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학에서 매 학기 ‘나’를 만들었다. 40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맞게끔 시나리오는 조금씩 뜯어졌다. 소박한 카메라가 일주일 동안 나의 장면들을 담아냈다. 장면과 장면의 조합으로 의미를 만들기 위해 밤낮을 잘리고, 붙이며 편집 당했다. 그는 수업 시간에 6개월 동안 고민과 고생을 거쳐 완성된 나를 스크린에 투사했다. 그의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는 단편영화가 관객을 만날 유일한 통로인 영화제에 나를 출품했다. 다행히도 수상했고, 영화제에서 나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한몸에 받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영화제가 끝나자 언제 존재했냐는 듯, 나는 묻혔다.

 

▲ 이태원 우사단길에 위치한 단편영화 전용관 '극장판'의 권다솜 대표. 사진 | 이지영 기자 easy@

 

  단편영화는 장편의 상업영화 혹은 독립예술영화와 달리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단편영화는 아마추어 감독이 프로가 되기 위해 거쳐 가는 연습 단계이고, 장편영화를 제작할 기회를 얻기 위한 단계다. 장편감독이 가끔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편이고, 단편영화를 보고자 하는 수요층도 얇다. 권다솜(여·29) 씨는 대학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이 작품들을 상영할 공간이 생기길 바랐다. 이에 권 씨는 단편영화만 상영하는 영화관을 직접 만들었다. 이태원 우사단길 골목에서 가정집인 척 숨어있는 영화관 ‘극장판’이다.

  극장판은 서울 시내 유일한 단편영화 전용관이다. 권다솜 대표는 3개월에 한 번씩 공모를 통해 영화를 선정해 감독에게 직접 작품을 받거나 영화제나 기획전에서 눈여겨 본 작품을 배급사를 통해 들여오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극장판에 들어오든 간에 영화 상영으로 생기는 수익은 감독 혹은 배급사가 절반을 갖는다. 티켓값은 40분 이내 영화 한 편에 2000원으로, 그중 1000원은 공간 유지비로 사용한다. 권다솜 대표는 개관 초기부터 이러한 수익 분배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단편영화 감독들이 돈을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아요. 감독님께 드리는 돈은 ‘당신의 영화를 사람들이 이만큼 봤습니다’고 말하는 일종의 증표죠. 이 돈으로 감독님이 차기작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영화의 수준이 높아지겠죠.”

  극장판은 좌석도 6석뿐이고, 상영시간표가 없다. 관객이 오면 주인이 이번 달 상영작을 태블릿으로 간단히 소개해 직접 영화를 고르게 한다. 단편영화 감독이나 영화 전공자가 단골손님이지만, 최근에는 이태원 데이트코스로 소문나면서 일반인 관객도 늘고 있다. 이들 중 재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권다솜 대표는 단편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입문자’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다. “단편영화는 불친절해요. 많이들 ‘뭐야, 벌써 끝났어?’라고 말씀하시죠. 기승전결이 확실한 장편영화에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짧아서 집약적이고, 파격적인 게 단편영화의 매력이거든요. 이 매력에 빠져서 관객들이 다시 오도록 만들려고 고민 중이에요. 비교적 덜 어렵고, 조금은 가벼운 단편영화부터 보여주려 하죠.”

  권다솜 대표는 영화는 예술의 한 분야인 만큼 상업적인 영화부터 실험적인 작품까지 다양하게 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상영 공간의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이 폐지된 이후 지원금을 받지 못해 경영난으로 폐관한 전용관만 세 곳이다. 대기업 멀티플렉스와 소기업 전용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영화계 다양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극장판이란 공간이 있었기에 관객들이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었겠죠. 현재 영진위 정책이 다양성 영화를 마이너 영역으로 밀어 넣다 보니 사람들에겐 난해한 영화란 편견이 깊숙이 자리 잡혔어요. 좋은 다양성 영화가 세상에 내보일 기회도 없이 사장되고 있어요.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려는 극장과 배급사에 대한 지원을 늘려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지켜야만 해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