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은데 후배들이 좀 불편해하더라고. 애들은 형 사정을 모르니까…….”
GTA는 말끝을 흐리면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자기가 잘 말해볼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인심 좋은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친절과 미소로 예쁘게 포장된 그 말은 곧, 제발 신경 좀 쓰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GTA를 만족하게 하고 이 껄끄러운 대화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팔 하나 정도 되는 길이의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시 침묵에 빠진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 컵라면 뚜껑의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찍어 누르면서 적당한 대답을 몇 가지 떠올린다.
 
1. 그래, 내가 나가면 될 거 아냐. 처음부터 들어오란 얘길 하지를 말던가. 더럽고 치사해서 나간다.
2. 고마워. 너밖에 없다. 정말, 정말로.
3. 이래저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내가 진짜 오늘은 방 구해서 빨리 나갈게.
 
1번은 한눈에 봐도 정답이 아니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GTA와의 사이가 틀어지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유일한 안식처인 동아리 방에서 제 발로 걸어나가야만 한다. 더군다나 GTA와는 같은 경영학과이기 때문에 학과에서도 안 좋게 소문이 날 수 있다. 1은 최악의 답변이다. 얼핏 보기에 2번이 정답 같지만 2번도 오답이다. 형으로서 너무 비굴해 보이는 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눈치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답은 3번. 말할 때는 너무 활기차 보여서도 안 되고 너무 시무룩해 보여도 안 된다. 적당히 미안함을 내비치면서도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미션 성공.
“이래저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내가 진짜 오늘은 방 구해서 빨리 나갈게. 일 해결되면 조만간 술 한잔 하자.”
나의 완벽한 대답에 GTA는 만족스러웠는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먼저 가볼게. 형, 라면 같은 거 말고 밥 시켜 먹어.”
GTA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동아리 방을 나간다. 그는 항상 좋은 사람이다.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깔끔한 옷차림과 분위기 있는 중저음 목소리로 학과에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다. 사진 동아리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말이라면 무슨 안건이라도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그런 까닭에 GTA에게 밉보이면 학과 생활이든 동아리 생활이든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아마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나처럼 GTA의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 꽤 하고 있을 터다. GTA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에 맞서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
 
어쩌면 속으로 GTA를 비꼬고 있는 내가 가장 나쁜 놈인지도 모른다. 사실 GTA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자취방에 문제가 생겨 오갈 데 없어진 나를 동아리 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준 사람도 그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도 찜질방과 24시간 카페를 전전하거나 도서관에서 밤새고 있었을 거다. 그걸 알면서도 은근히 나를 비난하는 GTA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단전에서부터 부아가 치민다. 이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면 다소 허무맹랑한 생각마저 들곤 한다. GTA가 나를 동아리 방에 지내게 한 것이 애초에 그의 착한 이미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는 생각이다. 내가 여기서 지내게 되자 동아리 후배들이 GTA는 마음씨도 착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나는 눈치 없는 더부살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 모든 게 억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GTA의 세계에서 나는 망상을 하는 찌질이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컵라면 뚜껑을 열자 물을 부은 지 10분은 지나 탱탱 불은 면들이 서로 엉켜있다. 입맛 뚝 떨어지는 비주얼이다. 나 같은 게 지금 가려 먹을 계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국물을 한 모금 삼킨다. 괜히 건강 생각한다고 물을 적정선보다 많이 넣었더니 싱겁다. 어차피 라면 먹으면서 건강은 무슨. 왠지 혼자 먹어서 더 쓸쓸하고 맛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방송 앱을 켠다. 핸드폰 화면 속에서 BJ 김부장은 콩나물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다. 김부장이 밥 먹는 소리가 들리자 적막했던 동아리 방이 한층 활기 있게 느껴진다. 맞은편 복도 끝에 있는 록밴드 동아리에서 베이스 연주하는 소리도 이따금 웅웅 울린다. 이제 좀 사람 사는 것 같다.
 
