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6 15:12 (화)
정대 후문의 밤을 비추는 불빛
정대 후문의 밤을 비추는 불빛
  • 김태우, 장우선 기자
  • 승인 2016.10.09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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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그 사람들(6) - 떡뽀이 사장 이희규 씨, 주유소 사장 고재일 씨
▲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떡뽀이 “‘호상비문’ 속 고대정신, 후배들에게 전해줘야죠”

  “모순된 톱니바퀴에 그대로 끼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고대정신이야.”

  고연전 마지막 날, 정경대 후문의 떡뽀이 앞에는 기차놀이 하던 학생들이 멈춰서 호상비문을 복창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상비문을 선창한 사람은 빨간 앞치마를 두른 ‘떡뽀이 사장님’ 이희규(영어교육과 81학번) 교우다.

  작년 3월, 이희규 씨는 정경대 후문 앞 골목에 떡볶이 가게 ‘떡뽀이’를 열었다. 제기동에서 25년간 운영한 사진관을 시대에 흐름에 맞춰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 아파트촌을 돌며 음식을 판매하고 반응도 살피는 등 5년간 준비한 끝에 마침내 안암에 떡뽀이 본점을 열었다. “자영업이란 게 시대 변화에 민감하고 흥망이 심해. 떡볶이는 대한민국 대표 주전부리로 어느 세대나 즐길 수 있어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어.”

  떡뽀이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떡볶이, 순대 등 음식 사진 외에도 여러 게시글이 올라온다. 재미있는 이벤트는 물론, 마감 후 남은 음식을 자유롭게 가져가라는 글과 학생에게 받은 과자를 인증하는 이 씨의 사진까지 다양하다. 새벽이면 ‘보은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포장된 떡볶이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영업을 마치고 남은 음식을 누구나 자유롭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은이란 말을 학생들에게 배웠어. 장사가 잘되고 남은 것들을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한 거야. 보통은 파출소나 청소원, 경비원, 불우이웃에게 주고 있어.”

  빙수 빨리 먹기, 응원가 부르기, 호상비문 암송 등 이색적인 이벤트도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려대 앞인데 평소에도 응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우리 때는 셋만 모여도 술 마시면서 응원가를 불렀는데. 그래서 이런 이벤트를 생각하게 됐지. 작년에 혼자 와 패기 있게 뱃노래를 부른 남학생이 기억에 남아.”

  이희규 씨는 특히 호상비문은커녕 호상의 존재도 모르는 학생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씨에게 호상비문은 곧 고대정신 그 자체다. 그래서 호상비문과 관련된 이벤트는 계속 구상 중이다. “호상비문에는 고대정신이 담겨 있어. 호연지기와 저항정신, 세계 리더로 나아갈 방향까지. 세상은 악의 늪이라 허우적댈수록 깊이 빠져들기 쉬워.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면 곧바로 사회가 있는데 이때 고대정신이라는 보호막이 없으면 악에 쉽게 물들어. 공부만 하다 사회인이 되면 사회의 잘못된 톱니바퀴에 끼이기 십상이지. 그래서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선택의 순간에 호상비문을 외우기도 해.”

  고대정신은 이희규 씨의 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떡뽀이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둔다면 국산 농산물만을 사용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가 꿈꾸는 식당은 농민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단계를 줄여 싼값에 밥을 판매하는 식당이다. 농민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하더라도 유통비용이 적어져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생산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농민조합을 만들고 싶어. 지금은 생산자 아닌 제조업자가 가격을 정하고 있거든. 유통의 혁신은 좋은 생각을 가진 조합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 중심에는 생산자가 있어야 해.”

  이희규 씨의 하루 장사는 새벽녘이 돼서야 마무리된다. 문 닫힌 매장 앞에는 ‘남은 건 두고 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처럼 늦은 시간까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떡볶이 봉지들이 남겨져 있다.

글 | 장우선 기자 priority@

 

▲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주유소 추억의 불 밝히는, 술이 있는 그곳

  밤이 깊어갈수록 고대생의 추억도 깊어간다. 지친 하루를 달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끈끈한 우정을 쌓기 위해 고대생은 정경대 후문으로 향한다. 20년 넘게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며 고요함만 감도는 새벽에 추억의 불을 밝히고 있는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 사장인 고재일(남·50) 씨와 안암동의 인연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3월,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가게 운영을 꿈꾼 그는 당시 본교 대학원생이던 친구의 조언으로 안암동을 찾았다. 초기 자본금이 많지 않아 임대료를 걱정했던 그는 낡은 가옥들이 즐비한 정경대 후문 일대가 눈에 들었다. “당시 정경대 후문 일대에 상권이 형성돼있지 않았지만 학교랑 가까운 만큼 좋은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고재일 씨는 가게 이름을 결정할 때 ‘주유소’와 ‘도서관’을 두고 고민했다. 그는 술집에서 부모님께 연락이 오면 학교에서 공부한다며 거짓말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주점 이름이 도서관이면 누구든 전화 올 때 당당히 도서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재밌지만 가게 특성상 지금의 ‘주유소(술이 있는 곳)’로 결정하게 됐죠.”
하지만 ‘주유소’란 상호도 만만치 않은 재미를 줬다. 어느 날 한 단골 남학생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찾았다. 그 남학생이 현금이 없어 어머니 카드로 주유소에서 점심값을 결제한 것이 문제였다. 그의 어머니는 평소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아들을 걱정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온 ‘주유소’ 결제내용을 보고 그는 아들이 또 오토바이를 탄다고 오해했다. “그 남학생과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같이 웃어넘겼어요.”

  20여 년 세월 동안 즐거운 일만 가득하진 않았다. IMF 외환 위기였던 1998년 1월에 지금의 주유소 1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가게 내부 절반가량이 피해를 봤고 고 씨는 폐업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화재를 계기로 주유소가 그의 인생에 소중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됐다. “오랜 기간 장사가 힘드니까 하루하루 무기력해지면서 가게가 골칫거리로 여겨졌죠. 막상 화재로 영업장이 없어지니까 새삼 주유소의 존재가 제 삶의 전부였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 고 씨는 주유소를 찾는 고대생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전보다 가게 경영에 더 신경 썼다. 유행에 민감한 대학생 손님을 위해 마케팅, 홍보, 인테리어에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수제 맥주가 조금씩 관심을 받자 주저 없이 손님들에게 선보였고, 대학생 손님에게 SNS를 배워가며 가게 홍보를 했다.

  고재일 씨의 꿈은 주유소가 오랫동안 안암동을 지키며 고대생에게 대학 추억의 한 부분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마음 편히 술과 음식을 즐기며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다. “학생 때 주유소를 자주 찾던 고려대 출신 교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찾아왔는데 그때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훗날 고려대 출신 부모와 재학 중인 자녀가 함께 이곳을 찾아 가족 간의 추억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글 | 김태우 기자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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