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간엔 흔적이 남는다. 그해 4월 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할아버지의 옷을 모은 것이었다. 대문 앞에 생전 입으시던 자켓이며, 한복이며, 양말까지 옷들이 수북히 쌓였다. 왜 벌써부터 이러시냐고, 나중에 하라고 자식들이 말려도 할머니는 뭐에 홀린 양 옷을 찾고 던지고, 찾아 쌓고를 반복했다. “다 태워뿌라.” 모든 옷이 다 쌓이자 그제야 쉬셨다. 물건 모으는 취미도 없으셨던 할아버지 덕에 그렇게 할아버지의 흔적은 쉽게 사라졌다.

사라진 줄 알았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해 9월 추석, 큰집 문을 열자마자 할아버지가 보였다. 부엌 앞에서 할아버지는 쪼그려 앉아 매 명절 그랬듯, 밤을 까고 계셨다. 아차, 싶은 순간 할아버지는 사라졌다. 공간이 보여준 기억의 한 장면은 신기루처럼 아차, 싶을 정도로만 나타났다. 이상했다. 그해 6월, 언제 돌아올지 기약조차 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떠난 사촌은 없었다. 살아있는 자의 흔적은 없었고, 죽은 자의 흔적은 짙었다.

“인이 박혀서 그래.” 할아버지를 보았노라 말한 그날, 공간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과는 뭔가 다르구나 깨달았다. 연필 쥔 습관대로 박힌 굳은살 마냥, 부엌은 할아버지의 쭈그린 자세를 제 몸에 박아두었다. 아직도 잠겨있는 배는 얼음물에 움츠린 자세를 제 몸에 가둬두었다. 파란 지붕 앞 넓은 광장은 밥상을 마다하고 힘없이 엎드린 자세를 제 몸에 녹아냈다. 배를 생각할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공간은 굳은살 같이 박혀버린 그이들을 계속 환기시켰다. 누군가의 검은 양복에 달린 노란 리본이 지겨워 보였던, 누군가의 ‘어머님’과는 달리.

“올해는 제사 음식 안 사고 직접 한단다.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은 할아버지께 음식 차려드리고 싶으시대.” 할아버지를 본 그날부터 인간이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사가 빈번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옛 사람들이 평생을 살았던 나무집은 오래된 나무향내 속에 죽은 자의 흔적을 담아 뿜어냈으리라. 잊지 말라고 잊지 말라고. 내 몸 속 가득한 그이를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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