김부장은 꽈리고추를 넣고 볶은 멸치를 흰 쌀밥 위에 얹어 먹는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먹기만 한다. 다시 콩나물국 한 숟가락, 김치 한 젓가락, 밥 한 숟가락을 입안으로 쑤셔 넣는다.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또 콩나물국을 한 숟가락 먹는다. 그러다가 아예 콩나물국에 밥을 말고 그 위에 김치를 얹어 먹는다. 나도 라면에 김치를 얹어 먹고 싶지만 여긴 김치가 없다. 영상 속 김부장이 먹는 김치로 대리만족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동아리 방에서 숙식한 지도 벌써 2주가 다 돼간다. 정확히는 오늘로 열흘째다. 요즘 밥 먹을 때마다 동아리 방에 냄새 밴다며 후배들이 눈치를 준다. 라면 먹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김치까지 가져다놓고 먹으면 “동방이 자기 집인 줄 알아”라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라면만 먹는 것과 김치까지 먹는 것, 그 둘은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들이 베푸는 호의에는 마치 컵라면 물처럼 적정선이 있다. 호의를 받는 사람이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은 불쾌해한다. 나는 매일 컵라면에 물을 적당히 붓는 연습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오늘은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선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내일은 잘하면 되지.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환상을 품으면서 다 먹은 컵라면을 정리한다. 테이블에 튄 국물을 닦고 에어컨 환기 기능을 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니까.
 
김부장은 여전히 식사하고 있다. 예전부터 그는 식사 속도가 느렸다. 아니, 모든 게 느렸다. 말도 느렸고, 걸음도 느으렸고, 승진도 느으으렸다. 반면 박여사는 밥도 빨리 먹었고, 말도 무척 빨랐고, 걸음도 빨랐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두 사람은 갈라섰다. 이혼 사유는 속도 차이였다. 그러고보면 나도 김부장을 많이 닮았다. 걸음마가 늦었던 건 물론이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수학 계산이 느려 항상 보충 수업을 들어야 했다. 결국 수학이 발목을 잡아서 대학 입학도 남들보다 1년이나 늦었다. 이 무렵에 박여사는 나에게 완전히 질려버린 듯 보였다. 박여사는 “누구 닮아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만 보면 그렇게 말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혼자 한참을 거울만 봤다. 내 얼굴은 아무리 봐도 박여사와 닮아있었다. 쌍꺼풀 없이 찢어진 눈도, 볼품없이 꺼진 볼과 이마도 모두 판박이였다.
 
때마침 내가 집에서 먼 대학에 합격하면서 자취를 하게 되자 박여사는 이때다 싶었는지 나에게도 결별을 선언했다. 그렇게 나는 제 발로 걸어나가는 듯 쫓겨나며 혼자 살게 되었다. 처음 이사 가던 날 박여사는 새로 만난다는 사내와 함께 나타났다. 그 사내는 96년식 구형 아반떼를 몰고 와 내 이삿짐을 날라줬다. 이삿짐이라곤 옷가지 몇 개를 챙겨 넣은 캐리어 두 개가 전부였다. 마지막에 박여사는 사내의 차에 타면서 보란 듯이 소리쳤다.
“오빠, 달려!”
그 네 글자는 박여사의 많은 감정을 함축한 말 같았다. 김부장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되는 환희, 이제야 제대로 된 속도를 느낄 수 있게 된 짜릿함 등이 그것이었다. 아반떼는 마른기침 같은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혼자서 이 방, 저 방, 군대, 이 고시원, 저 고시원을 전전했다. 그리고 이렇게 곰팡이에게 자취방을 빼앗긴 불쌍한 떠돌이가 되었다. 곰팡이에게 방을 빼앗겼다니, 남들이 들으면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내 자취방에 와본 사람이라면 내가 왜 자취방을 놔두고 떠돌이로 사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정할 수도 있다.
 
전에 살던 고시원 건물이 갑작스레 수리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자취방이 필요했다. 한겨울에 당장 오갈 데 없이 되자 아무 곳이나 빨리 계약해야 했다. 학교 후문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자취방은 화장실도 깔끔하고 벽지도 새로 발랐는지 깨끗했다. 한창 성수기인 2월 말에 아무리 반지하라지만 이렇게 좋은 방이 남아 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의심을 3초 만에 거둬버렸다. 취업 준비로 지쳐있어 자기소개서 외의 다른 것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보증금 500에 월세 35라는 환상적인 숫자는 마치 매혹적인 처녀 귀신과 같아서 내 혼을 쏙 빼놓았다.
 
