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팽목항까지 노란 물결
청년들 눈물로 기억하는 세월호

 
팽목항에는 기다림의 의자가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에 색은 바래고, 못은 녹슬었다. 이 의자 곁에서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은 830여 일 동안 세월호를 기다리고 있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130여 명의 대학생이 모였다. ‘세월호대학생도보순례단(공동단장=장은하·박세훈, 순례단)은 7월 23일 목포 신항에서 출발해 26일 진도 팽목항까지 3박 4일간 65km를 걸었다. 뜨거운 햇볕과 눅눅해진 아스팔트가 뿜는 열기가 노란 물결의 순례단을 괴롭혔지만 그들은 그저 묵묵히 걸었다.
 
▲ (왼쪽) 순례단들이 입은 '미수습자 수습, 온전한 선체인양, 성역없는 진상규명'이 적힌 티셔츠가 하얗게 빛났다. (오른쪽) 노란 물결의 순례단이 팽목항을 향해 걷고 있다. 사진 | 이민준 기자 lionking@
유가족과 대학생이 발맞춘 도보순례
7월 25일 오전 6시 순례단의 하루가 시작됐다. 그들은 체육관 바닥에 모여앉아 피켓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의논했다. 학생들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습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고자 고민을 거듭했다. 염원이 담긴 노란 피켓을 들고 순례단은 진도군청 앞에서 힘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선체조사 보장하라!”, “온전한 선체인양!”, “성역없는 진상규명!”
 
오후 1시, 노란 물결의 순례단은 팽목항을 향해 걸었다. 순례단을 응원하던 선두차량의 노래가 멈추자 스피커에선 한 학생의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민주(문과대 한국사15)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세월호를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를 회고했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당시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을 뿐, 정부와 관련 기관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작년 11월 국정교과서 문제로 민중 총궐기에 참가했을 때, 차벽에 막히고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를 맞으며 다시 바라봤죠. 그제야 ‘세월호 안에 내가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죽음을 무시하고 진실에서 도망치려 했던 모습을 반성하고자 이번 도보순례에 참여했습니다.” 김 씨는 목을 가다듬고 담담한 어조로 발언을 끝맺었다. “우리는 세월호 세대입니다.”
무더위에 지친 순례단이 잠시 멈춘 사이, 순례단과 함께 하던 유가족들은 뱃머리 들기 작업이 연기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27일에 기상이 안 좋네요. 26일까지 작업준비 완료 후 27일 자정 또는 28일 오전에 선수 드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얼음물을 나눠주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학생들을 살피던 유가족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벌써 6번째 연기. 이번 작업이 7번째 시도였다. 한 유가족은 “8월에는 태풍 때문에 인양을 못 하니 지금 인양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9월이다”라고 말하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소식을 접한 유가족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담배만 피울 뿐이었다. 먹구름처럼 뿌옇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먹먹한 유가족의 심경을 대변했다. 인양 준비가 지연된다는 소식을 접한 순례단은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습을 염원하는 미수습자 가족들
팽목항 분향소는 여전히 2014년 4월에 멈춰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숙소는 그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추모객의 발길이 뜸해진 분향소엔 타버린 향 내음새만이 은은히 남아있었다. 팽목항의 빨간 등대와 푸른 바다는 햇빛을 받아 눈이 시리도록 밝은 색을 뽐냈다. 난간에 묶여 있는 노란 리본과 깃발은 2년간 맞은 풍파에 허옇게 낡아버린 채 바람에 시달리고 있었다.
 
미수습자 가족 숙소에선 박은미(여·46) 씨가 오랜만에 찾아온 조문객을 반겼다. 박 씨는 수습하지 못한 허다윤 양의 어머니다. 그는 사고 발생 이후 팽목항에서는 세월호의 인양을 기다렸고, 홍대입구 앞에서는 미수습자 수습을 위한 피케팅을 진행해왔다. 박은미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살았든 죽었든 세월호를 인양해 배 안에 있는 사람을 먼저 수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막막함 때문일까.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기다림뿐인 미수습자 가족의 처지를 대변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미수습자 가족들은 유가족들과 함께 ‘희생자 가족’이 됐어요. 우리는 미수습자 수습에 대해 아무것도 주장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우리도 진상규명을 원해요. 하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시신 수습부터 해줘야 해요. 우리도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진실을 향해 계속될 발걸음
순례단은 26일 오후 12시 쯤 팽목항에 진입했다. 분향소에 들어온 그들은 고개를 떨궜다. 단원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순례단은 새빨간 등대 앞에서 해단했다. 단원들은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활기찬 모습으로 순례단을 이끌어 왔던 박세훈 공동단장은 해단식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단원들의 위로를 받으며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렀다. 그는 뜨거웠던 도보순례가 앞으로 지리하게 이어질 진상규명에 힘이 될 것이라 말했다. “대학생들의 걸음에 유가족들이 함께 한 것에 죄송하면서도 감사합니다. 이번 도보순례가 진상규명의 길에서 힘을 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순례단의 발걸음은 팽목항에서 멈췄다. 대학생들의 도보순례는 끝났지만,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이 걸을 진실을 향한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족들이 힘겹게 걸었던 그 길에 순례단은 응원의 노래를 부른다. “어떤 이는 말하지, 용기를 잃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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