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속 '혐오 논란'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
한국 힙합 속 '혐오 논란'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
  • 조재석 기자
  • 승인 2016.08.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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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면 군대에서도 뒤로 할 걸 국가안보, 여성의 동성애는 분명 나로 인해 감소, 왜냐면 내 Flow에 흥분하거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힙합 아티스트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자신을 크리스천 래퍼라고 소개한 비와이가 <쇼미 더 머니 시즌5>에 출연해 동성애자 비하를 암시하는 가사를 발표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힙합이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아가는 가운데 끊임없는 힙합 속 혐오 논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뒤틀린 남성성, 어디서 시작됐나
  디스(disrespect, dis)는 더 이상 낯선 콘텐츠가 아니다. 매 시즌 인기를 끌고 있는 M.net 예능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나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배틀 형식의 디스를 계속 노출시키고 있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디스에서 일부 래퍼들은 ‘bitch(암캐, 창녀)’나 ‘faggy(호모)’와 같은 성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디스에서 뿐만이 아니다. 힙합이라는 장르 속에서 비하와 혐오는 일종의 관습처럼 자리 잡고 있다. 2015년에 방영된 <쇼미 더 머니 시즌4>에서 아이돌 그룹 WINNER의 래퍼 송민호는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힙합에서는 종종 아티스트들이 여성과 성소수자를 폄하하는 가사를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곤 한다. 전문가들은 힙합에서 남성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를 살펴보려면 힙합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1960~70년 블랙 커뮤니티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흑인음악 전문매체 리드머 강일권 편집장은 “갱단과 마약 판매 등의 범죄로 점철되는 1960년대 블랙 커뮤니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흑인 남성은 거칠고 마초적인 것을 추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남성성을 부각하다 보니 여성적인 모습들을 터부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김봉현 대중음악 평론가는 힙합에 내재된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개신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분석했다. 그는 “미국 흑인사회에서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그 뿌리가 굉장히 깊다”며 “개신교에서는 동성애를 교리로써 금지하고 있어서 동성애에 대한 터부가 흑인 래퍼들의 사고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에 대한 책임은 아티스트의 몫
  <쇼미 더 머니>에서 나타난 발언 논란은 아티스트 개인의 문제를 넘어 힙합 자체에 대한 윤리적 고찰로 이어졌다. 여성혐오 논란을 접한 일부 힙합 커뮤니티 회원들은 ‘창작자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거나, ‘힙합은 원래 그런 장르’라는 논리로 일관했다. 이들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논란을 마치 힙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질 법한 생각으로 여겼다. 힙합이 예술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김영대 대중음악 평론가는 부분적으로 수긍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는 가능한 무한대로 허용돼야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아티스트가 온전히 져야 하고, 그것이 일반 대중이나 방송에 공개될 땐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걸러져야 한다”며 “추상적으로 힙합이라서 용인되거나 부정되는 것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힙합의 본고장으로 볼 수 있는 미국을 포함해 해외의 많은 아티스트들은 힙합 속 혐오 코드의 문제점을 깨닫는 추세다. 힙합 장르 중 여성비하가 가장 두드러진 ‘갱스터랩’의 대부 스눕 독(Snoop Dogg)은 2011년 가디언 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 자신이 썼던 가사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는 “만약 힘을 가진 위치에 서게 되면 여자들을 ‘BITCH’로 불러도 된다고 내 생애에 걸쳐서 배웠어. 하지만 난 이제 성숙했고,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되었어. 나는 완전히 유턴했고, 방향을 바꿨지”라고 밝힌 바 있다.

 

혐오 논란, 힙합이 겪는 성장통
  미국에서는 90년대부터 힙합의 여성, 성소수자 비하에 대한 논쟁을 펼치며 예술이 약자를 향한 비하로 이어질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에 대해 한국 힙합 1세대로 활동한 가리온의 멤버 나찰은 “미디어의 발달로 보는 눈과 귀가 늘어났고, 이와 더불어 시대적으로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며 “해외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힙합 속 혐오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고, 쇼미 더 머니를 통해 그 논란이 가속됐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힙합을 통한 여성혐오 논란 자체가 결과적으로는 여권 신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입장도 있었다. 음악취향Y 조일동 편집장은 “힙합 속 혐오 논란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성차별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지금 당장은 많이 아프고 혼란스럽겠지만, 이러한 논의는 젠더적인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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