그러다가 8월에 늦은 장마가 시작되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곰팡이들이 비닐 장판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살짝 벌어진 장판을 들추면 퀴퀴한 곰팡내가 풍겼다.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던 벽지는 곰팡이로 검게 물들었다. 에어컨을 틀어도 소용없었다. 에어컨마저 곰팡이들이 점령한 후였으니까. 다이소에서 물 먹는 하마와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를 샀다. 물 먹는 하마는 옷장과 화장실에 두고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는 장판 안쪽과 벽지에 뿌렸다. 화장실 타일 줄눈에 자리 잡은 곰팡이는 치약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그야말로 곰팡이와의 전쟁이었다. 장마가 끝나면 곰팡이가 항복할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방에 있을 땐 끊임 없이 재채기하고 콧물을 흘렸다. 그 탓에 항상 코끝이 헐어있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몸 여기저기가 간지러워 박박 긁으며 자는 날이 많아졌다. 꿈속에서조차 곰팡이와 전쟁을 치렀다. 잘 꿰어진 구슬처럼 곰팡이 포자들은 손에 손을 잡고 날 에워싸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나는 마치 제단에 올려진 제물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곰팡이 포자들의 춤사위가 격해질수록 내 손끝과 발끝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곰팡이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 일어난 아침이면 베갯잇이 흠뻑 적도록 땀을 흘렸다. 땀을 흘린 자리마다 곰팡이는 무섭게 습기의 냄새를 맡고 자리를 틀었다. 이쯤 되니 곰팡이는 사실 내 안에 살고 있다가 땀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가끔 곰팡이가 나인지 내가 곰팡이인지 한참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러다가 정말 곰팡이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처음 이사할 때부터 썼던 낡은 남색 캐리어 두 개에 되도록 멀쩡한 옷가지와 물건들을 넣고 무작정 자취방을 나왔다. 집주인은 1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보증금을 빼줄 수가 없다며 으름장을 놨다. 보증금 없이는 다른 방을 구할 수 없는 처지를 알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했다. 그 건물이 오래돼 원래부터 곰팡이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나중에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됐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벽지를 새로 발라 나 같은 호구를 낚으려고 했음이 틀림없다. 집주인과의 협상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24시 카페와 맥도날드,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때 나타난 구세주가 GTA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동아리 후배 무리가 들어온다. 나는 재빨리 인터넷 방송 앱을 끈다. 묵묵히 밥을 먹는 김부장의 모습이 터치 한 번에 사라진다. 혼자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라면을 먹는 막 학기 선배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작아 보일까. 실제로 후배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머릿속 망상은 끝이 없다. 몇몇 후배들이 동아리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짜증을 낸다. 열 명 남짓의 후배들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둥그렇게 모여 앉는다. 그들이 더 넓게 앉을 수 있게 나는 구석으로 캐리어를 옮긴다.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과 의자도 한쪽으로 치운다. 덕분에 나도 한 쪽으로 치워진다. 후배들은 까만 비닐 봉투에서 과자와 술을 꺼낸다. 후배들 사이에 후레시가 있다. 후레시는 동아리에서 술을 마실 때면 참이슬 후레시만 마셔서 붙여진 별명이다. 후레시는 오늘도 소주병을 들고 광고 속 여배우처럼 흔들어서 회오리를 만든다.
“선배, 선배도 같이 마실래요? 이따가 다른 선배들도 올 거예요.”
후레시가 일회용 컵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말한다. 그녀의 그 한 마디에 후배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아, 아, 아, 아니야. 나는 바보같이 말을 더듬는다. 예전부터 후레시가 말을 걸어오면 왠지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 없고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후레시의 눈동자는 아주 까맣고 깊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꼭 카메라 렌즈를 마주한 느낌이다. 카메라 앞에 서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이 굳어져 어색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처럼 그녀 앞에 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나와 달리 후레시는 내 앞에서 더 밝아지고 활발해져서 나는 다시금 위축된다. 사진사 아저씨가 활짝 웃으라고 요구할 때마다 얼굴 근육은 더욱 굳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GTA가 들어온다. 후레시가 온다고 했던 선배가 바로 GTA였나 보다. 후레시는 GTA를 좋아한다. 일전에 셋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GTA와 내가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후레시의 눈을 마주 보고는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그녀의 수저를 내 옆자리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후레시는 내 옆과 GTA의 옆 중 어디에 앉을지 잠시 망설이더니 굳이 GTA의 옆에 앉았다. 심지어 내가 앉은 쪽이 소파로 된 자리였는데도 말이다. 밥을 먹는 내내 후레시는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날도 후레시는 참이슬 후레시를 주문했는데 더 많이 마신 쪽은 나였다. 취기가 돌자 약간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았으나 후레시의 카메라 렌즈 같은 까만 눈동자만은 선명했다.
 
