총장
“제가 생각하는 좋은 학생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학생입니다. 대학은 무한한 상상력, 왕성한 호기심, 한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수업시간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교수 연구실에도 찾아오고, 다른 전공 수업도 수강하며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는 학생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한 학생이 생각납니다. 본교 영자신문사 ‘The Granite Tower’ 기자였던 학생인데, 당시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와 저와의 인터뷰를 추진하고 싶다며 제안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어렵지 않겠냐고 얘기했죠. 결국, 그 학생은 인터뷰를 성사시켰습니다. 그때 그 학생에게 받았던 진취적인 인상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네요. 대학생이기에 가능한 진취적인 자세입니다. 대학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 학생들만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기 바랍니다.”
 

이상(理想)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  - 박선웅(문과대 심리학과) 교수  
“대학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학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강의’가 최고의 강의인 것 같아요. 한 학기 수업을 통해 알게 되는 지식은 교과서와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 쉽게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학문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건 쉽지 않죠. 이런 즐거움과 함께 배움을 확장할 수 있는 강의야말로 최고의 강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대학에서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강제로 시키지 않아요. 각자가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곳이죠. 다시 말해, 대학은 선택해서 행동한 만큼 얻어가는 곳인 것 같아요. 제가 가르치는 심리학은 경험적 학문입니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연구를 설계하며 데이터를 모으는 학문이죠. 그러다 보니 심리학에서의 지식이란 항상 데이터에서 오기 마련입니다. 지난 학기에 수업을 들었던 L군의 경우,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서 수십 명의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저는 어려움이나 귀찮음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힘껏 내딛는 이런 발걸음이 분명 학생들을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리라 믿습니다.”
 

당돌에게 질문할 줄 아는 학생 - 허인혜(정책대학원) 강사
“제가 생각하는 좋은 학생은 ‘당돌한 학생’입니다. 당돌한 학생이란 수업 중이나 끝난 뒤 이메일 혹은 면담을 통해 수업 내용에 대한 토론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학생을 뜻합니다. 정치학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많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압도적인 패러다임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는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당돌한 질문제기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당차게 밝히는 학생들과 소통을 즐기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학, 더 넓게 사회과학의 경우, 너무나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시각에만 치중하게 되면, 그 시각을 과도하게 신뢰해 사고가 경직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강의를 통해 의미 있는 시각을 선별하고, 폭넓은 이해를 갖추어 유연한 사고를 키우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수업에 열의를 갖고 임하는 학생 - 정순화(사범대 가정교육과) 교수
“교양과목 수업에서 ‘동거’에 대해 발표를 했던 두 학생이 생각납니다. 단 15분간의 발표를 위해 두 학생은 자신들의 발표주제인 ‘동거문화’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티셔츠까지 함께 입고 발표하는 열의를 보였고, 발표내용도 실질적으로 구성해 여러 학생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았어요. 이처럼 수업에 열의를 가지고 임하는 학생은 상호작용적인 요소가 많은 강의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교수에게는 더 좋은 강의를 가능하게 하고, 학생 상호 간에는 진취적인 학습 분위기를 조성해줍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강의는 수강생들이 과목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강의입니다. 일단 강의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생기면 시험을 치르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실제 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습니다.”

▲ 일러스트|김예진 전문기자
학생이 바라는 교수

치열하게 가치를 토론하는 교수  - 유종헌 안암총학생회 집행위원장
“제가 생각하는 좋은 교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에 어울리는 교수입니다. 교수는 강의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눠야 합니다. 가치와 의견이 생성되는 공론장의 기능을 하는 것이 대학에서의 올바른 교육일 테니까요. 최고의 강의도 자연스럽게 교수와 학생들이 섞여 치열하게 토론하는 강의입니다. 교수가 강의를 통해 의미 있는 가치 간 투쟁을 촉발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태 이런 교수님을 뵌 적은 없습니다. 강의내용과 제 생각이 달라 교수님의 의견에 이견을 제시하면 이를 불쾌해하시는 교수님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성적인 비판을 하시는 게 아니라 왜 학생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가와 같은 반응이셨습니다.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시는 교수님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공론장으로서의 강의는 아직 수강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교수 – 김병환 공과대 학생회장
“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교수가 좋은 교수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수업의 전부가 아닙니다. 교수가 수업 방식을 정할 때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한다면 수업이 보다 발전할 수 있습니다. 수업 이외의 시간에도 학생에게 조언해주고, 다양한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 수업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와 학생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학생은 교수님을 어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교수님은 학생들의 의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학생을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응용통계 수업을 진행하셨던 교수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최종성적을 산출할 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중 더 높은 성적을 더 많이 반영하시는 등 학생의 편의와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질문을 환영하는 친절한 교수 – 한수연(경영대 경영15) 씨
“질문을 환영하는 교수입니다. 교수님들이 바쁘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수업이 끝나고 빠르게 이동하시는 것은 물론 이해해요. 하지만 교수님과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학부생으로서는, 질문 하나를 위해 연구실을 찾아가기가 부담스럽거든요. 제가 수강한 재무관리 수업은 시험 전 한 시간을 완전히 질의응답 시간으로 지정했는데, 참 좋았습니다. 다른 수업에서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좋은 강의를 위해서는 적절한 난이도 조절과 친절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연계열 교양 수업을 수강할 때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수업은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이 정도는 당연히 알죠?’라고 말씀하셔도, 인문계열 학생은 모르거든요.”

학생의 수업참여를 독려하는 교수 - 최현빈(인문대 북한15) 씨
“학생들이 학문에 관심을 갖고 능동적인 배움의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교수입니다. 저에게 있어 최고의 강의는 생활원예 강의입니다. 원예과목에 관심이 없이 친구의 추천으로 듣게 된 수업인데도 교수님의 적극적인 태도 덕에 ‘배우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교수님께서 늘 다양한 시각자료를 준비하셨고, 진짜 식물을 가져와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수업 내용을 충실히 이해했고 원예과목에 대한 관심도 생겼습니다. 식물을 키울 줄 몰랐던 제가 집에서 화초를 가꾸고, 지나갈 때마다 길가의 꽃들을 유심히 보게 됐습니다. 학문에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된 거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르치는 교수 – 윤세진(의용과학대학원 식품생명공학과) 씨
“학생을 인간 대 인간으로, 그리고 함께 학문을 탐구하는 동료로 존중하는 교수입니다. 나이, 전공, 성별을 뛰어넘어 가르침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교수님들은 학생들 역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수강한 한 유기화학 수업의 교수님이 기억에 남네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 해도, 열심히 공부했다면 실패가 아니라며 화학 문외한이었던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리포트에는 언제나 채점 결과에 더해 의미 있는 코멘트가 적혀 있었고요. 코멘트 덕에 학기 중간 중간 제가 어느 정도로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았고, 수업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 일러스트|김예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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