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여러분께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제가 보기에 가장 훌륭하게 공익에 기여하는 국가를, 그리고 정당하게 그런 이름을 얻을 만한 유일한 국가를 설명했습니다.” <Utopia>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의 <유토피아>가 출간된 지 500년이 지났다. ‘토마스 모어의 세계 - 시대를 넘어선 16세기 사상가’ 논문의 저자인 이화용(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이상국가에 대한 지향과 상상력 없이는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게 유토피아에 녹아있는 모어의 문제의식과 논쟁지점을 들어봤다.

▲ 토마스 모어 초상화,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作

대화를 통해 시대의 고민을 말하다

토마스 모어가 살았던 16세기는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모순과 불합리, 사회적 제도의 불완전성과 종교의 타락 등이 만연한 시기였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당시 느꼈던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불합리를 보여주고, 이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모어는 이러한 시대적 고민을 히슬로다에우스와 모어, 두 명의 주요한 화자를 통해 풀어냈다. 하지만 히슬로다에우스와 모어(작품 속 화자) 중 어떤 것이 진짜 모어의 의견인지, 모어가 정말로 유토피아 섬을 이상적인 공영사회로 생각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두 명의 화자는 책 전반에 걸쳐 철학자의 정치참여 여부, 사유재산 등 여러 문제에서 다른 견해를 보인다. 모어(작품 속 화자)는 유토피아 섬을 최선의 공영사회라 평하는 히슬로다에우스의 의견을 완전히 수용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모어는 둘 중 한 사람의 의견에 힘을 실어 명확한 답을 내지 않았지만, 역할분담을 통해 독자가 익숙하지 않았던 또 다른 측면의 생각을 던져줬다. 모어(작품 속 화자)를 통해 모순투성이의 당시 유럽 현실을 짚어내고, 히슬로다에우스의 입을 빌려 유럽이 반성하고 고쳐가야 할 문제들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중세적 종교관념 속에 나타난 관용

토마스 모어는 중세 가톨릭의 권위적인 예식에 반감을 갖지 않고 그 체계를 전적으로 수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의 신학을 강하게 비판했고, 전통적인 가톨릭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하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모어의 종교적 중세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유토피아 섬에서는 그리스도와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다신교가 허용되고, 모어(작품 속 화자)는 오히려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유토피아인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전한다. 모어가 지녔던 가톨릭교에 대한 충성을 고려한다면, 종교적 관용을 모어의 사상으로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모어가 이교도로 보일 수 있는 종교적 관용을 유토피아에서 드러낸 이유는, 당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유럽을 향해 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동시에 도덕적인 삶의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가

토마스 모어가 활동하던 시대의 정치철학자들은 최선의 공영사회에 관해 관심을 갖고 몇 가지 논의를 주도해 갔다. 그중 하나가 공적인 의무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는 오티움(otium)과 공직을 담당하는 자의 삶을 지칭하는 네고티움(negotium)에 대한 논쟁이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은 정치적인 현실참여의 삶보다 고독과 명상을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했다. 하지만 15세기에 피렌체 중심으로 ‘시민적 인민주의’가 대두하면서 이 같은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시민적 인민주의는 정치적 참여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고무시키며, 교육과 학문의 목적이 정치 참여를 통한 현실 개선에 있다고 보았다.

<유토피아> 속의 모어와 히슬로다에우스도 이 논의를 그대로 재연한다. 모어(작품 속 화자)는 네고티움을 강조하며 철학자의 정치 참여를 옹호했는데, 철학자의 재능과 능력을 공적인 일에 쓴다면 이는 더욱 더 존경받을 만한 자세라고 말한다. 반면, 히슬로다에우스는 현실 정치는 각박하고 비도덕적이어서 현자라고 할지라도 부패하게 된다고 했다. 철학자가 직접 정치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저술하거나 정치가에게 조언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지식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는 고대 플라톤부터 오늘날까지 시대와 공간에 상관없이 나타났는데, 토마스 모어 또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모어는 사회주의자였나

유토피아를 읽었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1938)는 모어를 사회주의의 새벽을 알린 사상가로 평가했다. 토마스 모어가 사회주의 사상가로 평가받는 근거는 <유토피아> 2권에서 유토피아 사람들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개인적인 재산을 갖지 않는다고 표현해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역시 모어(작품 속 화자)와 히슬로다에우스의 의견이 갈린다. 모어(작품 속 화자)는 사회범죄를 낳은 구조적 요인이 사유재산에서 비롯된다는 히슬로다에우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어는 개인의 재산을 지켜주는 제도가 인간 행복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전체주의적 공동생활과 화폐 없는 경제, 사유재산제도의 폐지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카우츠키가 토마스 모어를 사회주의 사상가로 규정한 것은 정치가 카우츠키에게는 필요한 대목이었을지 모르지만, 히슬로다에우스와 모어의 대화를 주의 깊게 읽는다면 모어의 사상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모어는 사회주의 사상가라기보다 단지 봉건사회의 모순과 자본주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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