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약탈 문화재인 외규장각 도서를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했다. 하지만 문화재의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다.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약탈된 문화재 약 16만 4천, 환수된 문화재는 약 5천
국가 간 세력 차, 환수 과정서 정당성 흐리기도
정확한 사태파악부터 법규적용 등…전반적 개선 필요
문화재 환수법규 있지만 전국적인 문화재 보존 노력은 부족해


  최근 몇 년간 학계와 언론의 관심을 모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요구는 1991년 10월, 규장각을 관리하던 서울대가 외무부에 환수 요청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1993년 9월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 ‘교류의 방식으로 영구 대여한다’는 원칙에 합의하며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을 체결했고,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한 권을 전달했다.

  이에 파리 국립도서관 직원들은 반환 결정에 대한 반발로 파업을 선언했고, 프랑스 문화부에선 ‘대통령이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여론의 비난에 프랑스 정부는 완전한 반환 대신 교환이나 대여를 의미하는 ‘영구 임대’로 입장을 바꿨다. 결국 8년 후 외교장각 도서는 ‘반환’이 아닌 ‘등가교환’으로 마무리됐다.

소유주체 따라 환수 여부 결정
  문화재 환수의 핵심은 누가 과거의 정신·물질적 문화유산의 소유권을 행사하느냐다. 이 소유권은 한번 훼손되거나 파괴되고 나면 원래 상태 그대로 되돌릴 수 없는 문화유산의 본질적 특성과 연관된다.

  문화재 불법 유출과 현재 해당 문화재의 소유권이 정당한지 여부 역시 궁극적으로 과거유산의 소유 주체가 누구인지에 달려있다. 누가 합법적으로 문화재를 이동했고 그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위법 행위로 문화재를 이동했을 경우 이 사실을 증명할 근거는 남아 있는지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간 세력이 불평등하면 문화재 환수 과정에서 정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피식민국의 경우, 그 기간 동안 다양한 국가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문화재가 유출돼 합‧적법을 따지기가 더 힘들다”며 “문화재가 현재 소유지로 반출된 과정이 합법인지, 현재 소유자의 취득 과정이 정당했는지를 입증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전쟁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문화재 유출 과정의 불법 여부에 관계없이 문화재 환수가 우선적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문화재가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보편주의 가치관을 내세우는 문화재 보유국들은 문화재 반환에 호의적이지 않다. 2002년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의 한국관을 담당하는 피에르 캄봉 학예관은 외규장각 고서에 대해 프랑스 제국주의 시절의 약탈품이라는 것을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에 약소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를 보편주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프랑스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 귀화주의를 근거로 이미 수십 년이 지난 문화재는 ‘귀화’된 프랑스의 문화재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문화재 반환에 응하지 않았다. 안문석(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제적으로 협의된 조약을 거부하는 한 국가 간 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네스코, 국가 간 법적 규제 마련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유엔(UN), 유네스코(UNESCO),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등 국제기구가 조직적으로 문화재를 보호했다. 유네스코는 문화재분과를 신설해 문화재 보존과 보호, 반환을 담당하며 반환 협상을 중재했다. 박물관 전문 단체인 국제박물관협의회는 1960년대부터 문화재 불법 반·출입을 규제하고 문화재 회복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진행했다.

  문화재 반환에 관한 대표적인 국제 협약으로는 1954년 전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유네스코의 ‘헤이그 협약’과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이 있다. 이러한 국제 법규의 공통 내용은 문화재 개념을 분명히 밝히고, 전쟁 기간에 점령군의 문화재 파괴, 훼손, 압수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1970년 50개국이 가입한 유네스코 협약은 문화재 불법 유출과 유통을 막고 반환을 촉구할 수 있는 국제적 규제의 근거를 마련했다.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김병연 연구관은 “국제협약이 없었을 때는 국가 간 법률이 상충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국가 간 권리와 의무를 협약으로 제정하면서 약탈국의 반환을 촉구하는 권한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만일 체약국이 허가 없이 문화재를 반출하거나 식민지 상황에서 지배국이 강제로 반출했다면 그것은 모두 ‘불법 취득’으로 규정된다. 체약국에게는 문화재 약탈이 심한 국가에게 개별·집단적으로 불법 유통을 억제해 줄 것을 요청할 권리도 부여된다.

 

“국제적 규제의 근거 마련으로 약탈국에게 반환 요구 권한 커져”
“예산과 인력부족 문제, 반환 협상엔 관련 전문가가 주축이 돼야”


한국, 관련 법규 있지만 적용엔 편차 발생
  지난 18일 충남도의회는 ‘도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지원 조례안’을 발표했다. 약탈로 인해 해외로 반출된 충남도 문화재를 찾겠다는 것이다. 충남도의회 김연 의원이 발의한 ‘환수 조례’는 문화재보호법 제69조에 따라 충남에서 반출된 국외 소재 문화재 보호 및 환수를 위한 단체나 기관을 선정해 지원한다. 해당 조례가 본회의를 거쳐 통과하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국외소재 문화재 실태 조사와 더불어 관계 기관과 단체의 협조체계도 구축될 예정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문화재 보존 노력과 환수정책 마련은 아직 부족한 상태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 환수 정책이 나아가기 위해선 연구조사 예산과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황 소장은 “올해 문화재 환수에 투입된 정부 예산이 35억여 원이지만 실질적으로 환수에 쓸 수 있는 예산은 많지 않다”며 “전체 예산 중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등 경상비가 절반에 육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협약과 국내문화재보호법 등 관련 법규가 마련돼 있지만, 일정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문화재별로, 국가별로 자의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김병연 연구관은 한 예로 혜초 스님의 필사본으로 유명한 ‘왕오천축국전’을 들며, 문화재별로 환수범위에 속하는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혜초 스님과 연관된 것 이외에는 모두 중국어로 적혀있어 환수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며 언어에 따라서도 환수대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비전문가들이 앞장서는 정략적 접근이 안일한 국제협상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반환 요구 실무진을 외교부가 아니라 문화재청이나 관련 전문가가 주축이 되는 형태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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