“어? 형 아직 있었네.”
GTA는 구석에 있던 나를 발견하고선 약간 놀란 기색을 보인다. 약 삼사십 분 전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나는 분명 오늘 방을 구해서 조만간 나가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GTA는 오늘 나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나 보다. 그렇다면 1, 2, 3번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 이번 게임에서도 나는 지고 말았다. ‘아직’ 동아리 방에 남아있었냐는 저 말은 곧 “아직 안 나가고 뭐 했냐”는 핀잔일테다. 나는 다시 선택해야만 한다.
 
1. 어, 이제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어.
2. 내일까지만 여기 있다가 갈게.
 
내 마음은 무엇보다 간절하게 2번으로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2번처럼 말한다면 후배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곰팡이보다 못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후배들은 내 자취방에 와본 적이 없으니 곰팡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른다. 후레시는 어떻게 생각할까. 남자답지 못한 놈이라고 생각하겠지. GTA도 내가 약속도 안 지키는 비겁한 놈이라고 비난할 거다. 그러므로 이번 퀘스트의 정답은 1번이다. 비굴해 보이지 않으면서 아주 약간 쿨해 보이기도 한다. 무심하게 말하며 캐리어를 끌고 나간다면 더욱 쿨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12년의 공교육과 2년의 군 생활, 4년의 대학생활에서 내가 배운 건 그 반대다. 예전에 박여사는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면서 이런 명언을 날렸다.
“그게 사회생활이야.”
이 한 마디는 모든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의 말이다. 내가 겪어야만 하는 일련의 비극 아닌 비극, 예를 들면 곰팡이 집에서 산다든가, 그 집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해 나오지 못하고 있다든가, 한 살 어린 동생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은 박여사의 명언으로 단번에 설명된다. 나는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동아리 방을 나온다. 등 뒤로 후배들이 술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후레시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동아리 방이 있는 학생관을 나와 학교 후문 방향으로 언덕길을 내려간다. 학생관 앞 잔디밭에는 몇몇 학생들이 무리 지어 앉아 캔맥주를 마신다. 초가을의 선선한 저녁 바람이 그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여학생들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린다. 혼자서 캐리어 두 개를 끌고 가는 나를 잔디밭 학생들은 한 번씩 힐끔 쳐다본다.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선택지라고 해봤자 24시 카페나 맥도날드 아니면 찜질방, 그것도 아니라면 자취방뿐이다. 4개의 선택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아무것도 없다.
 
걷다 보니 어느새 자취방이 있는 골목이다. 학교에서 진짜 가깝긴 하네. 문득 자취방으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는 틈을 타서 곰팡이가 온 방 안을 점령했을까. 곰팡이의 신에게 바칠 재물인 내가 없으니 그 기세가 한풀 꺾였을 수도 있다. 정성스레 준비했던 재물이 사라져 갈팡질팡하고 있을 곰팡이를 생각하니 왠지 짠한 마음이 든다. 내 코가 석 자인데 곰팡이 따위를 걱정하다니. 아무래도 그 몇 달 사이에 곰팡이에게 홀렸나 보다. 나는 무엇이든지 너무 쉽게 홀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영화과에 가야 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영화는 사람을 홀리는 작업이니까.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나는 다른 사람을 홀리는 능력은 없어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영 안 맞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배우는 것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애초에 나한테 맞는 전공이나 직업 같은 게 없는 건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반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택배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배달하면서 많이 던져졌는지 모서리가 찌그러졌다. 보낸 사람은 박여사다. 뜯어 보니 건강보조식품이다. 맛없다고 보내지 말라고 했더니 초콜릿 맛과 딸기 맛으로 보냈다. 하여튼 박여사도 못 말린다. 김부장과 이혼 후 그녀는 건강보조식품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주로 아파트 부녀회에서 판로를 개척했다. 부녀회 아줌마들이 그때부터 그녀를 박여사라고 불렀다. 나는 엉거주춤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습하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 에에취. 재채기가 나온다. 벽을 더듬어 형광등 스위치를 누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형광등이 몇 번 점멸하다가 겨우 불이 들어온다. 습기가 많은 화장실 쪽 벽지는 아래서부터 위로 곰팡이로 그러데이션이 되어 있다. 환기할 겸 창문을 열자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인다. 침대에 걸터앉으니 먼지가 일어나며 곰팡내가 훅 끼친다. 에에취. 또 재채기가 난다. 아무래도 오늘도 여기서 자는 건 무리인 것 같다.

