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도 좋아>의 주인공 이루다 주임

  한국 사회가 아무리 선진국 수준의 경제와 정치제도를 장착해나가도 유독 개선이 느린 분야가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상대를 대등한 시민으로 인식하고 배려하는 시민적 예의다. 나이든 기수든 직위든 돈의 흐름이든 뭐든 서열을 두고, 그게 인간 존재의 우열이라도 되는 듯 눈치 보지 않고 아래 방향으로 공사 영역 구분 없이 총체적으로 막 대하는 모습이 여전히 주류문화다. 서열 기준에 따라서 갑질, 꼰대질, 개저씨질 등 이름이 바뀔 뿐이다. 

  잘 생긴 얼굴에서 오는 자존감으로 무장하고는, 회사 부하직원들에게 온갖 개저씨질을 일삼는 중간 관리직이 있다. 업무 관련 모욕적 언사, 사생활 꼰대질, 시도 때도 없는 구시대적 성차별 발언이 생활 그 자체이다. 그런데 확실한 큰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한 확실한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 사회다보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뒤에서 “죽어버려!”를 연발할 따름이다.

  <죽어도 좋아>(골드키위새 / 미디어다음)는 개저씨 갱생 SF코미디로맨스스릴러다. 회사원인 이루다 주임은 특정 시간대로 되돌아가버리는 타임루프에 빠지게 되는데, 시간을 강제로 되돌려버리는 계기는 바로 완벽하게 못되먹은 직장 상사 백 과장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우주의 의지가 개입한 것인지 누군가가 죽어버리라고 저주하면 백 과장은 정말로 죽는다. 하도 평소에 직원들을 못 살게 굴어서, 매일 그런 저주를 받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하여 이루다는 자신의 일상과 연애를 위해, 백 과장의 개저씨질을 고치는 엄청난 과제를 떠안게 된다. 

  고치는 것에 성공 혹은 실패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매우 현실적인 짜증을 유발하는 인물의 갱생을 다루는데도, 이 작품은 영리하게도 괴로운 고발물이나 훈훈한 계몽으로 빠지지 않는다. 한남충 죽어버려 같은 단말마 분노도, 우리 모두 마음 속 선한 의지가 있어요 같은 허망한 힐링도 아니다. 그 대신 로맨스 클리셰 투르기, 패러디와 ‘메타’개그로 엮는 완성도 높은 유쾌한 코미디 정서를 발판 삼아, 캐릭터 성장의 멋진 방향성을 제시한다. 겉보기에는 여느 시간여행 장르물의 흔한 주제와 비슷한데, 말과 행동에는 파급이 따르며, 하나의 잘못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고, 사후 수습이란 어렵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개저씨라는 소재를 접목하자, 깔끔하고 섬세한 교훈이 완성되어 간다. 파국적인 파급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그것을 미리 피할 수 있음을 인식하여, 결국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애초부터 상대를 내려 깔지 말고 좀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과를 두려워하는 사회적 상상력을 갖추고 예의를 차리는 버릇을 장착하려면, 수 백 번쯤 죽었다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 진짜 교훈일 수도 있겠지만.

 

김낙호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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