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붓을 쥐고 사랑으로 채색한 이중섭을 그리다
희망으로 붓을 쥐고 사랑으로 채색한 이중섭을 그리다
  • 강수환 기자
  • 승인 2016.05.1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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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서귀포에 위치한 이중섭 생가 사진 | 강수환 기자 swan@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손꼽히는 이중섭. 올해로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됐다. 이중섭의 작품은 현재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이중섭 100주년’, ‘국민화가’라는 찬사 뒤에 가려진 한 인간으로서의 이중섭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살아생전 아내를 유난히 사랑하는 로맨티시스트였으며,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그림을 통해 행복을 찾던 우직한 화가였다.

이중섭이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 씨와 주고받은 편지엔 인간 이중섭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중섭의 삶과 그의 예술은 어떻게 조응하고 있을까.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예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삶의 모습을 조명해봤다.

▲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제작 사진출처 | 서울미술관, 이중섭미술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리다
“…소중한 그대를 향한 이 뜨거운 사랑으로 나는 지금 가슴이 터질 듯하오. 온통 그대 생각뿐이라오. 하루 종일 터질 듯한 감격에 가슴이 두근거리오. 그대를 향한 이런 사랑이 있기에 점점 더 나는 창작욕과 표현욕에 불타오르는 것이라오. 지금 내가 사는 주변의 풍경과 호박, 호박꽃, 꽃봉오리, 커다란 이파리를 그리는데... 자기 전에는 반드시 그대들을 떠올리고 태현 남덕 태성 대향(이중섭의 호) 네 가족의 생활... 행복하게 하나로 녹아든 모습을 그린다오…”
-1953년 9월 초, 통영

가족이라는 모티프는 이중섭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만나 결혼한 일본인 아내 마사코는 창작의 원동력이었다. 서울미술관 한 큐레이터는 “가족은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자, 삶을 지탱해준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슬하에 아들 두 명(태성, 태현)을 둔 이중섭은 가족과 한국전쟁기인 1951년 제주 서귀포에서 11개월간 함께 살았다. 제주에서의 삶은 가족과 함께였기에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네 식구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살았던 1.4평 남짓한 초가집의 문간방은 현재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그가 안착했던 집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섶섬을 비롯한 서귀포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였던 풍경은 이젠 거대한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보긴 힘들다. 하지만 문간방의 네 식구의 온기는 아직도 서려 있는 듯하다. 변종필 미술평론가는 “제주에서 가족과 보낸 시기는 배고프고 힘겨웠을 피난생활이었지만, 이중섭의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안락하고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서귀포 생활 당시 그려진 작품 중 유토피아적인 공간을 표현한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제주에서의 생활 이후 장인의 부고로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가난 때문에 이중섭과 가족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아내 남덕과 이중섭이 주고받은 편지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쓰여있다. 가족과의 이별 속에서 겪게 되는 고통이 그의 그림으로 표출되거나, 가족을 그림에 등장시키면서 그가 평생 가지고 있던 극진한 사랑과 애절한 마음을 표출했다.

“우리 태현이, 잘 지내지요? 학교 친구들도 다들 건강하지요? 아빠는 건강하게 전시회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빠가 오늘 엄마, 태성이, 태현이가 소달구지를 타고 아빠는 앞쪽에서 소를 끌면서 따스한 남쪽 나라로 가는 그림을 그렸어요. 소 위에는 구름이 떠 있네요. 그럼 건강히 잘 지내요.”
-1954년 12월 중순, 서울

그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들 둘에도 그림을 그려넣은 편지를 자주 부쳤다. 일부는 훗날 그를 유명하게 한 작품의 습작이 되기도 했다. 변종필 평론가는 “감정을 담은 그림이 가까운 사람에겐 그 어떤 글보다도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편지의 그림이 그 사람의 감성을 더 잘 전달하는 매개체였다”고 말했다.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렸던 습작을 바탕으로 한 <길 떠나는 가족>은 가족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가족이 길을 떠난다는 것은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연상시키며, 이중섭이 말한 ‘따스한 남쪽 나라’는 그가 그린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이는 가족이 다시 재회하게 되는 그의 바람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제작

