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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의 노리는 5.18 왜곡에 연대의 확장으로 대응해야
사회적 동의 노리는 5.18 왜곡에 연대의 확장으로 대응해야
  • 고대신문
  • 승인 2016.05.1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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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항쟁 36주년 기념 학술대회 발표글

항쟁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왜곡의 역사
지역주의·이념갈등 인지하고 인식과 제도 개선방향 모색해야

▲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청 앞 분수대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사진제공 | 5.18 기념재단

집단 양극화, 이로 인한 사회세력 간 충돌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일베, 뉴스타운 등 5·18민주화운동 왜곡 사이트가 존재하고 있는 사이버공간에서 이를 지지하는 세력과 배척하는 세력 간의 대립으로 발칸화(Balkanization)되고 있다.

하나의 단어만으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이 심화되는 오늘의 상황을 표현할 수 없다. 얼핏 봐도 현재 상황은 복잡하고 위험하면서도 난해하다. 5·18민주화운동 왜곡은 역설적이지만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된 결과였고, 기술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덕분이며, 문화적으론 사회 극단화와 관련이 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폄하는 1980년 항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문제다. 강약은 있었지만, 5·18민주화운동 왜곡은 국회 광주청문회를 거쳐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5·18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심해진 측면이 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왜곡의 진원지는 신군부다. 항쟁이 발생하자마자 신군부는 항쟁을 불순세력의 폭동으로 간주했다. 심지어 전국의 간첩들이 북한 지령을 받고 시위에 잠입해 광주시민을 선동한다는 허위사실을 담화문에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광주항쟁에 대한 왜곡은 방송과 신문 등 기성언론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언론은 신군부의 지침에 따라 5·18민주화운동을 ‘불순분자의 조종을 받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광주의 상황을 ‘폐허’로 지칭했고, 경향신문은 ‘난동’으로, 동아일보는 광주시민들에게 ‘이성을 찾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왜곡의 반복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광주폭동’으로 조작했다.
1980년 이후의 왜곡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 과정과 연동돼 이뤄졌다. 5·18에 대한 국가적 승인과 제도화가 진전될수록 보수 세력의 왜곡도 심해졌고, 대응도 조직화됐다.

광주문제에 대한 보수 세력의 불만이 조직적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권에서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난 후였다. 5·18특별법 제정은 광주문제가 제도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5·18의 정당성 인정을 넘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5·18특별법은 보수 세력이 새로운 대응을 모색하게끔 했다. 이 때 이들은 민중항쟁으로서의 5·18에 맞서 담론투쟁을 형성했는데, 그 때 내세운 논리는 신군부 때와 같은 ‘용공불순세력들이 배후조종한 시민들의 무장폭동’이었다.

이렇게 보수 세력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보수 세력의 갱신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꼬리표였던 ‘독재정권을 지탱한 수구세력’을 ‘반공주의 회복을 통한 국가정체성을 수호한 세력’으로, 정체성의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전두환의 정통성 회복에 있어 최대 걸림돌은 5·18 살인진압이었다. 5·18이 간첩 및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으로 규정된다면, 오히려 공산주의의 침략과 불순분자의 폭동을 진압한 대통령으로 격상시킬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결국 이런 보수 세력의 반격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 온 진보진영에 대한 반발과 함께 보수 세력의 반동이 호소력을 갖도록 만든 진보진영의 무능이 동시에 작용했다.

또한 왜곡담론에는 변형된 지역주의가 담겨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균열구조는 지역갈등이었다. 특히 정치적 동원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지역주의는 효과적인 분열전략으로서 작동했다. 즉 ‘광주=용공=친북=반민족’ 대 ‘영남=반공=반북=국가정통성’ 코드를 사용함으로써 경제성장, 역사주체로서 비호남과 호남을 분리하려는 정치적 지배전략과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왜곡담론은 특정 정세에 개입해 정치 상황을 전환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간 동안 인터넷을 통해 5·18왜곡담론이 생산되는 시기와 건수를 조사해본 결과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거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 생산건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촛불집회라든지, 남북관계와 관련해 민감한 정치적 시기(북한 핵실험, 서해교전, 전시작전권 통제 논란 등)에 5·18 왜곡담론이 집중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보수 세력은 남북 간의 대립을 조장할 필요를 느낄 때마다 5·18왜곡담론을 불러내 자신들의 정당화 논리로 내세우고 보수 세력의 결집을 시도하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 시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소통과 연대의 확장이다. 더 이상 광주만의 5·18 혹은 5·18단체만의 5·18이어서는 곤란하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오늘날처럼 심각해진 데는 5·18단체와 시민사회의 분리가 결정적이다. 따라서 기존 진보적 성향과의 연대 강화는 당연한 것이고, 합리적 보수주의 단체와의 접촉면도 넓혀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은 보수 전체의 시각이라기보다는 그 중에서도 수구적이고 편향된 집단의 정치적 선동이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법정의 호소다. 새로운 증거나 설득에도 불구하고 강화되는 극단화를 해결하는 최후의 방법은 사법정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는, 현행 형법 제 307조의 명예훼손죄 조항에 입각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하는 인사를 적발하여 고소·고발 등을 통해 사법책임을 묻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왜곡, 특정 지역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다.

셋째, 진실규명이다. 진실규명의 방향은 해명이 아닌 설명이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의 이해를 높이는 방향의 설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교육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접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야 하며 학계에서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있나’라는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은 진보세력에 대한 보수 세력의 이념공세이자 정치공세인데, 이는 공세수준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동의와 정치적 기반 확보를 위한 것도 있다. 보수 세력에 의한 5·18민주화운동 왜곡이 단순 광주시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이념갈등 문제라고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복잡하고 위험하며 난해한 문제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전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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