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활동비와 일자리 제공
공공예술의 새로운 흐름 반영

▲ 4월 11일 열린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일자리 박람회'. 작가들이 부스를 돌아다니며 자신에 맞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사진제공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에게서 ‘작업실’은 떨어뜨릴 수 없는 단어다. 미술작가는 화실에서 작품에 집중하고, 연극배우는 무대 뒤편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기업이나 도서관, 주민단체 같은 공공기관과 예술인의 협업은 아직 시작단계다. 그렇지만 어느새 예술과 기업의 협업은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다. 기업 안팎에서 예술 경영, 창조적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은 입주작가(art-in-residency) 프로그램으로 예술인을 기업에 상주시켰다. 한국에선 한국예술인복지재단(대표=박계배, 복지재단)이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예술인을 기업에 파견하고 있다. 예술인들은 작업실에서 나와 예술이 일상에 스미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인 복지로 시작한 기업과의 협업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을 기업이나 기관에 파견해 예술인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새로운 서브잡(sub-job)을 갖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파견된 예술인은 조직문화 개선, 인력개발 등의 영역에서 해당 기관의 문제를 예술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2014년부터 시행된 파견사업은 예술인의 활동 무대를 기업과 기관으로 확장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예술인으로 활동했음을 증명하는 ‘예술활동증명’ 절차를 거치면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발탁되면 복지재단에서 6~8개월 동안 파견 예술인에게 매달 12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한다. 올해는 74억 원의 예산을 들여 파견 예술인 1000여명을 선발한다. 2014년 시행 첫해 예산은 30억 원, 2015년엔 39억 원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 큰 폭으로 확충됐다.

파견지원 사업은 예술인에 대한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예술인이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며 경제적 안정을 얻는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예술은 자본에 얽매여선 안 된다는 인식은 예술가의 활동 범위를 개인 작업실로 한정시켰다. 하지만 예술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이 예술 활동만으로 얻는 수입은 한 달에 100만 원에 불과했다. 4인 가구 기준 2016년도 최저생계비인 176만여 원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복지재단은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예술가가 기업과 협업해서 끌어내는 사회적 가치만큼 보수를 받는 문화를 확산하고자 한다. 파견지원 사업 설계에 동참했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기언 대리는 “파견된 예술가는 제3의 시선으로 기업을 관찰하고, 직접 개입하면서 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복지재단은 예술가만의 창조적 시선이 기업의 내부역량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 예술인은 만족도 높아
4월 11일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일자리 박람회가 열렸다. 기업과 예술인을 매개하는 퍼실리테이터가 각 부스를 담당했다. 퍼실리테이터들은 과거 파견 예술인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파견지원 사업이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고, 개인 작업의 연장선이란 점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파견지원 사업에 지원했다.

퍼실리테이터들은 이 사업을 통해 예술이 개인의 행위를 넘어서 사회성을 갖고 있음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동화작가 김유(여·38) 씨도 올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한다. 김 씨는 2014년 첫 사업 당시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걱정쟁이 응원 북멘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없어져 가는 빨간 우체통을 살리고,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지역 어린이가 걱정 사연을 편지로 써서 ‘걱정 모으는 우체통’에 보내면 두 명의 동화작가가 걱정을 해소하는 손편지와 사연에 맞는 책을 선물했다. 김유 씨는 예술도 바깥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예술인은 자기 작업실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바깥 세계와 소통할 기회가 적다”며 “바깥 세계와 소통하면서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경험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파견지원 사업은 작업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서브잡(sub-job)이다. 예술인들은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때 느끼는 소모감이 덜 든다고 했다. 2015년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예술인의 절반 정도가 겸업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겸업예술인의 56%가 강사나 사무종사자로 종사하고 있다. 겸업 예술인은 예술활동 작업보다 예술활동 외 직업에 투입하는 시간이 주당 평균 10시간 이상 더 길었다. 이들은 예술 활동만으로는 소득이 낮고 불규칙하기에 겸업을 선택했다. 작년 한국여성재단 공간문화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퍼실리테이터 허연화(여·29) 씨는 파견사업이 예술인만의 창의적 시선과 능력을 요구해서 소모감을 덜 느꼈다고 말했다. 허 씨는 “파견지원 사업이 예술인 복지를 위한 사업인 만큼 매달 생계에도 도움이 되고, 내 작품 활동의 연장선이라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낫다”고 말했다.

소통의 매개가 되는 예술
참여기관은 특히 예술인의 개입으로 사람들 간 소통이 원활해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2015년 복지재단이 140개 참여기관에서 응답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기관의 27%가 ‘지역 주민과의 상호관계개선 및 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했다. 실제 일부 파견지원 사업은 조직문화 개선에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였다. 작년 애니메이션 제작 기업 ‘아이코닉스’에서 진행됐던 ‘깊고 무한에 가까운 소일거리’ 프로젝트는 예술인의 참여로 조직문화를 개선한 경우다. 파견 예술인들은 직원들이 업무 외적인 소통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들은 직원들이 갖고 있는 소소한 고민을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이를 사옥의 중심에서 전시했다. 직원들은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다른 직원에 관심을 갖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기언 대리는 “예술은 기업이 본래 어떤 가치를 추구했는지를 상기시키고, 직원들끼리 소통하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마을공동체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주요 과제가 되면서 주민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가 중요해졌다. 파견지원 사업은 관계성이 중심이 되는 공공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작년 관악주민연대에 파견된 예술가들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독거노인들과 정서적 관계를 맺으며 ‘생의 계단’이란 연극을 기획했다. 미술작가인 배민경(여·29) 씨는 연극배우 정영신(여·62) 씨와 함께 평균연령 80세의 노인들이 무대에 서는 것을 도왔다. 배민경 씨는 “처음에는 노인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듣고, 이들에게 연극적 몸쓰기와 미술놀이가 결합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연극으로 스케일이 커져 벅차기도 했지만, 독거노인들에게 정서적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복지재단은 기업에 예술과 예술인을 도구로 인식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파견 초창기에 기업이 예술인 특유의 높은 자존감과 자유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뉴얼대로 작업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기업은 예술인의 창조적 시각을 내부에 적용하는 방법을 예술가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기언 대리는 “예술은 조직문화 개선, 인력개발, 주민역량강화 등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질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며 “수치화된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예술이 기업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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