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이음센터, 휠체어 위 춤과 음악을 잇다
혜화동 이음센터, 휠체어 위 춤과 음악을 잇다
  • 백승주 기자
  • 승인 2016.05.29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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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붉은 벽돌건물이 보인다. 올해부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이음’센터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가 진행된다. 다섯 번째를 맞는 장애예술인과 장애인들의 문화가 있는 날, 공연이 열리는 ‘이음’센터를 찾았다. 이음센터는 장애인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창작, 발표, 교류를 위한 공간이다.

▲ 사진 | 백승주 기자 100win@kunews.ac.kr

“방명록 적고 이거 받아가세요.” ‘STAFF’라고 쓰인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이 시선을 약간 아래로 둔 채 말을 걸었다. 자연스럽게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명함과 흰 양이 그려진 엽서를 건네며 전시를 설명하는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25일 문화의 날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꾸려져 전시와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오후 2시 척수장애인 임현주의 특별 초대전 ‘외치다’ 전시를 축하하는 오픈식이 열렸다. ‘힐링’을 주제로 현대무용 공연이 시작됐다. 두 무용가는 서로 부딪히며 다투는 동작을 취하다 끝에 서로를 껴안고 화합의 동작을 보이며 공연을 마쳤다. “무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림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공연이 끝나고 개막식의 마지막으로 임현주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말을 덧붙였다.

시각장애가 있는 고홍석 풍선아트 작가는 눈 대신 손으로 그림을 감상했다. “여기까지가 돌이고, 여기서부턴 사막이에요. 이 부분에 새하얀 양이 고독히 서 있고요.” 그는 임현주 작가의 도움에 따라 첫 작품부터 끝 까지 이곳, 저곳을 만져보고 문질러보며 작품의 의미를 이해해 나갔다. ‘아사셀 양’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있었다. 그림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꽤 오랫동안 그는 그림 앞에 가만히 서 눈물을 감췄다.

전시 관람을 마친 관객들은 서서히 전시장에서 나와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 5층 스튜디오에서는 <좋은 희곡 읽기 모임>의 안톤 체홉 ‘곰’ 낭독공연이 열렸다. 협소한 소극장 크기 때문에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 대학로 연극단원들이 이음센터를 직접 찾았다. 1분 정도 음악이 흐르고 낭독자들이 탁자에 앉고 박수소리가 들렸다. 이야기는 엘레나이바노브나 포포바의 저택 거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상황에 따른 배우들의 표정, 목소리, 손짓 등이 오갔다. 러닝타임 1시간 내내 몇몇의 관객들은 배우를 보다가 검은 옷을 입은 수화통역사를 보기를 반복했다. 배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수화와 통역사의 얼굴 표정으로 전반적인 이야기를 파악했다. 통역을 맡았던 신명선(여·52) 씨는 이번 기회가 장애인들에게 문화 접근성을 높여줬다고 말했다. “이런 공연은 청각장애인이 쉽게 접하기 힘든데 수화통역이 있어서 청각장애인도 공연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청각장애인이 보다 더 실감나게 관람하도록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에 맞춰 수화에도 감정을 넣으려 노력해요.”

오후 5시, 파티가 있는 하우스 콘서트로 ‘응답하라 7080’이 야외특설무대에서 열렸다. 휠체어를 끌고 야외로 나온 관객들로 마로니에 공원 옆 객석이 가득 찼다.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최호선 밴드보컬은 응답하라 1988에 나온 곡인 ‘청춘’과 ‘그건 너’를 불렀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다 같은 예술가잖아요. 그 작가에 온전히 집중해서 예술을 감상해야죠.” 행사장을 찾은 이보윤(여·45) 씨가 말했다.
오후 8시, ‘음악이 흐르는 강연 쇼, 바퀴달린 성악가’  남현의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 주제는 ‘나는 지금이 좋다’였다. “눈이 보이는 장애를 가진 분에게는 꿈과 희망을,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향기 있는 노래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척수장애를 가진 이남현 씨는 노래를 시작한 이유, 힘들었던 기억, 극복한 과정 등의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눴다. 강연을 마친 그는 ‘ You Raise Me Up’과 ‘오, 솔레미오’를 완창했다.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비장애인의 20% 밖에 안 되는 호흡량이지만 완벽히 노래를 마친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의사나 주변인들은 제 꿈이 이룰 수 없는 것이라 했어요. 그럼에도 꿈과 의지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든 이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행사는 막을 내렸다. 전체 행사를 준비한 빛된소리글로벌예술협회 배은주 이사장은 휠체어를 이끌고 마이크를 잡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문화의 날이 더욱 풍성해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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