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백남기(남·69) 씨가 9월 25일 끝내 숨졌다. 그가 참여한 민중총궐기의 전반에 나타난 국가의 폭력은 다양하다.
 
민중총궐기는 집회 시작 전부터 불법시위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정부는 담화문을 통해 “불법시위는 엄단할 것”이라며 ‘불법시위’ 참여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예고했다. 시위 도중 경찰력이 대거 투입됐고, 사람을 향해 정조준 된 직사의 물대포는 백 씨를 뇌사상태에 빠뜨렸다. 백 씨의 사망 뒤에도 국가의 태도는 같았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과도, 배상도 아닌 부검 영장이었다.
 
불법시위 안에 갇힌 민중총궐기
# 2015년 11월 13일 : 정부 5개 부처 담화문 발표
교육부·법무부·행정자치부·농림축산식품부·고용노동부 등 5개 부처 장·차관들은 민중총궐기 전날인 11월 13일, ‘11.14. 도심집회 관련 담화문’을 발표했다. 특히 행정자치부와 교육부는 공무원과 교사를 압박하는 데 주력했다. 정재근 전 행자부 차관은 “공무원들이 법령에서 금지하는 불법 집단행동을 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전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는 집회 및 시위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시행하고 있다. 시위 및 집회의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는 ‘집회 및 시위가 해산된 정당의 목적달성을 위해서’와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 등의 사유로 한정한다. 당시 경찰은 “불법 없이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겠다고 하면 행진로 개방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광화문 광장을 가겠다는 본질은 청와대를 향하겠다는 것”이라며 차벽을 설치해 시위대의 행진을 막았다.
 
반면, 시위대 측은 정부가 집회의 양상을 예단하고, 시위를 조기에 해산하려고 집회 시작 전부터 ‘불법시위’로 명명한 것이라 주장했다. 안세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는 “작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갑호비상령’을 발령하고 정부 5개 부처 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정부당국은 집회 자체가 폭동이나 소요사태의 급박한 위험을 전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회 및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집시법’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집시법에 포함된 ‘집회금지지역’, ‘집회금지명령’, ‘해산명령’ 등 과도한 진압 위주의 조항이 관할 경찰관서장의 재량에 따라 행사된다는 것이다. 한선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관할경찰관서장의 통고에 따라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고 제한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 경찰서장의 재량권이 보다 확장돼 남용된다”며 “집회 진압에 사용되는 차벽 등의 물리력도 집회 시작 전에 설치돼 집회참가자들의 통행을 막고, 일반인들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물대포 앞에 스러진 목소리
# 2015년 11월 14일 : 제1차 민중총궐기
작년 11월 14일 주최 추산 10만 명, 경찰 추산 6만 명의 시위대가 시청 앞 광장으로 모였다. 그 후 시위대는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차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일선에 선 시위대는 가로막힌 차벽을 넘으려 했고, 경찰은 이들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를 맞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1999년 최루탄 사용이 금지되면서, 현재 경찰은 집회 및 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저지하기 위해 살수차를 사용하고 있다. 2005년 이래로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살수차’는 물에 캡사이신, 최루액과 같은 화학물질을 섞어 발포하면서 ‘불법폭력시위’를 진압한다. 살수차는 신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어 2014년 위해성 경찰장비로 분류됐다. 살수차 등의 위해성 장비에 대한 운용은 구체적인 법령이 아닌 경찰 내의 운용지침으로 규정돼 있는데, 경찰관직무직행법(경직법) 제10조와 13조에 의하면 위해성 경찰장비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
 
작년의 민중총궐기에선 살수차 사용에 대한 경찰권이 집행의 한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중론이다. 운용지침에 의하면 곡사 등의 경고살수가 선행돼야 하고, 직사살수를 할 경우에도 상반신 이하를 조준해야 한다. 또한 살수에 의한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즉시 살수를 멈추고 구호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9월 12일 청문회를 통해 민중총궐기 당시 2800rpm의 세기로 머리를 겨냥한 직사살수와 부상 후 살수 강행의 모습이 확인됐고, 경찰도 이를 시인했다. 이에 문병효(강원대 법과대학) 교수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가져 과잉진압의 가능성을 높이는 물포를 대응장비로 사용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며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경찰은 후진적인 집회‧시위 대응 방식을 버리고, 진정한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8월 2일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은 경찰의 살수차 사용 요건을 제한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살수사 직사 사용 금지 ∆물살세기 1000rpm 이하 ∆최루액‧염료 혼합 살수 금지 ∆발사 전 경고방송 3회 이상 실시 ∆영상 10도 이하에서 살수금지 등이다. 이 개정안은 지난 19대 국회 때 발의됐다가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만
# 2016년 9월 28일 : 법원 시신 부검 ‘조건부 영장 발부’
9월 25일 백남기 씨가 사망했다. 그의 사인에 대해 경찰과 유가족들 사이의 공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그의 사인이 외인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재신청했다. 현재 법원은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이례적인 조건이 달렸다. △유족의 의사를 확인해 원할 때 서울대병원에서 진행 △유족 1~2명과 유족지명 의사 2명, 변호사 1명 참여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부검 △부검과정은 영상으로 촬영이 그 조건이다.
 
백 씨가 사망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도, 사망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9월 12일 열린 ‘백남기 사건 청문회’에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결과만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인과 책임소재가 명확치 않은 상황에서 경찰청장의 신분으로 공식 사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돼 수사를 받고도 있지만 그 과정은 지지부진하다. 안세영 활동가는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과도한 공권력을 사용한 책임이 있는 경관 및 지휘관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해자 처벌과 사과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3월 백남기 씨의 가족들은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2억4000만 원 규모의 국가배상 및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으나 그 진행과정은 불투명하다. 문병효 교수는 “시위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다고 판단했을지라도 적법절차 없이 경찰이 그에게 즉각적인 처벌을 한 것은 옳지 않다”며 “이를 감안하면 백남기 농민을 비롯한 부상자들은 엄연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도 “국가가 설치‧관리하는 경찰의 행위에 의해 한 생명이 침해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부는 충분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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