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들, 소비자단체 홍보대사로 넣어줄게. 여기 소비자권리 배지하고, 부채도 있어.” 정겨운 인사를 건네는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단체연합 회장의 손주름은 지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 했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대의 시장, 남대문시장에서 40년 넘도록 소비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온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올해 설립 52년을 맞은 단체에서 지금껏 몸담아 활동한 그에게 소비자운동의 역사와 방향을 물었다.

▲ 사진 | 서동재 기자 awe@

 

  - 소비자운동에 참여한지 50년이 됐다
  “내가 그러니까 소비자 운동의 조상이나 마찬가지여.(웃음) 50년, 길게 보면 60년 됐지. 6.25 전쟁 당시에는 물자가 너무 모자라다보니 부정·불량품으로 된 외제품이 막 몰려오는 가짜의 세상이었어. 그 후로 박정희 대통령 때는 잘 살아 보자면서 기업들에게만 돈을 주고. 국민의 자유나 권리는 생각을 안 했던 상황이라 어려움이 많았지.

  그러던 중 1964년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첫 번째로 선언한 게 있잖아. ‘국민이 국가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라.’ 소비자 권리 4가지가 선포된 거 말이야.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사를 반영할 권리. 그것을 보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다보니 소비자 권리야말로 우리가 이뤄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
그래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YWCA, 전국주부교실중앙회 등 민간여성단체가 4곳이 모여 1976년에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만들었지. 1979년 1월 1일부터는 소비자단체가 고발센터를 만들어 운영했어. 기다렸다는 듯 신고가 정말 많이 들어왔다고.”

 

  - 소비자보호기본법 제정에 기여했다
  “일본에 있는 소비자기본법을 직접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맞게 도입했지. 20명 발의를 통한 최초의 민간 입법인 셈이야. 사실 대통령한테 이런 이야기를 할 엄두도 못 내던 상황이었어. 소비자권리 운운하면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환경운동도 못하게 했었어.

  결국 1978년 12월 3일에 소비자기본법을 통과시켰어. 20명의 국회의원에게 ‘우리나라도 지금은 가난하지만 앞으로 경제발전을 하면 권리를 보호해야하지 않겠나. 우리 국민들이 우리 제품을 제대로 알아야하지 않겠냐’고 설득했지. 국회의원들마다 만나서 호소하고 그랬지. 새벽 5시에 국회의원 집 앞에 찾아가서 인사하며 ‘기본법 꼭 통과 시켜주세요’하기도 했어.”

 

  - 기억에 남는 소비자운동은 무엇인가
  "부정불량식품에 대한 운동이 기억에 남아. 먼저, 간장. 간장은 콩, 소금, 물 이 세 가지 섞은 것이 간장 아니여? 그런데 강냉이로 간장을 만드는 곳이 있더라고. 껍데기에 카라멜 소스를 넣어서 48시간 만에 만든 금간장, 은간장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것을 사가지고 선반에다 다 걸어서 병째로 1년 놨는데도 원래는 하얗게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를 않아. 몰래 공장에 가봤더니, 염산이 떨어지고 그런 곳이었어. 그걸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렸더니 난리가 났지. 지금의 양조간장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어.

  위협도, 모략도 많이 받았어. 간장 파는 곳, 대리점에서 벌떼같이 와서 죽인다는 거여. 그래서 경찰이 일주일을 집 앞에서 지켜주기도 했어. 또, 정보부라는 곳에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어. 누가 나를 일렀나봐. 경상도 말을 쓰는 대령이 기다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군인 아저씨는 경상도 말을 쓰는 것을 보니까 남쪽이네요. 나는 이북에서 내려왔어, 팬티바람으로. 내가 북한에서 내려온 빨갱이라고? 빨갱이 싫어서 내려온 사람을 어디다 대고!’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 참 여러 고비들이 있었네."

 

  - 소비자 권리가 보장돼야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면, 이에 따르는 권리로 소비자 권리가 있는 것이지. 국가는 국민을 안심하고 안전하게 해줄 의무가 있잖아. 연장선으로 소비자권리 보장을 위한 소비자 운동 자체가 지니는 중요성도 여럿 있어. 소비자 운동은 인권운동이요, 환경운동이라고 할 수 있어. 운동 그 자체로도 민주사회에서 지니는 의미가 많다는 거야.

  최근 가습기 문제도 나오잖아. 이에 대해 소비자 단체들이 벌이는 불매운동은 소비자 운동의 꽃이야. 옥시 제품이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동시에 다른 회사들이 제2, 3의 옥시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블랙컨슈머처럼 함부로 휘두르면 안 돼. 블랙컨슈머가 잘못하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그만큼 피해본 것을 원가에 포함시키겠지.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도 정의로운 방법을 추구해야해. 정의롭게. 항상 그 점을 잊어버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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