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생충’을 사람 몸속에 기생해 많은 영양분을 빼앗는, 생물정도로 알고 있다. 심지어 영화 <연가시>에서 기생충은 사람들을 조종해, 물에 빠뜨려 죽인다. 기생충학자 서민(단국대 의예과) 교수는 우리에게 “기생충은 몸에 해롭지 않다. 기생충은 우리의 온순한 친구”라고 말한다. 서민 교수는 기생충에 관한 편견을 깨기 위해 <기생충 열전>, <기생충 콘서트> 라는 책을 썼고, 현재는 YTN사이언스, 일산 킨텍스 등 강의실 밖에서도 많은 강연을 하고 있다.

 

▲ 기생충학의 현안과 잠재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민 교수. 사진|심동일 기자 shen@

- 기생충학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학문입니다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벌레를 기생충이라고 하지요. 기생충학은 단순히 기생충 감염을 치료하기보다, 기생충을 이용해 인간의 건강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물론 말라리아처럼 정복하지 못한 해로운 기생충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집니다만, 기생충을 이용해 알레르기를 고친다는 식의 연구도 하고 있지요.”


- 연구대상 기생충을 어떻게 분류하나요
  “기생충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일단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각각도 나름의 분류기준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는 납작한 것, 지렁이처럼 동그란 것, 그리고 납작하면서 긴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는 편모를 가진 것, 편모를 안 가진 것, rhoptry라는 침투기관을 가진 것, rhoptry가 있으면서 혈액에 사는 것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기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연구되고 있지요.”

- 기생충은 바이러스, 박테리아와 어떤 차이점 있습니까
  “사실 기생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분류 차원에서 핵막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구분을 해요. 기생충은 핵막이 있는, 좀 진화된 것들을 가리키지요. 바이러스, 박테리아는 핵막이 없는 미개한 생명체고요. 여기서 핵막은 세포의 핵을 감싸고 있는 막입니다.”

- 기생충이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기생충이 심각한 사명을 띤 채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생충이 있다 보니 숙주가 이에  대응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면역계가 발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생충이 유성생식을 촉발시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기생충에 맞서 싸우려고 하다 보니 좀 다양한 개체가 출현해야 하는데, 무성생식은 그게 되지 않으니 유성생식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 기생충의 숙주에는 종숙주와 중간숙주가 있는데, 이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중간숙주는 기생충이 유충 상태로 머물며 수적 증식을 하는 숙주를 말합니다. 반면, 종숙주는 유충이 들어와 어른이 되고, 또 짝짓기도 하면서 알도 낳는 숙주입니다. 종숙주 안에서 기생충은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증상을 일으키지 않지요. 물론 종숙주에 가기 위해 중간숙주가 잡아먹히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간디스토마를 예로 들어보면 유충이 우렁이한테 가서 분열증식을 하면서 수백 마리로 숫자를 늘리거든요. 그게 물고기라는 또 다른 중간숙주로 가는데, 이때는 유충이 발육은 하지만 숫자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이걸 사람이 먹으면 유충이 성충으로 자라고 생식도 하고 알도 낳습니다.”

- 사람이 개회충에 감염되면 소장 내에서 부화한 유충이 장벽(腸壁)을 꿰뚫고 체내 장기 곳곳을 이동하고, 눈으로 들어가면 실명에까지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사람이 중간숙주이고 개가 종숙주이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개회충은 개에서만 어른이 되기 때문에 사람에게 감염되면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기생충도 ‘여기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뇌나 눈 등 치명적인 곳에 갈 수가 있지요.”

- 기생충은 어떤 이용가치가 있습니까
  “연구하기 나름이지요. 당장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때 쓰일 수 있어요. 자가면역질환은 우리 면역이 우리 몸을 공격해서 생기는 병으로 당뇨병, 다발성 경화증, 크론씨병 등이 있는데, 마땅한 치료약이 없거든요. 크론씨 병 치료에는 돼지편충이 사용돼요. 크론씨병은 자기 면역이 스스로를 공격해서 장에 심한 염증이 일어나는 병인데, 사람이 돼지편충알을 먹으면 알이 몸 안에서 부화되어 돼지편충으로 자랍니다. 돼지편충은 면역을 억제시켜서 우리 몸에 대한 공격을 멈추게 합니다. 그래서 증상이 좋아지지요. 하지만 아직 미완성 단계라 좀 더 임상시험을 해봐야 하고,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도 극복해야 해요. 이뿐만 아니라 기생충은 장기이식에도 쓰일 수 있어요. 기생충의 장기를 이식하는 게 아니라, 장기이식을 할 때 기생충을 감염시키면 이식된 장기가 더 오래 가는 것을 이용한 것이죠. 신장이식의 수명이 10년 정도인데, 기생충 때문에 20년이 된다면 해 볼만 하죠.”
 
- 기생충 연구는 보통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대부분은 실험실에서 쥐나 배지를 이용해 실험합니다. 기생충이 성충으로 자라기 위해선 숙주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쥐에게 기생충을 먹여서 실험하는 경우가 많지요. 서울주걱흡충이라는 기생충이 있는데 이건 유충이 뱀에 살아요. 뱀을 잡아서 유충을 꺼낸 뒤, 쥐한테 먹이고 2주쯤 있다가 쥐를 죽여서 보면 유충이 성충으로 자라 있지요. 한편, 배지는 세균을 키우는 곳입니다. 기생충은 보통 배지에서 자라지 않지만, 일부 눈에 안 보이는 기생충들은 배지에서도 자랍니다. 배지에서 자라는 기생충들은 사람에게 병원성이 높은 경우가 많아 많은 학자들이 배지 기생충을 연구합니다. 배지에서 기생충을 키우면 실험하기가 편하기도 하구요. 제 경우에는 새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되는 기생충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는데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 이동과정에서 죽은 철새를 구하고, 둘째, 철새를 해부해 기생충이 있는지 검사하고, 마지막으로 나온 기생충을 관찰해 종을 알아내는 식이죠. 새마다 다른 기생충이 나오니 이런 것도 충분한 의미가 있어요.”

- 연가시는 종숙주인 벌레를 죽이는데, 이는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영화 <연가시>처럼 실제 사람 뇌가 기생충에 감염되면 조종이 될 가능성이 있나요
  “이것 역시 기생충이 종숙주에 더 잘 가기 위한 방법입니다. 연가시는 물속에서만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기 때문에 벌레가 물로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 고안한 것이 곤충이 목이 마르도록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건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기생충이 다른 숙주에게 적응하려면 수백, 수천 년의 적응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사람에게 간다면 어떻게든 뇌를 조종해 물로 가게 하려고 하겠지요. 근데 그게 꼭 목이 마르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사람은 곤충과 달리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거든요.”

- 현재 우리나라의 기생충학 발전 수준을 재어본다면
  “80년대까지는 기생충을 치료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90년대부터는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했지요. 그 결과 연구수준은 거의 세계수준이라고 봐야합니다. 연구수준은 그 나라의 학술지 수준을 보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기생충학 학술지는 ‘과학기술논문 추가 인용색인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에 등재된 학술지로, 전 세계 사람들이 투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많은 나라에서 우리 학술지에 투고를 하는데, 실제로 실리는 비율은 30%가 채 못 됩니다. 사이언스 같은 유명 학술지는 5%도 채 실리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 잡지가 이 정도 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 예비 기생충학자에게 조언을 해주십시오
  “호기심을 갖고, 책을 많이 읽어라. 그 안에 길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과학책을 읽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소설책을 읽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