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돌고래. 보랏빛 초승달. 눈이 맑은 고양이. 그리고 노란 리본까지. 타투가 변하고 있다. 과거 온몸을 휘감으며 위화감을 주던 타투는 이제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나만의 액세서리가 됐다. 젊은이들은 행복한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혹은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패션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타투이스트를 찾아간다.
▲ 사진제공 | 타투이스트 도이, 타투이스트 이다
 
영원한 기억을 위해 아로새기다
세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권민정(여·35) 씨의 오른쪽 발목에는 반려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권 씨는 반려견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타투를 받았다고 말했다. “저희 강아지 첫째가 13살이에요. 앞으로 같이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제게는 가족과 같은 아이들을 평생 기억하고 싶었어요.” 권 씨는 반려동물 타투가 몸에 새긴 두 번째 타투라고 말했다. “첫 번째 타투는 해외여행 가서 호기심에 새겼지만, 이번 타투는 반려견의 모습을 담고 있으니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김명주(여·20) 씨의 왼팔에는 ‘Remember 20140416’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 리본이 새겨져 있다. 미성년자였던 김 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타투숍을 찾았다. “세월호 사건이 있던 당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저도 당시 세월호 피해 학생들과 같은 97년생이거든요. 제가 어떻게 추모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타투에 대해 알게 됐어요.” 김 씨의 추모타투를 보며 주변인들은 ‘몸에 한 번 새기면 지울 수도 없는데 왜 그랬느냐’며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타투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로 추모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저는 타투가 위화감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타투에 담긴 의미가 따뜻한 경우도 많거든요.”
 
작년 할아버지 건강이 한참 악화됐을 때 이정현(여·26) 씨는 타투이스트를 찾아갔다. 이 씨는 타투이스트와 함께 양 날개뼈 사이에 할아버지를 상징하는 라일락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어렸을 적 자주 가던 교회 앞에 할아버지가 심으셨던 라일락 나무를 떠올리며 타투를 새겼어요. 라일락꽃은 잠깐 피었다 져버리지만, 그 향이 정말 짙거든요. 할아버지는 제게 라일락 같은 존재예요.”
 
고객의 바람을 시각화하는 타투이스트
최근 타투숍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타투이스트들이 그려놓은 도안을 고객이 선택해서 시술을 받았다면 요즘은 타투이스트와의 오랜 상담을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이미지를 뽑아낸다. 홍대에서 타투숍을 운영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이다는 “타투이스트의 기술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타투이스트가 어떤 느낌으로 그림을 그려내느냐에 맞춰 고객들이 작업자를 선별하는 추세”라며 “고객이 새기려는 타투의 주제를 말하면 그 느낌을 시각화하는 것이 타투이스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타투이스트와의 상담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는 타투 시술 과정이 대중화되고 있다. 고객들은 점차 위화감을 주는 문양 대신 잘 드러나지 않는 부위에 섬세하고 다채로운 표현을 담아낼 수 있는 예쁜 타투를 찾는다. 이러한 작업을 거친 형형색색의 타투들은 #수채화타투, #일러스트타투 등의 해시 태그와 함께 SNS로 확산되며 타투가 가졌던 기존의 어두운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타투의 표현 방식과 함께 의미도 변하고 있다. 무겁고 딱딱했던 타투가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유니크한 액세서리가 된 것이다. 신동준(미디어13) 씨는 작년 겨울 오른팔에 ‘what's wrong with you’라는 문장을 새겨 넣었다. 그가 평소 좋아하던 영화의 주인공이 즐겨 쓰던 대사를 타투로 새긴 것이다.
 
타투 업계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나올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타투이스트 도이는 작업 환경의 변화를 들었다. 그는 “과거에 비해 작업 도구가 발달하고, 타투이스트들이 고객의 요구를 보다 다양하게 수용 가능해지자 이전과는 다른 형식의 타투들이 등장했다”며 “작업자의 디자인 능력을 기반으로 타투가 표현하는 범위를 이전보다 넓힌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새기면 지울 수 없다
타투에 대한 진입장벽이 점차 낮아지며 타투숍을 찾는 이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타투협회에서는 국내에서 타투를 새긴 인구를 100만 명, 타투이스트를 2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타투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자 타투 제거를 전문으로 내세우는 피부과도 급속도로 생겨났다. 타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투이스트들은 ‘타투는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타투이스트 도이는 “표피에 시술된 검정색 잉크는 레이저 시술을 통해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지만, 표피보다 깊숙하게 잉크가 들어가면 어떤 레이저로도 지우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우면 되니까 쉽게 해도 될 거라 생각하기보단, 시간이 지나도 몸에 새긴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타투를 즐길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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