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범석 소방관법 토론회 열려
질병-업무간 인과관계 직접 입증해야
보수적으로 심의하는 공단의 태도 지적
공상심의 전 전문조사제 도입은 긍정적
표창원 의원, “법원에 준하는 심의해야”

▲ 소방관들은 많은 위험에 노출돼있지만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받기는 어렵다. 사진 | 김주성 기자 peter@

  2014년 6월, 소방공무원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온 김범석 소방관이 세상을 떠났다. 2006년부터 현장에서 화재 출동 270회, 구조 활동 751회에 나섰던 베테랑 故김범석 소방관은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만에 주파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 7개월 뒤 사망했다. 유가족은 혈관육종암이 화재 현장의 유해물질과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 봤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을 비롯해 정부가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해당 질병의 원인이 화재현장 때문이라는 주장은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유족이 제기한 유족보상금 청구는 기각됐다.

  故김 소방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2011년에서 2015년 사이 암으로 인한 공무상 요양을 신청한 소방관은 18명이었지만 단 한 명만이 인정받았다. 공무상 사망은 신청한 63명 중 45명만 순직 처리됐다. 이런 열악한 현실을 바로잡으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위험직무 순직 및 공상의 인정 등에 관한 법률안, 일명 ‘故김범석 소방관법’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창원(한성대 행정학과) 교수와 심의를 담당하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공무원 등이 참여해 의견을 나눴다.

공상과 순직을 인정받기 힘든 현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과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방대원들은 업무의 특수성을 인정해 공무상 부상, 사망 등의 인정을 폭넓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험직무 공무원의 순직 및 공상에 관한 법률 입법 방안에 대해 발제한 이창원 교수는 “현재 소방관은 화재, 구급, 구조 업무뿐만 아니라 고양이 구조와 같이 국민이 원하는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며 “그 공무 수행 중 발생한 위험에 대한 처우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순직, 공무상 부상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위험직무 공무원이 위험직무 수행 중 그 공무로 인해,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지난 12월 벌집 제거 임무를 수행하다 벌에 쏘여 숨진 소방관은 위험 직무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순직 신청이 기각되기도 했다.

  공무상 부상, 순직의 입증 책임이 위험직무 공무원 본인에게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창원 교수는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하고 대부분의 경우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쪽이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항만소방서 남영현 소방관도 “소방공무원들은 인명구조, 응급처치에는 전문가지만 의학적 전문지식은 부족하다”며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질병이 다수 존재하는데 공무상 요양 신청도 하지 못하고 묻혀버린 사건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림대병원 왕순주 응급의학과장은 소방관 건강, 안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왕순주 응급의학과장은 “특히 암과 같은 질병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며 “역학조사를 통해 소방관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전산화작업을 진행하는 등 의학적 지식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계적으로 심의하는 공단의 태도
  현재 정부는 공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확대하는 등 보다 폭넓게 공상을 인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개정된 공무원연금법 시행령에 의해 암, 자해행위, 정신질환에 대한 공무상 재해 인정 기준이 신설됐으며 암, 백혈병과 같은 특수질병에 대해서는 ‘공상심의 전 전문조사제’를 도입해 소방공무원의 입증책임을 완화했다. 뇌혈관, 심장질환, 과로 등의 질병에 대해서는 직종, 담당직무, 근무환경 등을 고려하는 정성적 평가기준이 마련됐고, 질환 유형을 세분화해 심의기준을 정했다.

  특히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 입증을 전문병원에 맡기는 공상심의 전 전문조사제는 토론에 참여한 여러 전문가들도 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토론회를 주최한 표창원 의원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희귀질환에 대해 원고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이 제도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희귀암인 비인강암을 앓던 한 소방공무원이 이 제도를 통해 공무상 요양 승인을 받기도 했다. 인사혁신처 연금복지과 이종민 사무관은 “객관성, 전문성을 높이고 입증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이 제도의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 심의를 담당하는 기관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란 의견도 있었다. 충남소방본부 소속의 한 소방관은 “승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심의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표창원 의원에 의하면 실제 공상 심의 한 건에 걸리는 시간이 3분 남짓이다. 이에 남영현 소방관은 “관행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돼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재해보장실 김석주 부장은 “3분 남짓의 시간은 심의위원들이 사전에 미리 심의안건을 충분히 검토를 하고 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심의의 신뢰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표창원 의원은 “이전에는 직무관련성을 인정했음에도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는 다른 신청에는 기계적으로 불승인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며 “법원의 결정 판결에 준하는 심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이후 이뤄진 방청객 발언에서는 소방업무로 질환을 얻거나 순직을 한 사례들이 쏟아졌다. 지난 7월, 비흡연자였던 창원소방본부장이 폐암 판정을 받아 수술을 받았고 8월에는 한 소방공무원이 심장질환으로 숨졌다.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소방관도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했다. 서울 모 소방서에서 왔다고 밝힌 그는 “심의를 공정하게, 내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해야 하지만, 공단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계속해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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