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서점이 몇 곳인지 알아요? 치킨 집은 3만 개인데 서점은 그 절반에 훨씬 못 미쳐요. 그마저도 계속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에요.”
 
대한민국 서점의 현 상태에 대해, ‘짐프리’ 서점 이진곤 대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클릭 한 번이면 하루 만에 책이 배송되고, 할인과 적립은 덤이다. 대형서점 편의서비스에 밀리는 동네서점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 와중에도 각자의 이색적인 매력으로 관심을 끄는 서점들이 있다.
 
▲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서울 오감도'는 이상 문인의 정신을 본받아 여러가지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 상수동 어느 골목, '베로니카 이펙트'에서 손님들이 그림책을 고르고 있다.
▲ 논현역 8번 출구 인근 '북티크'에서는 매주 금요일 심야 서점을 운영한다. 사진 | 황유정 기자 wellmade@
▲ 일러스트 | 김예진 전문기자
#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책 가게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런던 인근 서점에 갔다 충격을 받았어요. 서점에 책을 읽으러 온 사람들이 가득하더라고요. ‘책 읽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대중들이 책을 쉽게 접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그렇게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했고 운이 좋아 ‘북티크’란 서점을 열 수 있었어요.”(북티크 박종원 대표)
 
“원래는 온라인 콘텐츠 사업을 했었어요. 퇴근길에 사온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게 제 낙이었죠. 어느 날 ‘술 먹는 책방’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더 늦어지면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낸 거죠.”(북바이북 김진양 대표)
 
“회사랑 집만 오가는 일상에 지쳐 변화가 필요했어요. 그때 여행관련 동호회를 우연히 접해 여행을 자주 다녔어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죠. 여행밖에 모르다 보니 자연스레 서점에도 ‘여행’이란 콘텐츠를 들여오게 됐어요.”(짐프리 이진곤 대표)
 
“저는 그림을 그렸고, 혜미(여자친구)는 글 작가였어요. 둘이 같이할 수 있는 일을 찾던 도중 ‘동화책’이 떠올랐어요. 동화책 제작에 앞서 서점, 컨벤션 등을 다니며 자료를 모은 게 그때부터였죠. 어느 날 집 한구석에 책이 가득 쌓여있는 걸 본 친구가 ‘너희 서점해?’라고 물어본 게 계기가 됐어요. ‘괜찮은 생각인데?’ 그렇게 시작했죠.”(베로니카 이펙트 유승보 대표)
 
# 서점은 책만 팔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무작정 책만 내세우면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과 사람이 자연히 이어질 수 있도록 서점들은 책만 팔지 않는다.
 
“그림책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 저는 ‘그래픽 노블’을 주로 다뤄요. 어떤 현상이 발생하기 전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정확한 정의를 내리긴 어려워요. 그래픽 노블의 매력에 빠진 독자들은 항상 그 책을 찾으러 와요. 독자들은 자연히 그림에 빠져 발생할 현상을 골똘히 생각하게 되죠. 종종 손님들에게 그래픽 노블을 알려주고 그 그림을 엮어 책을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베로니카 이펙트)
 
“호주를 여행할 때 짐을 맡아주는 유인 서비스가 있는 공간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짐 보관 서비스를 시작했고 여행을 소재로 하는 책과 직접 제작한 출판물을 판매하고 있죠. ‘내일로’ 기차 여행자들을 위한 지도와 소책자, 또 제주도 관광객을 위한 교통 노선도 등을 만들기도 해요. 그 이외에도 여행자들이 소중한 추억을 책으로 남길 수 있도록 출판물 제작 워크숍을 진행하고, 자신의 여행경험을 이야기하는 투어 토크도 열고 있어요.”(짐프리)
 
# 사람과 사람을 연결 짓는 징검다리 역할
책은 읽어주는 이가 없으면 라면 받침대로 전락하지만, 누군가의 책이 되는 순간 사람의 인생에 깊숙이 흡수돼 인생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심야서점 북티크에선 매주 금요일 새벽에 독서모임이 열려요. 다른 누군가와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죠. 독서모임에선 심각한 토론을 하고 전문지식을 논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필요해요. 단순하게 보면 사람 간의 소통이고 대화일 뿐이에요, 책은 그 매개체고요. 현재는 10개가 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독서 취향과 생각도 다르기 때문이죠.”(북티크)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지도를 만들고 싶어 ‘정원의 서재’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음력 15일,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약속한 것처럼 사람들이 모이죠. 이 모임에서 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서로에게 읽어줘요. 각자의 서재를 공유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그 순간만큼은 책과 사람이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어요.”(서울 오감도)
 
# 서점은 계속해서 문을 닫는다
“매출에서 도서비중이 10%가 채 안돼요. 책 판매로만 서점을 운영하기 쉽진 않죠.”
 
국내 출판시장은 여전히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 동네 서점은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을 다루기도 한다. 한 때 독립출판물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전국에 많은 독립서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보장되지 않은 수입과 치솟는 임차료를 견디지 못한 대다수 서점은 이내 문을 닫았다. 독립출판물을 처음 도입한 서점 ‘가가린’도 지난해 9월 폐업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작은 서점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며 대형서점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
 
“서점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책을 판매하는 서점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죠. 다양한 시도를 하되 서점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짐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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