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정치적 이유로
세대 간 애국심 간극 선명
헬조선 속 청년들
국가 혐오 극단으로 치닫기도
불분명한 불만 대상
'국가'인가 '정부'인가

 

  8월 22일, 리우 올림픽이 끝났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저마다의 경기장에서 선전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을 지켜본 국민들도 그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잖아요. 축제를 즐기려고 했습니다.” 펜싱 에페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남·22) 선수의 소감이다. 과거 국가대표 선수들이 공식처럼 읊던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는 이야기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 프로야구 경기 직전, 경기장에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이에 맞춰 관중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사진|이명오 기자 myeong5@

 

기성세대보다 애국심 낮은 청년세대

 대한민국에 대한 한국인의 애국심은 높은 편이지만, 연령대별로 그 차이는 극명하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서베이리서치세터가 조사한 ‘한국종합사회조사(2013)’에 따르면 ’응답자의 88.8%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0대 이하 응답자의 약 30%가 ‘대한민국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같은 답변을 한 50대 이상의 응답자가 50%를 넘어선 것과는 비교된다. 이에 서운석 보훈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적 성취를 경험할수록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와 같은 결과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겪은 경제적 성취의 여부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애국심과 관련해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애국에 대해 세대 간 의견차가 나는 데는 민주주의 영향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권혁범(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안에서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받으면서 자란 20대들은 ‘국가’라는 단일한 가치만으로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라며 “그래서 기성세대는 애국심이라는 추상적인 이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그런 경향이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양극단, ‘국뽕’과 ‘국까’

 2013년부터 인터넷에서는 ‘국뽕’과 ‘국까’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국뽕은 애국심이 과도해 자국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라면, 국까는 자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에 박헌호(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지나친 애국주의나 냉소주의는 현재 우리가 사는 국가의 문제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말했다. 그는 국뽕을 ‘현실적인 한계를 맞닥뜨린 개인이 애국을 강조하면서, 국가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 자위하는 현상’으로 평가했다.

 국까 역시 국가에 대한 실망이 만들어낸 왜곡된 가치관이다. 국가에 대한 냉소는 국가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동반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그를 비난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에 박 교수는 “국가를 절대화하는 ‘국뽕’도,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일삼는 ‘국까’도 옳은 형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국까’로 일컬어지는 자국에 대한 혐오나 회의주의는 청년 세대의 헬조선 담론과 맞닿아있다. 서운석 연구위원은 “실제로 사회정의 실현과 사회보장 부분에서 한국인의 신뢰도가 낮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이종찬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청년들은 국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 국가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등의 의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애국심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성장 시대와 성장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 두 세대의 국가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청년들에게 과거의 애국심을 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71회 광복절 축사에서 애국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 안보 등의 다양한 위기 속에서 “우리 모두 위대한 대한국인임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힘을 합쳐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단순히 애국심만 강조하는 정부의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혁범 교수는 한국의 애국심은 추상적인 이념에만 국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가 존속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권익이 제대로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라며 “정책과 제도 같은 구체적인 부분이 전제되지 않은 채, 애국심이 연출된다면 오히려 냉소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종찬 연구원 역시 국가 내부의 여러 차이를 무시하고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한국은 근현대사에서 국가로부터 가해진 폭력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애국심은 불편한 가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애국에 대한 불편함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청년들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애국심을 보이고 있다. 공진성(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는 손해를 기피하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가 개개인에게 일정 수준의 복지를 제공한 만큼 개인도 국가에 봉사하는 근대적인 애국심의 형태조차 귀찮아하는 형세라는 것이다. 이어 공 교수는 “우리가 애국심에 대해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국가에 대한 사랑 자체’인지, 정부가 나서서 애국을 장려하는 태도인지, 정권의 사익을 위해 겉으로만 ‘애국’을 내세우는 위선인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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