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완연한 봄의 생기가 느껴지는 오늘, 고려대학교의 개교 111주년을 맞이하여 전체 고려대학교 교수를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려대학교는 지난 111년 동안 교육구국의 건학이념을 실천하며, ‘공선사후’의 정신에 충실한 인재를 양성해 왔습니다. 우리 고려대학교 가족들은 국권을 잃은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 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각 분야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과 본분을 다하여 왔습니다. 그와 더불어 교수와 학생들이 각 학문별로 우수한 성과를 내어 세계 100대 대학 안에 들어가는 성취를 이루었으니 경하할만한 일입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다른 대학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진 인재를 배출하였습니다. 사회에 나가 기업과 조직에 충실한 인재보다 도전하는 인재가 되었고,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 순응하기보다는 문제를 개선하는 인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성·야성·감성을 갖추고 상사를 존경으로, 부하를 사랑으로 대할 뿐 아니라 동료와의 관계도 배려하는 인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고대생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용기와 인격을 갖추어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수들도 스승을 어버이처럼 여기고, 자식처럼 제자를 아껴주었던 본교 특유의 끈끈한 사제관계를 이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울 것입니다.

한편 2015년 새로운 총장이 들어선 이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3무정책, 장학제도의 개편과 행정 직원의 채용, 논술시험의 폐지와 고교 내신 중심의 입학생 선발 등이 시행되거나 발표되었고,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3무정책을 따르는 교수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장학금 제도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차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행정직원의 채용으로 대학원생은 장학금이 줄 것을 걱정하고, 내년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행정직원의 채용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는지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정에서 구성원의 소외감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학교 내부의 일을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되고, 제도의 긍정적인 일면 만을 보고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래대학입니다. 대학은 협량한 응용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인 기초지식을 가르쳐야 하며, 학생들이 ‘치국평천하’할 ‘큰 학문’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에게 전문적 지식보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배우고, 옳고 그름을 분간할 능력을 갖추게 하며,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대학’에 대해 성공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대학 다수 구성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고려대의 인적·물적 자원을 집중할 것이라고 합니다. 획기적인 일이지만 실패할 경우 오랫동안 그 후유증은 고려대학교의 발전에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장과 일부 보직자들은 이런 조언을 듣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져 있습니다.

인촌 선생이 보성전문을 인수한 이래 고려대에 이르기까지, 본교는 다른 어느 대학보다도 교수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학교 정책에 반영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교수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가지고 학교를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헌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고려대학교의 훌륭한 전통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몇 년간 많은 기술자가 정성을 다해 만든 수십만 톤의 큰 배도 풍랑을 헤치지 못하여 침몰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 동안 재단·교수·학생·직원·교우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놓은 고대라는 아름다운 상아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려 합니다. 111년 동안 고대 가족들이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려고 합니다.

총장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우리의 고대는 영원할 것입니다. 개교 111주년을 앞두고 인촌 선생님의 ‘공선사후(公先私後)’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가슴 속 깊이 되새겨 봅니다.

이정구 교수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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