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에 담긴 역사, 미술, 철학까지
간학문적 연구 선행돼
보존과학기술은 필수적이지만
적용에는 신중 기해야

 

  2008년 목조건물인 숭례문 문루 2층이 방화로 불에 타 무너졌다. 정밀 피해조사 2년, 복구공사 3년, 총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숭례문은 원형에 가깝게 복구됐다. 영원히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숭례문이 어떻게 복원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문화재를 복원하는 보존과학 기술에 있었다.

보존과학의 탄생…훼손된 문화재 복원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돼야 한다.”

  1997년 12월 8일에 제정된 문화유산헌장 첫 문장이다. 문화재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기초다. 보존과학은 그러한 문화재를 대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제작됐고, 손상 원인이 무엇이며, 앞으로 보존하고 복원할 방법을 자연과학적으로 응용해 찾아낸다. 문화재 보존처리에서는 과학적인 기술과 전통기술로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형태와 미적·역사적 측면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택한다. 문화재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복원에 더욱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문화재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 깨지고 부식되기 마련이다. 수백 년 이상 견뎌온 수많은 문화재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학 기술을 ‘보존과학’이라 한다.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려고 유산의 재질과 제작기법 등을 종합적으로 규명하는 등 문화재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시키기 위해 보존과학은 탄생했다.

석굴암을 시초로, 본격적 연구
  이전의 보존 작업은 문화재가 훼손되면 그저 갖다 붙이는 ‘땜질’의 개념에 가까웠다. 점점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옛 수리기술에 현대과학이 적용됐고, ‘보존과학’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문화재 보존과학은 국내에 시초로 도입된 사례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굴암이다. 1918년 일본인에 의해 보존처리된 것을 재차 실측하고 보존하면서부터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김순관 학예연구관은 “석굴암은 선조들의 과학기술을 복원에 적용한 사례로, 현대 과학이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971년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굴한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존과학의 중요성은 더욱 더 강조됐다. 경북 경주에 있는 대형고분을 발굴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실시했던 발굴에서 의류, 금속, 동식물, 토기 및 자기류 등 다양한 소재의 중요 문화재들이 다량 출토된 것이다. 이때부터 발굴과 함께 보존과학이 함께 병행돼야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보존과학 분야가 성장하면서 보존과학 관련 연구기관은 1960년대 후반부터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고, 대학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보존과학 전문가 육성을 위한 정규 교육이 시행됐다.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보존 처리, 환경요인도 포함해
  모든 문화재 속에는 당시의 재료와 제작 기술이 담겨있다. 발굴 문화재를 온전히 보존하려면 현장에서 적절한 응급조치와 함께 재질과 손상상태에 따른 보존처리가 요구된다. 훼손된 문화재를 가장 원상태에 가깝게 되살리고 더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선 보존과학 기술 적용은 필수적이다. 보존과학 기술은 눈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에 어떤 재료가 사용됐고, 어떤 방법으로 제작됐는지 조각퍼즐처럼 맞춰준다. 최근에는 3D 프린터 기술의 발달로 파손된 문화재의 원형 복원에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과거 문화재 보존 과정에서 사용했던 재료보다 더 나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고, 미세한 손상은 엑스레이로 포착하기도 한다.

  한편, 발굴 작업으로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은 문화재는 대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산화돼 부서지기도 한다. 이런 노화현상을 방지해 문화재 주변 환경을 적절히 유지하는 ‘환경관리’도 보존과학에 포함된다. 환경관리는 단순한 보존처리 개념에서 벗어나 적절한 환경을 유지해 문화재 손상을 예방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역할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이승은 학예연구사는 “발굴된 문화재를 박물관의 전시실과 수장고의 환경에서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예방보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기술 이용한 복원, 전문가들 의견 분분해
 
보존과학 기술을 적용할 때 신기술을 이용해 문화재 복원을 진행하는 것이 예전의 가치와 상반된다는 입장도 있다. 보통 문화재를 복원할 때는 그 문화재에 사용된 재료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3D프린터를 활용하면 동일한 재료를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영훈(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문화재 복원 과정에는 이전과 다른 방법과 보존 원칙이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소실된 부분을 복원해야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문화재에 사용된 재료와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3D 프린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주 연구대상이다.

  지난 2013년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인도네시아 보로부드르 사원을 디지털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는 2단계로 나뉘어 먼저 레이저 스캐너로 실측 데이터를 확보하고, 현지 학자들의 의견과 옛 사료를 바탕으로 원래 사원 모습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문화재재단 국제교류팀 박동희 연구원은 “앙코르 유적이 발견된 정보가 적기도 하지만, 3D 스캐닝 작업을 하지 않고 실재적인 복원 사업에 힘쓰는 이유가 있다”며 신기술 적용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보존과학은 미술뿐 아니라 역사와 종교 등 모든 학문과 사상을 포괄하는 간학문적 과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 연구원은 “3D 스캐닝 작업을 진행하는 연구자는 기술에만 초점을 맞춰 문화적 소양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발생한다”며 “3D 스캐닝 작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 아직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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