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생소한 국가의 문화 이해

수요 적지만 지역주민 유인 가능

 

  빨간 철제 계단을 올라 건물에 들어서자 매표소가 보인다. 상영시간표에는 흥행 중인 영화인 <곡성> 대신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이 쓰여 있다. 이곳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는 안암동에 자리 잡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전용관) KU시네마트랩이다. 국내외 독립예술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전용관은 서울 시내에 15개가 있으며, 그중 대학 내 위치한 전용관은 이화여대, 건국대, 고려대 세 곳이다. 2008년 대학 내 영화관으로는 처음으로 이화여대에 ‘아트하우스 모모’가 생긴 이후 2011년에 건대 ‘KU시네마테크’, 2012년 고려대 ‘KU시네마트랩’이 생겼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영화사 ‘백두대간’이 영화 선정부터 영화제 기획 등 운영 전반을 맡고 있고, KU시네마트랩은 영화사 ‘꿈길제작소’가 건국대 KU시네마테크와 함께 운영한다. 멀티플렉스가 한국 영화계의 대세로 자리한 상황에 대학 내 전용관은 학생과 지역주민에게 외부에선 접하기 힘든 영화들로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가 2015년 5월 21일 KU시네마트랩에서 열렸다. 영화 <동화나라> 상영 후 유럽지역연구가 김새미 박사가 관객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고대신문 DB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화 상영
  영화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다양성이다. 독립예술영화 중 주제, 연출 측면에서 수준이 높은 영화라면 수익성에 상관없이 한 달가량 상영한다. 2015년 6월 독립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개봉 초기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KU시네마트랩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발견하고 스크린을 할당했다. 이 영화는 이후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입소문을 타 멀티플렉스에서도 상영관을 개방했고, 독립영화계에선 이례적으로 3만 6000여 명 관객을 모았다. KU시네마트랩 주현돈 영사기사는 “수익성보다는 영화의 질이 우선이며, 멀티플렉스나 다른 전용관에서 보기 어려운 영화를 상영한다”고 말했다.

  주 관람객의 특성에 따라 대학 내 전용관 별로 성향이 다양하다. 멀티플렉스와 달리 전용관은 프로그래머의 작품 선정에 따라 영화관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KU시네마트랩의 경우 20대 학생 수요가 많은 만큼 이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 멜로 장르의 영화를 선정하는 편이다. 건대 KU시네마테크는 대학 주변에 주거공간이 밀집돼 있어 주민 관객 비율도 높아 중장년층 세대의 취향을 고려한다. 주현돈 영사기사는 “건대 KU시네마테크는 40대~50대 여성이 가벼운 프랑스 영화나 오래된 감독의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편”이라며 “주 관객층에 대한 고려가 영화 선정에 일정 부분 반영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라의 작품을 선보여
  한국 영화계에서 다양한 국적의 영화를 접할 기회는 적다. 2015년 한국 영화의 제작국가별 관객점유율에 따르면 한국영화가 52%, 미국영화가 42.6%를 차지했다. 이외 영화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영국, 프랑스, 일본까지 합하면 5개국의 영화가 한국 영화 스크린의 99%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 호평 받은 영화가 개봉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난 2월 이스라엘 여군에 대한 영화로 이스라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호평받은 <제로 모티베이션>은 멀티플렉스 CGV와 메가박스에선 상영되지 않았다.

  대학 내 전용관은 국적에 상관없이 영화를 선정하고 있고,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엮은 영화제도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26일부터 제5회 아랍영화제를 열어 멀티플렉스에서는 접하기 힘든 아랍영화를 상영한다. KU시네마트랩은 2013년부터 아리랑 시네센터와 함께 유럽단편영화제를 열고 있다. 19일부터 열린 제4회 유럽단편영화제는 ‘가족’을 테마로 핀란드, 이탈리아 영화 등 국내에서 자주 상영되지 않는 국가들의 단편영화를 상영한다. 

