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기업으로 인해 인권을 침해받는 일이 전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 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3세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한국도 별반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유엔은 국가들의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두고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 그 결과,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the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이행원칙)이 발표되게 되었다. 이행원칙의 주요내용은 1)국가는 기업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법적)의무가 있다. 2)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기업 활동을 할 때, 인권실사(Due Diligence)를 실시하라. 3) 그리고 기업으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사법적/비사법적 장치들을 마련하라 이다.

▲ 2014년 2월 21일, 제네바에 위치한 UN 유럽 본부에서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실행에 대한 인권단체의 자문과 각국의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 | Business&Human Rights Resource Centre

  ‘보호, 존중, 구제’의 틀로 이뤄진 이 이행원칙은 큰 의미를 지니는데, 유엔이 원칙을 세우게 되면 회원국들과 국제기구 및 기관들이 기업의 인권문제를 다룰 때에, 이행원칙에 근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책임을 진다’라는 원칙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이를 어떻게 실현해 할지를 두고, 유엔회원국 및 국제기구들, 시민사회와 기업들 사이에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행원칙은 법률의 형태로 실현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이행원칙은 공기업과 투자사를 포함한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그리고 기업들의 모든 활동범위를 그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면, 옥시가  원료를 구매하는 곳이 어디이든, 옥시 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하청업체가 세계 어디에 있든 간에, 그리고 옥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국적이 어디냐 상관없이 옥시는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서 유엔이 옥시를 제재 할 수는 없지만, 영국정부는 옥시의 인권침해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 받게 될 것이다. 한국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기업이 국내에서 저지른 인권침해 문제는 물론이고 외국에서 저지른 인권침해 문제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다뤄지게 된다. 실제로, 이행원칙이 발표된 후에, 한국정부는 유엔의 인권 특별보고관들로부터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문제에 대한 질의를 받았고 이에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유엔은 이행원칙 발표 이후, 이 문제를 담당하는 실무그룹을 만들었다. 실무그룹은 총 5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업에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을 접수하고, 국가방문을 통해서 각 국가들의 이행원칙 이행 여부를 조사해서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 실무그룹이 5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한국을 공식 방문하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포함하여, 여러 현안 문제들에 대해 피해자들과 기업, 정부를 만나 면담할 예정이다.

  한국은 유엔의 주요 직책인 사무총장, 인권이사회 의장국, 경제사회의장국을 한국이 맡고 있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진 만큼, 한국정부와 기업이 기업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모범을 만들어 주기를 국제사회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기업들은 기업이 왜 ‘인권’을 존중해야하는지를 이해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엔이 말하는 ‘인권존중의 책임’은 기업들이 최소한 실정법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하고 법률이 포괄하지 못하는 인권문제들도 기업이 존중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기업은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국내법도 제대로 준수 못하는 한국기업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해외 진출 한국기업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작년에 열린 G7 정상회담에서도 기업의 인권문제가 공동선언문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기업과 정부는 경쟁력 확보차원에서라도 인권존중 경영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책임 없는 이익은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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