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이 된다는 것
문보영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제 17회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 사진 | 본인제공

“거북이 같은 시인이 되고 싶어요.”

거북이는 엉덩이로도 숨을 쉰다. 천식이 있어 숨 쉴 때 늘 고생했던 문보영(대학원·국어국문학과) 씨는 거북이가 부럽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숨’은 늘 갈증 나는 대상이다. 왜 사람은 숨을 코와 입으로만 쉬는 것일까. 의문을 가지며 겨드랑이, 무릎, 엉덩이로도 숨을 쉬는 상상을 한다. 그에게 시란, 다른 사람이 숨 쉬지 않는 부위로 호흡하는 것처럼 ‘이상한’ 발화다.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엉덩이로도 숨 쉬는 시.”

문보영 씨는 올해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에서 <막판이 된다는 것>으로 당선됐다. 2013년에는 본지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안개>로 당선한 바가 있다. 그에게 시는 ‘후련함으로부터의 도피’다. 시적 영감을 준 어떤 감정이나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채, 계속 붙들려 있는 것이다. 절단된 부위에 여전히 사지가 있다고 느끼며 아파하는 환상통처럼 시를 쓰고 나서도 이미 사라져버린, 끝나버린 감정에 묶여 통증을 느낀다. “일기나 소설을 쓸 땐 마음에 쌓인 걸 풀어버리는 쾌감이 있는데, 시에는 그게 없어요. 하지만 시는 시인이 고독을 견딘 후에 시 속에 슬픔과 절망이 생생히 담기는 매력이 있죠.”

시 속 후박나무의 의미에 관해 묻자 “후박나무를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시를 쓸 때 대상에 대해서 깊이 알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상의 의미에 얽매이다 보면 시가 써지지 않는 경험을 맛본 적이 있어서다. 예전의 그는 시어를 받았을 때,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순대’라는 시어를 받아 매일같이 순대를 먹고, 들여다보고, 만져보며 머릿속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지만, 오히려 시를 쓸 때 방해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쓰려는 대상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의식 속의 인상이나 이미지의 느낌으로 쓸 때, 시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는 시어가 머릿속을 ‘스쳐 가길’ 기다린다. 그에게 시는 곧 기다림이다. 단어는 어느 순간의 경험을 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 알아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찾아온 단어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 <안개>, <막판이 된다는 것>을 쓸 당시에도 안개, 막판이라는 단어가 그의 의식 속에 달려들었다. 그는 마치 그가 던진 미끼에 슬픔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며 낚싯대를 붙든, 고독한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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