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에 들어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거의 경험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에선 발생빈도가 희박한 지진하중을 고려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고, 기술적인 한계도 많았다. 그러나 고층건물과 장대교량 같은 대형구조물이 일반화되고,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중요구조물이 증가함에 따라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급속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1988년 개정된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건축물의 내진설계기준이 제정되었다. 또한 교량구조물에도 내진설계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92년 12월에 개정된 도로교표준시방서에서 교량의 내진설계개념이 도입됐다. 최근에는 내진규정이 상당히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지진파와 구조물의 상관관계
내진설계란 다가올 지진동에 대비하여 이에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듯 다가 올 지진에 대해서도 그 특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관측된 각종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 일반적인 경향은 파악하게 되었다. 즉, 지진파의 특성은 진원지에서의 단층의 크기나 모양 또는 암석의 파괴 형태에 따라 달라지며, 진원지에서 관측점까지의 전파경로에 의한 영향, 그리고 관측점 하부 표층지반에서의 증폭특성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단층의 크기는 지진파의 전반적인 크기에 영향을 미치며 표층지반의 영향은 진동수 특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지진은 모든 물체에 대하여 동일하게 지진력을 작용하지 않는데, 유연한 물체는 약한 힘으로 어루만져 주고 강한 물체는 강한 힘으로 때려주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지진력에 대항하는 것이 아닌, 지진력을 피하는 개념으로 구조물을 유연하게 설계함으로써 지진 다발지역에서의 초고층 건물 및 현수교와 같은 장대교량의 건설에 대한 이론적인 배경을 가진다. 이러한 지진의 주기특성을 수학적인 도구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를 응답스펙트럼이라 부르는데,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지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답스펙트럼과 공진현상
태양광선은 맨눈으로 보면 밝기만 인식될 뿐 아무런 색깔도 띄지 않으나 프리즘을 통하여 보면 주파수별로 일곱 가지색으로 분해되어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지진파의 특성을 주파수별 성분으로 분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분석방법 중 한 가지가 응답스펙트럼이다. 응답스펙트럼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작성된다. 어떤 물체에 강제적인 변위를 가한 후, 이를 해제하면 그 물체는 원위치로 되돌아가려는 복원력과 제자리에 있고자 하는 관성력이 작용하므로 진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물체의 진동주기를 물체의 ‘고유주기’라 하며 물체의 재료와 형상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물체가 진동하는 동안에 열이나 소리로써 에너지를 소비하는 현상을 감쇠(減衰, Damping)라고 한다. 이러한 주기와 감쇠를 갖고 진동하는 물체를 매개로 해 지진파의 주파수 성분을 분석한 결과가 응답스펙트럼이다. 이러한 스펙트럼의 모양은 지진파에 따라 상이하나 전 세계적으로 관측된 지진파들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스펙트럼에는 개략적으로 비슷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주기에서의 응답치가 크다는 것은 지진파 속에 이러한 주기의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응답치가 작다는 것은 이러한 주기의 성분이 적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지진파의 성질 중 최대가속도의 크기뿐만 아니라 주기별 성분의 분해가 왜 중요한가? 이는 구조물의 피해가 지진의 크기뿐만 아니라 지진이 갖고 있는 주기와 구조물이 갖고 있는 주기가 공진을 일으켰을 경우 더 크기 때문이다. 공진이란 두 물체 사이의 떨림을 주고받는 현상인데, 반드시 주파수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즉, 공진은 크기가 같은 소리굽쇠를 서로 떨어지게 놓고 한쪽의 소리굽쇠 충격을 가했을 때, 공기를 매질로 에너지가 전달되어 충격을 가하지 않은 다른 쪽의 소리굽쇠가 진동하는 현상으로, 크기가 같은 소리굽쇠라는 말은 두 물체의 진동수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기의 진동에너지를 잘 흡수할 수 있는 동일한 크기나 형상의 소리굽쇠는 진동하지만, 크기 및 형상이 다른 소리굽쇠는 진동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여 공진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진동을 쉽게 주고받는 현상은 반드시 두 물체 사이의 고유주기가 비슷한 경우에만 발생하게 되한다. 