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애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 나라와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바쳐가며 그 나라의 번영과 안녕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이는 일단 매우 자연스럽고 순수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애국심은 현실에서 곧잘 왜곡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곤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애국심은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이해되었다. 이는 외세의 침탈에 따른 당연한 반작용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제국주의는 우리 사회 성원들 사이에 애국심을 일깨우면서 사람들이 바로 그 일제가 발전시킨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애국주의만이 애국심이 표출되는 유일한 형식인양 이해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애국주의는 개인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는 국가라는 가치 실체를 가정한다. 그리하여 그 국가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시한다. 나아가 개인이나 집단의 차이와 다양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우리’ 아닌 ‘남’을 배제하도록 이끈다. 심지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은 지고한 도덕적 의무이기까지 한 것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런 애국주의가 아직도 강고하게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방했던 박정희식 근대화 과정이 남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어두운 유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집권 세력은 이를 정치적으로 곧잘 악용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어버이연합 활동을 하는 노인들만이 문제는 아니다. 우리 청년 세대 또한 자주 강한 민족주의적-애국주의적 편향을 드러낸다. 단순히 보수 세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도 자주 민족과 국익을 앞세우며 이성을 잃곤 한다.

  그 동안 그런 삐뚤어진 애국주의를 극복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개인의 자율과 다양성의 가치가 여기저기서 강조되었고, 우리 시민들이 국민국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헌신의 필요를 더 많이 깨달아야 한다는 호소가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노력들만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애국주의 광풍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나아가 무조건 애국심을 경원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애국주의와는 전혀 다른, 매우 건강하고 바람직한 애국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름 아닌 ‘민주적 애국주의’가 그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정초했던 민주적-공화주의적 전통에서 발전해 온 이 애국주의는, 우리가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단순히 그 나라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라는 사실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는 어떤 봉건 왕조의 ‘신민’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다. 민주공화국은 법과 ‘공동선’에 기반을 두고 다름 아닌 우리 시민들이 주권자가 되어 우리 모두의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다. 여기서도 애국심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라는 괴물 같은 실체에 무조건 헌신하는 것이 바람직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직 그런 민주공화국 안에서만 우리가 자유와 존엄을 지키고 실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애국심은 혈통이나 민족 같은 것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나의 ‘조국’, 곧 내 삶을 자유롭게 하고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실현하게 해 주는 특별한 삶의 양식에 대한 일체감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라사랑과 자기실현이 내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 어떤 국가주의나 전체주의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민주적 애국주의는 국가의 신성화나 절대화를 거부한다. 당연히 ‘국익’ 같은 것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주어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공동선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심의를 통해 비로소 찾아내고 구성해 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의 조국을 무조건 우월하다고 치켜세우거나 다른 나라를 깔보거나 하지도 않는다.

  물론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아직 충분히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우리 시민에게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책무를 지우고 그 이상을 실현해 온 민주적 전통과 그 성취의 가치를 계승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시민은 자신의 나라가 시민의 평등한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는 데서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권력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하지는 않는지, 사회의 다수가 부당한 횡포를 부리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시민 불복종’도 감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강요된 의무여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시민의 평등한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고 실현하는 민주공화국은 어떤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의 참여와 헌신의 결과로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민적 책무’의 자발적 수용 또는 ‘시민 정신’의 발휘야말로 민주공화국에 어울리는 참된 애국심이다.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 자유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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