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성 없고 급조된 공약

대부분 이행 미흡해

제18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12년 11월 필자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의 경제민주화 공약들이 새누리당에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일부 공약의 경우 그 구체성이 떨어졌고, 공약집의 내용도 발표될 때마다 다소 달라져 급조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또, 후보의 과거 행적과 당의 이념적 편향적을 감안했을 때 공약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믿어주었고, 결국 그 해 12월 19일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다.

▲ 그래픽 | 허윤 기자 shine@kunews.ac.kr

경제민주화 ‘용도폐기’의 조짐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 왔다. 이듬해 1월에 구성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경제민주화를 챙길 사람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결국 2월 21일 발표된 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차제라 사라졌다. 같은 달 25일 취임식 때 경제민주화가 잠간 언급되긴 했지만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으로 임명한 현오석-조원동 경제팀은 경제민주화하고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또, 선거 때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이 때 쯤 사실상 축출된 상태였다.

취임 이후 모든 공약이 폐기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일부는 정부에서 법안이 마련되었고, 국회도 통과했다. 하지만 통과과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의해 대부분 ‘난도질’을 당했고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를 억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어떤 법안은 대통령의 다른 관심 법안 통과를 위한 ‘미끼’로 이용되면서 ‘운 좋게’ 통과된 경우도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 정부안이 마련되어 공청회를 두 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제출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와 소수주주권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이 그 예이다. 10대 재벌 회장단과의 오찬 이후 ‘신중히 검토해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법무부는 그 이후 상법 개정안을 서랍 속에 넣고 밀봉해 버렸다. 경제개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취임 이후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언급한 것은 2013년 11월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경제민주화의 빈자리는 창조경제, 규제완화, 경제 살리기로 채워졌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공약의 진실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던 경제개혁연구소는 2013년 8월부터 매 6개월마다 공약 이행사항을 점검하였다. 이를 위해 전체 공약을 ‘대기업집단 규제 (2개 소항목, 20점),’ ‘공정거래 질서 확립 (4개 소항목, 20점),’ ‘금융회사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3개 소항목, 20점),’ ‘사후구제 및 감독 강화 (4개 소항목, 20점),’ ‘이사의 독립성 강화 (1개 소항목, 10점),’ ‘기타 (2개 소항목, 10점)’의 여섯 가지 대항목 (16개 소항목)으로 분류하였는데 가장 최근의 이행평가가 이루어진 2016년 1월 시점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률은 42%에 불과하다. 형식적인 법안 통과 여부가 아니라 통과된 법안 내용의 실효성까지 고려할 경우에는 이행률이 고작 20.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실망스러운 수치이다.

공약이행이 가장 저조한 분야는 ‘이사의 독립성 강화’와 ‘기타’ 분야 (공공기관의 책임경영 강화와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강화)이다. 각각 10점 만점에 0점이 부여되었다. ‘이사의 독립성 강화’에 있어서는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선임이 이루어지도록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하는 방안과 감사위원을 맡을 사외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선출하는 방안이 제시되었고, 보다 많은 주주의 주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제시되었지만 상법개정이 재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공약 이행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공공기관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기관장·감사 등 임원직위별 자격기준을 구체화하고,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 및 운영함에 있어서 주무부처· 공공기관 경영진·임명권자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기로 하였으나 이에 관한 그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고,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의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표소송 제기권 등 주주권 행사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이에 관해서도 그 어떠한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융회사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분야도 그 이행률이 매우 낮다 (20점 만점에 3.5점).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축소하는 은행법 개정은 이루어졌으나 대주주에 대한 동태적 적격성 심사를 모든 금융업권에 확대·적용 시키는 내용의 금융회사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만 하더라도 대주주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한정하였고, 재벌 범죄에 주로 적용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횡령·배임)은 심사대상 법률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금융보험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체계 개선,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를 보유하는 경우)는 각각 0점을 부여 받았다.
 ‘사후구제 및 감독 강화’ 부문도 20점 만점에 4점이라는 매우 낮은 이행평가 점수를 부여 받았다. 회계부정행위 등 기업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는 이루어졌지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는 방안,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심사위원회의 사면권 상신을 보다 엄격히 하는 방안,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증권집단소송법상 자격요건 및 허가요건 등을 완화하는 방안은 전혀 이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 질서 확립’ 부문도 이행평가 점수가 낮기는 마찬가지 이다 (20점 만점에 4.5점). 검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은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피해당사자인 중소기업의 고발권은 인정되지 않았고, 하도급상 징벌적손해배상제도도 도입되었으나 기존 기술유용에 적용되던 3배소를 부당 단가인하, 부당 발주취소, 부당반품으로 확대한 것에 불과하여 그 적용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한편,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피해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제 도입과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은 전혀 이행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이행률이 높은 분야는 ‘대기업집단 규제’이다. 형식적인 법안 통과 여부만을 따졌을 때는 이행률이 100%이다. 하지만 통과된 법안 내용의 실효성을 면밀하게 따지면 이행률이 42.5%에 불과하다. 당초에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규제조항을 경쟁제한성 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정거래법 제3장에 신설하기로 하였으나, 그렇지 못했다. 또, 이익을 본 총수 일가에도 직접 과징금을 부과하여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수혜자에게도 부당지원을 받지 않을 의무를 신설하였지만 법망을 피해나갈 수 있는 길을 너무나도 많이 터주었다. 또,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신규순환출자를 금지시켰지만 광범위한 예외사유가 인정되어 그 실효성이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1년 8개월 정도 남았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대통령 선거 때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제 공은 새로 선출된 20대 국회와 내년 12월에 당선될 차기 대통령으로 넘어갔다. 경제개혁연구소는 현 정부에 의해 버려진 경제민주화 공약들이 곧 등장할 대선주자들에 의해 다시 부활될 수 있도록 각종 보고서를 준비 중에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우리 국민이 수행해야 한다. 누가 진정성을 갖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행할 후보인지 판별하고 그 사람을 뽑아주는 것은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김우찬 본교・경영학과 교수 / 경제개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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