외력을 가하는 물체와 외력을 받는 두 물체의 진동하는 주기가 인접할 때는 공진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내진설계를 할 때 외력으로 작용하는 지진과 외력을 받는 구조물과의 공진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인접된 장소에 층수가 상당히 다른 두 종류의 건물이 건설되었다고 하면, 구조적인 특성상 저층건물은 고유주기가 짧을 것이고 고층건물은 고유주기가 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지역에 단주기 성분이 강하고 장주기 성분이 약한 특성을 가진 지진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지진과 구조물의 공진현상에 의하여 저층건물은 파괴되고 고층건물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가능성이 크며, 반대로 장주기 성분이 강하고 단주기 성분이 약한 지진이 발생했다면 고층건물은 파괴되고 저층건물은 안전할 가능성이 크다. 즉, 구조물의 지진에 대한 안전성 여부는 ‘지진의 탁월주기와 건물의 고유주기가 일치하여 공진현상을 일으키느냐, 지진의 탁월주기와 건물의 고유주기가 서로 어긋나 공진현상을 일으키지 않느냐’의 차이에 있으며, ‘건물을 튼튼하게 잘 지었느냐 부실하게 지었느냐’의 차이보다 더 큰 문제가 된다. 구조물의 내진설계는 지진동의 주파수 특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하며, 지진동의 주파수 특성을 나타내는 응답스펙트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조물을 건설할 대상 부지에 어떠한 탁월주기를 갖는 지진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중요한 문제이지만, 우리들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외국 설계기준의 준용 또는 개략적인 지반의 성향을 파악하여 설계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적합한 내진설계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지반특성이 반영된 설계응답스펙트럼을 작성해야 하며, 미국이나 일본의 설계기준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지진피해와 예측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내진구조, 면진구조, 제진구조
지진이란 적으로부터 우리들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선, 앞서 말한 지진의 특성과 구조물의 설계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지진에 대비한 구조물의 설계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구조물을 튼튼하게 설계하여 무조건적으로 지진에 대항하고자 하는 ‘내진구조’, 지진파가 갖는 있는 강한 에너지 대역으로부터 도피하여 지진과 대항하지 않고자 하는 ‘면진구조’, 신무기를 개발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제진구조’다.
 
예를 들어, 달리고 있는 전동차 속에서 진동을 느낄 때, 전동차 안에 있는 노인들은 손잡이를 붙잡아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반면, 젊은 사람들은 자기의 두발로 버팀으로써 넘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몸이 균형을 유지하는 현상을 구조물에 적용하면, 나이든 사람이 주위의 물체를 붙잡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구조물 내에 보조적인 부재(내진벽)를 설치하여 지진에 견딜 수 있게 하는 구조물이 ‘내진구조물’이며, 젊은 사람들은 두발로 버틸 수 있는 것처럼 구조물 자체에서 구조물의 진동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진동을 제어하는 설비를 갖춘 구조물이 ‘제진구조물’이다. 제진구조물에는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구조물에 입력되는 지반진동과 구조물의 응답을 계산하여 이와 반대되는 방향의 제어력을 인위적으로 구조물에 가함으로서 진동자체를 저감시키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입력되는 진동의 주기성분을 즉각적으로 분석하여 이와 공진을 피할 수 있도록 구조물의 진동특성을 바꾸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전자계산기에 의한 계산상의 조그만 착오로 인해서도 오히려 구조물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력하게 되는 위험성과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여 항상 설비를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한편, ‘면진구조물’은 지진에 대항하는 것이 아닌, 지진을 피하는 구조물이다. 면진구조물은 지반과 구조물 사이에 고무 등과 같은 절연체를 설치하여 지반의 진동에너지가 구조물에 크게 전파되지 않도록 구조물의 고유주기를 길게 하거나, 자기부상열차가 진동이 없는 것처럼 지진에 의해 발생된 진동이 구조물에 전달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앞서 설명한 내진설계의 여부와 상관없이 개별 구조물의 지진피해는 인간의 영역보다는 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번 경주지진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지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전규식 디프리기술연구원(주) 원장·공학박사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