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3 16:09 (수)
예술 속 시대의 특성을 넘어 '인간과 진리' 연구하다
예술 속 시대의 특성을 넘어 '인간과 진리' 연구하다
  • 김희원 기자
  • 승인 2016.09.25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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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섭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前 문화재청장) 인터뷰
▲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 김홍도, <염불서승도>, 조선 18세기, 저본담채, 20.8×28.7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 강세황, <매화>, 조선 18세기, 지본담채, 21.7×28.2cm(그림), 개인소장

  매화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홀로 은은하지만 굳건하게 꽃을 피워낸다. 미술사 연구를 통한 인간 보편성 탐구라는 고독한 길을 걸어온 변영섭(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여러 ‘추위’를 거치며 그 부드러움과 굳셈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학자가 됐다. 변영섭 교수는 예술을 관통하는 인간과 진리를 바라보고 끝내 ‘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 교수로 재직한 동안 어떤 연구를 했나
  “그림-미술-예술-문화-인간을 하나로 관통하는 본질을 읽으려 노력했다. 사람이 왜 그림을 그리는지, 문화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그림으로 문화를 이뤄낸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 것을 화두로 삼았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은 미술사에 있다고 믿었다. 보통 미술사 연구는 비교방법론을 통해 특수성(차이점)과 보편성(공통점)을 살핀다. 나는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보편성에 집중했다. 작품 속 드러난 그 시대만의 특수한 정치·사회·경제적 모습을 연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술 작품 속 인간과 진리에 대해 연구했다.

  내가 주로 관심 있는 한국 문인화는 사물의 본질을 궁구하는 ‘지성(知性)’이 하는 예술 활동이다. 예술의 보편성에 답을 주는 분야였다. 조선시대 시와 그림의 종합예술인 문인화는 인간 최고의 보편가치를 추구한다. 문인화는 삶의 의미와 정신가치를 돌보는 문화시대의 정신과 그 목적과 방향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수묵 위주인 문인화의 담박함과 은은함, 여백미가 돋보이는 고상한 화격(畫格)도 매력적이다.” 

- 미술에서 보편성은 어떻게 형상화 되는가
  “도덕경에 있듯이, 진리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 이는 곧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는 보편성이다. 가령 김홍도의 <염불서승도>를 보면, 뒷모습을 보인 채 앉아있는 스님의 뒤로 달처럼 보이는 두광이 있다. 대상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을 칠해 형상화하는 홍운탁월법으로 달을 표현했다. 달을 그리는 순간 달이 아니라는, 즉 표현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보편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강세황의 <매화>에서도 이러한 보편성은 나타난다. 작가는 매화를 표현할 때 매화 꽃을 색칠하지 않고 가장자리만 그려 여백을 준다. 매화 사이의 공간을 통해 매화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진리가 있다는 보편성이 여백을 통해 형상화된 것이다. 동양에서는 진(진가), 선(선악), 미(미추) 즉, 진선미 일치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최고 경지로 본다. 진선미 일치의 경지에 이르면 고요하고 갈등이 없고 맑고 시원해진다. <매화>의 텅 빈 여백에서 우리는 맑고 시원함을 느끼고 진선미 일치의 경지를 느낀다. <매화>에 내재된 보편성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 ‘문화시대’란 무엇인가
  “이제 인류의 역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새 시대, 새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에 주력하던 물질과 힘의 시대에서 ‘정신적 가치’가 중심이 되는 문화의 시대로 흐르고 있다. 경쟁과 갈등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서 누구나 사람답게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강세황, 김홍도처럼 시·서·화를 향유하고 문화와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지금은 누구나 이런 내면적 가치들에 대해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것이 문화시대다. 

  ‘How의 시대’에서 ‘Why의 시대’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든지 의미를 묻는 시대가 됐다. 인류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길흉의 문제에서 벗어나 옳고 그름과 진실과 거짓과 같은 고차원적인 의미와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인문학이 강조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물질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본질과 의미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물질 중심의 ‘눈먼’ 과학에 동양의 지혜라는 ‘눈’을 달아줘야 한다.”

- 울산 반구대암각화 보존운동에 15년간 힘썼는데
  “한국미술사학회장을 맡고 있을 때 반구대 앞에 유물전시관을 짓는 걸 막는 일이 반구대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문자가 없던 시절 그림으로 쓴 역사책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국보다. 하지만 그런 반구대가 15년 동안 물고문 당하고 있다. 울산의 사연댐이라는 수문 없는 댐이 있는데, 수위가 52m보다 높아지면 반구대가 물에 잠긴다. 반구대 보호를 위해서 댐의 수위를 낮춰야만 한다. 하지만 울산시에서는 물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수위조절을 하지 않고 있다. 반구대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반구대는 이미 4분의 1이 훼손됐다.

  2013년 문화재청장 재임 시절에도 반구대를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카이네틱 댐(가변형 투명 물막이) MOU를 맺기로 결정한 것도 반구대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반구대는 국보지만 한 번도 그 주변 발굴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카이네틱 댐 설치를 위해 발굴이 이루어지면,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발굴에서 공룡 발자국이 81개까지 나왔다. 암각화와 공룡발자국이 이렇게 함께 나온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 가치가 높아진 만큼 보존을 위한 조치에 명분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구대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카이네틱 댐은 한 대학의 문화재 보존 수업에서 나온 학생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나중에는 공학적으로 오류가 있음이 밝혀져 28억을 들이고도 무용지물이 됐다. 국보를 대상으로 연습한 꼴이 아닌가. 부끄러운 일이다.”

- 한국 문화재 보존 실태는 어떤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봤나. 미래에 한국을 지탱할 자산은 유형, 무형, 천연기념물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관리나 보존, 그리고 세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알리는 일은 현재 문화재청 규모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연구인력, 조직, 예산 등이 총체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토록 중요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고 혼자 버티는 격이다. 문제가 생겨야 부분적으로 약 바르고 수술하는 정도다. 우리 민족 최고의 자산이 그 중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혼자 견디는 실정이다.

  문화재청장 재임 시절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금동반가사유상) 해외 전시가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었다. 당시 금동반가사유상을 뉴욕 전시에 내보내자는 요구가 있었다. 그런데 금동반가사유상은 세계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불상이다. 훼손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외부반출은 금지해야 했다. 더욱이 금동반가사유상은 반출에 있어 복제품을 만드는 사전 준비도 부족했다. 중국은 반출금지 문화재 목록이 있고, 다른 국가들도 그 가치에 따라 외부 반출을 금하는 제도가 있는데 한국은 아닌 것 같다. 문화재 훼손 가능성을 심도 있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 또 금동반가사유상 같은 훌륭한 문화재는 한국에 와서 보면 되지 않나. 우리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듯이 말이다.”

- 교수 퇴직 후 특별한 계획은
  “문화시대의 의미와 문화대국으로서 문화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저력과 가치에 대해 유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또 문화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기회가 닿는 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나는 고려대학교가 이런 새 시대를 일궜으면 좋겠다. 구식 사고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열린 자세와 유연함으로 다양성과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것도 창의력이지만 이런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창의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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