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14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일고 있고, 기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하지만 사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제기된 지는 5년 이상이 지났다. 그렇다면 안전하지 않은 살균제는 왜 계속 판매됐고, 기업은 때늦은 비난을 받는 걸까? 시장의 경쟁구조가 공정하다면 옥시 제품은 시장에서 이미 퇴출됐어야 하고, 안전한 살균제를 만드는 다른 기업이 우위를 점했어야 한다. 신광식(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대기업은 독점력을 남용하고 있고, 시장은 이를 전혀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정한 경쟁과 진입장벽 해소를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편중된 권력이 시장을 움직인다

시장은 경제학의 고전적 원리대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고 정치적인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지주형(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는 국가 단위의 경제적 의사결정이 정치 권력을 가진 지도자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원리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도입되면 다수와 약자가 보다 더 공평한 경쟁을 하게 되고, 시장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법적 정당성 역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통해 확보됐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해 대규모 유통업체들이 위헌소송을 제기하자, 헌재는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를 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무법인 위민 김남근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순수한 자유경제시장이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이라며 “헌재는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유럽의 선진적인 판결을 지속적으로 차용하며 진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저성장 시대의 대안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저성장의 원인을 부의 양극화와 내수 부진에서 찾고, 시장경제에 사회적 요소를 도입해 이를 해결하려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신광식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경쟁을 촉진시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지, 모든 국민이 결과적 평등을 누리자는 주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이 꼽힌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수요를 확대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체제를 말한다. 이와 달리 역대 정부는 높아지는 임대료, 등록금, 물가 자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이자율을 낮춰 대출을 확대하는 ‘부채주도 성장’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2014년 기준 총 가계부채가 1084조원에 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2008~2013년 한국의 연 가계부채 증가율인 8.7%는 프랑스(4.7%), 독일(0.5%), 미국(–0.7%)과 비교해 봤을 때 크게 높은 수치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김남근 변호사는 “임금 인상과 생활임금제 도입,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도 등 적극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소득을 늘려 내수를 살리는 것이 한국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이다”고 짚었다.   

‘노동 민주화’ 필요하다는 주장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양극회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자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적인 과제로 자리 잡았다. 세계 상위소득 DB에 따르면 한국 상위1%의 소득점유율은 약 12.2%로 이는 DB에 등록된 19개국 중 3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초점이 재벌개혁과 대자본 규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경제민주화 담론은 자본과 노동의 교환관계가 비대칭적인 시장에서 발생하는 가장 핵심적인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중소기업과 대리점이 거래조건을 강요받는 현실에 ‘노동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같은 입장은 약자가 강자와 대등해지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를 옹호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주장이다. 기업가 뿐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등 모든 시장 참여자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민주주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훈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결성을 인정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