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2016년, 축제는 제17회를 맞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혐오와 맞서는 현재다.

퀴어가 뜻하는 성소수자는 성별, 성정체성 또는 젠더, 성적 지향 등 성결정 요소에서 소수인 사람이다. 성소수자의 범주에는 게이와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동성애,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무성애자, 인터섹스, 퀘스쳐너리 등이 포함된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하는 오늘날이 되기까지, 당사자와 그 주변인이 경험했던 일상을 만나봤다.

▲ '커밍아웃.' 성소수자가 주변인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말하는 것을 뜻하는 이 단어는 '벽장에서 나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 비해 자유로워졌다는 인식과는 반대로 사회의 억압과 차별이 만든 '벽장'은 여전히 공고하다는 성소수자와 주변인들의 증언. 언제가 돼서야 모든 벽장이 사라질 수 있을까.

양성애자 김(여22) 씨

대학에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현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에는 45개 대학 48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소속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여·22) 씨는 양성애자다. “처음에도, 지금도 활동하는 것 자체로 두렵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여중에 배정받고,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성이 생겼다. 이전까지 남성을 좋아했던 김 씨는 ‘여중이라 착각하는 걸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확신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지향을 받아들이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2년의 연애 동안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성적지향’과 ‘동정 어린 시선’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에 항상 ‘여자도 좋아하는 여자’라는 문구가 항상 포함돼 있던 것이다. 그는 성격과 상황에 대한 질타를 넘어, 성적 지향을 두고 판단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화가 났다고 말했다. 섣부른 지지의 표현도 그에겐 불편할 뿐이었다. “몇몇은 제게 와 ‘어쩌다 좋아해서…’, ‘불쌍하다’, ‘난 이해한다’고 말을 했어요. 그 말이 인위적인 동화라고 느껴졌죠. 성소수자는 약자도 아니고, 이해해야 할 대상도 아닌데 말이에요.”

현재 남자 애인을 만나고 있는 김 씨는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언론과 학계의 발표에 대해 “이런 조사는 빙산의 일각을 보고 있을 뿐”이라 말했다. “지금 대학의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대상에 대한 혐오를 피하는 양상이어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면 비난이 돌아와요. 하지만 어떤 집단이든 침묵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그들을 포함하면 성소수자 존재를 부정하는 규모는 여전히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머니 김용화(여・47) 씨

김용화(여·47) 씨는 2013년 8월, 아이가 성별정체성상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그전에 아이의 여성적인 성향이 강해서 걱정했다고 말한다. 확실히 아이의 정체성을 알게 된 그는 혼란에 빠졌다. “처음 알게 됐을 때는 그냥, 멍했죠. 내가 아이에게 잘못한 게 있어서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1년을 보냈어요.”

김 씨는 먼저 자신이 가진 편견을 없애자고 마음먹었다.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 참여해 성소수자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는 성소수자 혐오의 거대한 규모를 체감하게 됐다. “작년에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해 혐오세력이 생각보다 조직적이며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중심에 보수 기독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신앙에도 큰 회의를 갖게 되기도 했죠.”

그는 아이가 일상적으로, 계속 상처를 받았다고 회고한다. 편견에 갇힌 자신의 시선에 의해, 사회의 시선에 의해 받은 폭력을 말했다. “한번은 화장을 좀 자제하길 권한 적이 있어요. 사회통념과는 다른 방식의 배움과 삶에 대한 시각이 나한테 있었는데도 말이죠. 일상 속에서 아이를 이상하고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선 폭력’을 느낄 때, 아이 앞에서 노골적으로 ‘남자예요? 여자예요?’를 묻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 애가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어요.”

현재 김 씨는 가정에서부터 아이의 성별정체성에 맞는 환경을 만들려 노력한다. 아이를 딸이라고 불러주고, 여동생이 아이를 언니라고 부르도록 했다. 아이의 애인과 친구를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수술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도 하고 있다. “딸아이 애인은 지금까지 4명 정도 알고 있어요. 아이가 기뻐하며 저에게 소개를 해줬고, 저도 즐겁게 만나서 밥도 먹고 집으로 초대한 적도 있었죠. 내 아이와 소통하고 내 아이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전 누구든 반갑고 좋아요.”

 

친구 송은진(여・21) 씨

송은진(여·21)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레즈비언을 접했다. 다른 반이었지만 그 친구가 다른 여자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아 알게 됐다. 그 소문에는 비난, 놀림이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이후 두 번째로 커밍아웃을 한 친구와 친해졌고 그의 속마음을 듣게 됐다. “성적 지향 자체로 힘들어하기보다는 주위의 시선들과 말들에 대해 더 민감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에게 말해줬어요. 너무 안타까웠죠. ‘누구보다 서로를 아껴주고 생각해 주는데 왜 남들이 더 난리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송 씨는 동성애자를 실제로 접하면 거부감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이성애자 친구들과 비슷하게 다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나눴다.

그는 표현 하나, 태도 하나에도 세밀하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애인’이라는 단어를 ‘남자친구’보다 더 많이 쓰려고 노력했고 친구의 애인과 함께 있을 때 불편하지는 않을까 고려했다. 하지만 그것밖에 해줄 수 없다는 자괴감 역시 느꼈다고 한다. “친구들의 부모님께서도 알게 됐다고 했을 때, 힘든 과정이 될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어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듯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제가 나서서 어떻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어서 미안했어요.”

송 씨는 SNS상, 미디어 매체상에서는 동성애의 인식이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체감한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도 그만큼 개선되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기성세대가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데에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에게도, 가까운 지인에게도, 주변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성소수자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혐오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실을 바라보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선생님 이윤승(남・37) 씨

“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이 왕따나 폭행당하는 사례를 보면, 혐오가 그 학교의 주류를 이뤄요. 그래도 된다고 믿는 거죠.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성소수자를 무시하면 같이 욕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요. 교실의 거버넌스를 장악하는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전공이 ‘인권’이라고 말하는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 이윤승(남·37) 선생님은 성소수자 학생들의 대나무숲이다. 레즈비언 학생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부모와 상담을 자처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후 관심의 폭이 더 넓어졌다. 그는 장애와 소수자는 당사자의 탓이 아닌, 사회의 몫이라 말했다. “사회가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다면, 휠체어는 그 사람의 모습에 불과하지, 장애인의 물품이 아니게 됩니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장애를 가진 게 아니라, 편견과 차별을 줬던 사회 때문에 소수자가 된 것이에요.”

그는 학교에서부터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수업을 따로 진행하는 것을 넘어, 일상 속에 그들을 녹여내고 싶었다. 그는 ‘여학생 3명, 남학생 2명’과 같은 문제를 ‘이성애자 3명, 동성애자 2명’으로 바꿔 풀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를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편견이 사그라지기도 해요. 차별을 지양하는 모습이 주류를 이룰 때 성·인권 감수성이 배제된 발언을 하는 학생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거에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