  이러한 전용관이 상영하는 다양한 국적의 영화는 학생들이 외국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2015년 1학기 ‘러시아 문학사’ 수업을 담당했던 최정현(본교·노어노문학) 강사는 일부 학생을 대상으로 KU시네마트랩에서 개봉한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을 함께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최근 러시아 작품은 스크린 수가 적어 수업시간에는 대부분 소비에트 시대 클래식 영화를 수업 보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최정현 강사는 “러시아의 현재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교내에 다양한 국적의 영화를 개봉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이 있는 만큼 학생들이 공강시간을 이용해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학과 협력하며 영상 교육해
  수준 높은 장비를 갖춘 전용관은 대학 수업과 학내 동아리에 공간을 제공해 영상교육에 협력하고 있다. 건국대 KU시네마테크는 예술문화대학 학생들의 실습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KU시네마트랩은 학내외 단체에 저렴하게 대관해 상영기회를 제공하거나 본교 미디어학부 수업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교내 방송사 KUTV는 18일 KU시네마트랩에서 제23회 영상제를 열었다. 2015년까지는 인촌기념관에서 영상제를 진행했지만, 전문 상영공간이 아닌 만큼 화질과 음향에서 만족도가 높지 않아 올해 KU시네마트랩을 이용했다. 강수희 영상제 총연출자는 “KU시네마트랩이 전문 장비를 갖추고 있어 5개월 동안 준비한 영상을 관객들에게 만족스럽게 선보였다”고 말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대학 내 위치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대학 교육과의 연계가 활발하다. 백두대간은 예술영화를 접하지 못한 10대와 20대를 새로운 관객층으로 유입하는 것을 목표로 젊은 세대의 유동이 많은 신촌 이화여대 내에 아트하우스 모모를 개관했다. 매년 ‘모모 영화학교’를 열어 대학생과 지역주민에 영화사 교육 등을 진행한다. 올해는 이화여대 인문과학원과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흐름에 대한 강좌를 공동주최했다. 아트하우스 모모 조현주 주임은 “현대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누벨바그 영화가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체적인 노력과 정책적 지원 필요
  대학 내 전용관은 ‘시네마테크’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시네마테크란 기존 극장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문제작,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예술영화 등을 상영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술영화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미지가 남아있다. KU시네마트랩을 한 달에 네 번 정도 찾는다는 안준수(미디어15) 씨는 “좋은 예술영화가 나오면 친구들과 같이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혼자 보는 편”이라며 “다양성 영화 관람이 취미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영화가 지루하고, 난해하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전용관은 예술 영화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각종 영화제와 기획전을 준비하고, GV(관객과 감독과의 대화), 예술영화 교육 등을 진행한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시니어 큐레이터 모집’으로 50대 이상 연령층을 포섭하고 있으며, 2015년 10월에는 ‘노동인권’을 주제로 한 기획전도 마련했다. 본교 독립영화감상 중앙동아리 ‘돌빛’ 최승훈 회장은 “독립예술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쉬운 영화부터 경험해야 흥미를 가질 수 있다”며 “계절과 트렌드에 맞는 기획전을 준비하고, SNS를 통한 홍보를 활발히 해서 관객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KU시네마트랩에서 방송영화 수업을 하는 노광우(본교·미디어학) 강사는 “멀티플렉스와 전용관이 공존해야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과 관점에 대해 긍정하는 관대한 태도를 함양할 수 있다”며 “내 주변을 넘어선 다른 삶을 살펴보는 계기를 독립 예술, 그리고 외국 영화를 통해 경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학 내 전용관은 일반 전용관보다 그나마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에 위치해 홍보 효과가 높고, 대학과 협력해 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지역주민을 관객으로 유인할 수 있어서다. 국내 전용관은 예술영화 수요층이 얇아 자립이 어렵다. 2015년까지 대부분의 전용관은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김세훈, 영진위)가 2002년부터 시행한 ‘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영화 다양성을 지켰다. 최근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예술영화 시장까지 진출하고, 영진위의 전용관 지원사업이 폐지되면서 경영난이 심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예술영화 상영관의 경우 흥행성과 상업성이 높은, 소위 ‘아트버스트’ 영화를 위주로 상영한다. 그마저도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 영화는 최대 2주 정도 상영하고, 관객의 방문이 적은 시간대에 끼워 넣어 교차상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독립영화 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의 원승환 이사장은 “중소기업이 꾸려나가던 예술영화 시장에 멀티플렉스란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예술영화 시장은 성장하지만 예술영화관은 문을 닫는 현실”이라며 “시장논리에 의존하는 멀티플렉스만으론 영화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영진위는 정책적으로 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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