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만 주었을 뿐인데 온 세상 전해준 네가 있기에"
"생명만 주었을 뿐인데 온 세상 전해준 네가 있기에"
  • 이요세피나 기자
  • 승인 2016.05.15 0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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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5월 11일은 ‘싱글맘의 날’이다. 싱글맘의 날은 ‘아이를 미혼부모가 잘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미혼모, 한부모가정, 입양인 단체가 연대해 만든 날이다. 2010년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는 약 16만 6000명의 미혼모가 있다. ‘책임도 못 질 아이를 낳은 여자’, ‘성적으로 부도덕한 여자’라는 낙인이 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래서일까, 미혼모를 직접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직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없다고 말한 수많은 미혼모들의 거절 끝에, 미혼모 모임 인트리(Intree)에서 활동하는 두 명의 미혼모를 만나볼 수 있었다. 아이와 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활동하겠다는 이들의 사연을 듣고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해봤다.

34세가 되던 해의 겨울이었다. 임신했단 걸 알게 된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상치도 못했을 뿐 아니라, 남자친구와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당장 신경 쓰이는 건 가족들의 원망도, 친구들의 눈초리도 아니었다. 한 생명의 어머니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무게가 날로 커져갔다. 아이 아버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양육비도 약속받았지만, ‘나 혼자서 한 생명을 키울 수 있을까’하는 부담 때문에 입양과 낙태에 대한 압박이 나를 괴롭혔다.

임신을 한 지 7개월 째 되던 때, 결국 한 몸 안에서 함께 살아온 생명을 버릴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이를 지우길 완강히 원했고, 직접 낙태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알아보기까지 하셨다. 거듭되는 갈등 끝에 찾은 타협점은, 바로 입양이었다. 준수를 보낸 뒤 그 작은 심장이 몸 안에서 뛰는 소리가 생각났다. 스웨덴으로 해외입양 가는 과정 중에 있던 준수를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가 나기 전이라면 미혼모는 입양의사를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육의 대가는 처절하게 치뤘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애정이 넘치는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 자라온 내게, 부모님과 남남으로 지낸 7년이란 시간은 원망과 외로움이었다. 처음 아이 키울 때 가장 힘이 되는 게 엄마라는데.. 내 곁에는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하루는 외로움을 참다 못 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너는 이제 우리 집 딸 아니니까 끊어라.” 한동안 마지막이었던 아버지와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미혼모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예상했지만, 가족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기르는 데 따르는 차별은 경제적 어려움과 교묘하게 맞물려 나와 아이를 조여왔다. 임신을 했지만 직장을 그만두기는 싫었다. 만족스러운 월급과 대우를 받았던 미용실 일은 일주일도 채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저 나이에 어떻게 살았으면 미혼모가 됐을까’. 동료 직원이 뒤에서 한 말을 듣고 내가 있을 곳은 없단 걸 깨달았다. 수입이 끊겨 한동안 지원금을 받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돈은 한 달에 못해도 150만원이지만, 정부 지원금인 월 10만 원으로는 시중에 파는 가장 저렴한 분유 4통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아이를 낳고 처음 2년간 돈이 가장 많이 들지만, 이 시기는 주변인과 가족에게조차 이해받고 지원받기 힘든 때였다.
미혼모에 냉대와 차별에 나는 끊임없이 ‘당당하게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한 미혼모’가 아니다. 미혼모는 당당해야 할 필요가 없는 평범한 엄마고, 나를 세상에 공개한 건 당연해야 하는 거다. 준수가 4살이 됐을 무렵 미혼모의 권익 향상을 위해 인트리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은 많지 않다. 준수는 아직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같은 반 아이들의 엄마들은 나를 모임에서 소외시킨다. 모름지기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어야만 한다는 이 세상의 고정관념은 내겐 폭력이었다. 주말에 소풍가는 길에 지하철에 오르면 꼭 묻는 어르신들이 있다. “주말에 아빠랑 놀아야지, 아빠는 어디있니?” 그럴 때면 미혼모라고 대답도 못하고 그저 웃는 척만 했다. 사람들이 무심코 건네는 말과 시선이 폭력의 전부는 결코 아니었다. 국가의 행정과 시스템도 모두 부모가 모두 있는 ‘정상가족’을 전제로 하며 돌아간다. 아이와 미국 여행을 가려고 비자 발급을 받는 데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적금 넣어둔 것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양 측의 부모가 있는 것을 전제로 오늘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가장 두려운 건 내가 받는 이 편견과 차별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거였다. 12살 초등학생인 준수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엄마가 미혼모라고, 아빠의 진짜 자식이 아니라고 놀림을 당한다. 여러 차례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했지만 심해져만 가는 아이들의 욕설과 따돌림에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 전문의까지 찾아가봤다. 다행히도 준수는 왜 아빠가 없는지, 왜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는지 자연스럽게 배워갔다. 사귀다가 아이를 갖고,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엄마나 아빠가 없는 집도 ‘비정상’이 아니라는 걸 안다.  ‘엄마,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버이날에 준수가 준 편지의 일부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알게 해 준, 무사히 태어나 자라나 준 아이를 위해, 내 선택으로 아이가 힘들지 않은 세상이 오는 순간까지 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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