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여돼, 안경 쓰고 여드름 난 못생긴 돼지’
‘골방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만 파는 은둔자’

여전히 일부 웹툰, 드라마 속에서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들은 ‘오타쿠’다.
하지만 지금은 마냥 저런 이미지만으로 ‘오타쿠’라는 단어가 사용되진 않는다. 오타쿠에서 파생된 단어 ‘덕후’는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자연스레 따라붙는 단어가 됐다. 오타쿠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으며 그들의 전문성은 어느 정도일까.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컬렉터의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국내에 ‘오타쿠’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이는 본래 일본에서 시작된 말로 1984년 일본의 사회학자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男)가 처음 사용했다. 이 단어는 ‘특정 분야에 깊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란 뜻과 함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사회적으로 어두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동반했으며, 1990년도에 들어서야 공식적인 용어가 됐다. 스기모토 쇼고(杉本章吾, 문과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오타쿠는 2000년대에 들어서 오타쿠 남성과 상류층 여성의 로맨스 이야기 ‘전차남’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했다”며 “하지만 그 후 ‘오타쿠’는 픽션 속의 캐릭터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뜻하는 ‘모에’의 의미가 합쳐지면서 ‘만화나 애니 속 미소녀 캐릭터를 애호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초창기 팬, 수집가 등으로 칭해지던 오타쿠가 최근 들어 ‘마니아를 넘어선 전문가’라는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오타쿠는 팬, 마니아와의 경계가 뚜렷하진 않지만, 전문가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차별성을 둔다. 조홍미(경성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자신의 논문 ‘오타쿠에 관한 인식연구’에서 “오타쿠는 기존의 대상을 일방적으로 우러러보는 상위의 개념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위치에 두고 재배치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며 “오타쿠는 팬, 마니아와 다르게 관련 유사분야 전반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 무조건적인 숭배가 아닌 대상에 대한 비판의식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돋보이는 프로슈머

오타쿠들은 까다로운 소비자이자 제품 생산과 판매에도 직접 관여하는 프로슈머다. 해당 영역에 대한 욕구가 많은 오타쿠들은 수집가로서 주요한 소비자다. 남정숙(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교수는 “오타쿠들은 트렌드에 민감해 패션, 화장품, 액세서리 등 기업의 다양한 테스터로 활용되고 있다”며 “얼리어답터로서 일반인에게 해당 제품에 대한 평가를 제공하면서 전체 시장의 소비를 돕는다”고 말했다.

이런 오타쿠들이 생산을 겸하는 이유는 일반 시장에서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전문성을 활용해 대상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면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자 활동해왔다. 실제로 일본의 주식회사 가이낙스는 아마추어 소비자들이 모여 설립된 곳으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제작한 곳이기도 하다. 스기모토 쇼고 교수는 “어릴 때부터 소비자로서 특수촬영물을 즐겨왔던 소비자들이 스스로 기술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고, 그들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훌륭한 퀄리티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집단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지만, 한편으론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치해 그들만의 시장으로 고정될 여지도 있다. 일본의 코믹마켓이나 한국의 서울코믹월드의 경우, 대부분 오타쿠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콘텐츠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만화 덕후 천의진(여·18) 씨는 “일반인들을 타깃으로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기엔 자원과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며 “보통 코믹마켓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경우, 팬시와 같은 귀여운 창작물이 아닌 이상 인지도가 낮은 만화 캐릭터는 구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빈약한 국내 생산자로서의 오타쿠

한국에서도 시장의 트렌드를 읽고 신규 산업을 끌어갈 수 있는 오타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산업의 오타쿠는 축소될 것이지만, 자동차 산업이나 드론의 영역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준전문가 이상의 아웃풋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오타쿠를 위한 이벤트 공유 서비스 ‘오타카츠’를 개시한 캡슐코퍼레이션의 이미호 대표는 “일본에서는 제품을 생산하고 재가공하는 ‘마스터’들을 기업에서 스카우트하는 등 오타쿠를 적극 활용한다”며 “한국에서는 기업의 테스터, 파워 블로거와 같은 전문적인 소비자에서 벗어나 생산자가 되는 과정이 미흡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 오타쿠 시장의 규모 역시 작은 편에 속한다. 일본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오타쿠가 향유하는 시장의 규모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 내 6%, 완구 시장 내 11.5%에 이른다. 이에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해내는 능력을 기를만한 문화적 분위기와 교육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남정숙 교수는 “한국 내에만 해도 20만 명이 넘는 다양한 오타쿠들이 있는데, 이들 중 중·고등학생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3D 창작과 같은 기술적 요소를 배울만한 콘텐츠 교육 시설을 마련해 애니메이션과에 한정된 진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오타쿠 시장의 콘텐츠인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 더 확장된 분야도 필요하다. 최근 홍대에서 개업한 갓챠샵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캡슐토이뽑기산업 ‘가챠폰’은 오타쿠적 요소에서 시작된 산업이다. 오덕규(가명) 사장은 “가챠폰을 즐기는 소비자는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상당수이고, 2030 세대의 비율이 높다”며 “소비자는 해당 산업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상태인데 공급자가 오히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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