가난 속에서 밝게 피어난 예술
“…지난겨울도 거의 제대로 입지 못하다가 최상복 씨가 가져다준 개털 외투를 입고 잤는데, 온기도 없는 8평짜리 방에서 혼자 밤을 보내야 했어요. 거기에다 산꼭대기에 지은 판잣집이다 보니 바람이 너무 불어닥쳐요. 추운 데다 배도 고프고…”
-1953년 3월 9일, 부산

이중섭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전쟁통이었던 작품활동 시기에 그는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그는 제주에서의 생활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집 앞바다에서 채취한 해초와 게로 연명하는 생활을 했다. 그의 작품 소재로 게가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많은 게를 잡아먹은 미안함에 게를 그의 작품 속 중요한 소재로 이용했다고 한다. 아들 태성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 넣은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중섭이 작품 활동하던 시기에 그의 그림이 세간의 찬사를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몇몇  개인 전시회는 호평 속에서 치러졌고, 작품이 종종 팔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변종필 미술평론가는 “그림을 사 놓고 그림 값을 치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이중섭이 인정과 배려심이 많은 성격이라 돈이 생기면 고마운 사람들에게 성의를 표하느라 돈이 모이기 힘든 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담배 속지에 그린 은지화는 가난 속에서 이중섭이 독창적이고 실험적으로 시도한 산물이다. 은지화는 재료의 부족에서 시작됐지만, 그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발전했다.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은지화는 이중섭이 고안한 독특한 방식의 그림으로, 재료 수급이 어려웠던 시절을 돌파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단순히 습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 일부는 20세기 한국인 화가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돼 있다.

가난은 그의 그림에선 드러나지 않았다. 이중섭의 그림은 침울하고 암울하기보단, 밝고 가족과의 사랑과 희망을 꿈꾼 것들이 대부분이다. 변종필 미술평론가는 “현실은 아프고 비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의 예술은 그것을 이겨낸 또 하나의 이상적인 결과물이었다”면서 “이중섭이 한 말 중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 말했다.

▲ <황소>, 1953년 제작

소를 사랑한 화가
“…그대 편지가 조금 늦어지니까 그대와 아이들이 감기에나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스럽소. … 이렇게 편지가 늦어지면 난 힘을 낼 수 없어요. 아고리(이중섭 본인)는 편하게 지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결코 굴하지 않고 소처럼 듬직한 발걸음으로 힘을 내 그림을 그린다오…”
-1954년 11월 21일경, 서울

이중섭은 소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그의 작품에선 소가 많이 등장한다. 그는 일본 유학 시기와 고향 원산에서 생활할 시절부터 소를 많이 그렸다. 원산에서 소를 그리느라 오래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려 잡혀간 일화도 있다. 그는 ‘소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소는 이중섭에게 있어서 자신을 투영하는 자화상과 같은 존재이자, 시대를 담는 소재였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소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의 여러 ‘소’ 작품엔 당시 그의 상황과 기분이 표현돼 있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주일간 가족과 재회를 하고 돌아온 통영에서 그의 걸작 <황소>가 탄생했다. 열심히 작업에 매진해 가족들을 다시 만나야겠다는 각오와 희망으로 충만해진 통영에서 제작된 <황소>는 활력이 넘치는 붓 터치와 역동적인 황소의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반면 말년에 그려진 소는 분노나 좌절감이 느껴진다. 말년에 이르러 한동안 보지 못한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계속된 생활고의 고통이 소에 담겨있는 것이다.

제주 이중섭 생가의 문간방 한 쪽 벽엔 ‘소의 말’이란 이중섭의 시가 걸려 있다. 그는 평생을 걸쳐 소에게서 보려 했던 소의 정신과 숨결을 그림에서 찾았고, 소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으려 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가슴 환히 헤치다’
- <소의 말>, 이중섭

 

참고자료 | <이중섭 편지> 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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