캐리어에서 노트북을 꺼내 학교 근처 원룸이나 고시원을 검색해본다. 이미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나 지난 마당에 괜찮은 방이 있을 리 없다. 요즘 유행하는 방 찾기 앱을 이용해도 똑같다. 사진만 그럴듯하지 실제로 가서 보면 가관이다. 등록한 정보와 달리 학교에서 너무 멀다거나 창문이 없는 고시원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화장실이 너무 좁아 변기에 앉으면 맞은 편에 놓인 세면대에 무릎이 닿는 곳도 있다. 이런 사정을 박여사나 김부장에게 말해볼까 고민한 적도 많다. 어쨌든 그들은 부모니까 도와달라 하면 도와줄 거다. 그런데 박여사는 이미 내가 집을 나올 때부터 그 오빠라는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그 집에 들어가기에는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박여사가 전화해서는 대뜸 그 남자의 아들은 나랑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취업해서 첫 월급으로 선물을 사왔노라고 말했다. 한 번도 그 녀석을 본 적 없지만 왠지 모를 경쟁심과 열등감을 느낀다. 내가 가진 건 무의미한 자존심밖에 없으니까. 한심하다고, 우습다고 해도 상관없다. 가장 밑바닥의 나, 그게 부인할 수 없는 진짜 내 모습이다. 그렇다고 김부장에게 말하자니, 그도 나와 별다를 바 없는 방에서 사는 걸 알기에 선뜻 연락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김부장과는 연락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전화나 문자조차도 하지 않았다.
 
생각난 김에 김부장의 인터넷 방송을 튼다. 김부장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한다. 카드를 꺼내느라 카메라를 제대로 잡을 수 없는지 화면이 흔들린다. 김부장의 어깨 너머로 밥을 먹고 있는 4인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수육과 국밥을 먹고 있다. 사이 좋게 나눠 먹는 그들의 모습을 부장이 뒤돌아서 본다. 그의 뒤통수가 흰머리로 얼룩져 있다. 계산이 끝나자 김부장은 4인 가족에 게서 시선을 돌려 식당 문을 나선다. 초가을의 저녁 하늘은 벌써 어둡다. 익숙한 풍경이다. 그는 늘 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옆 오피스텔로 들어간다. 김부장의 방송을 처음 발견했던 8월부터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의 작은 오피스텔은 내 자취방과 닮았다. 책상, 옷장, 책꽂이, 침대, 소형 냉장고, 에어컨이 가구의 전부다. 집에서는 아예 요리 자체를 하지 않는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퐁퐁조차 보이지 않는다. 김부장은 넥타이를 풀어 옷장 손잡이에 걸어두고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 옆에 놓인 3단짜리 낮은 책꽂이 맨 위 칸에는 두꺼운 경제학 서적 몇 권과 색이 바랜 A4 뭉텅이가 꽂혀 있다. 그 아래 칸에는 상패 5개가 나란히 줄지어 놓여 있다. 김부장은 제일 왼쪽에 있는 상패를 꺼내 든다. 옥으로 된 상패에 ‘감사패’라고 적혀 있다. 그는 마른걸레로 감사패를 닦기 시작한다. 매일 저녁을 국밥집에서 먹는 것처럼 상패를 닦는 것도 늘 빼먹지 않고 해온 일이다. 그는 역시나 아주 꼼꼼하고 느리게 상패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낸다. 매일 닦는데도 왜 그렇게 먼지가 쌓이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먼지의 다른 말은 삶일지도 모른다. 매일 꾸준히 내리고 또 내리고. 처음 내려앉은 단 한 개의 먼지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뽀얗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하얀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마저도, 먼지는 삶과 닮았다.김부장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행동을 해도 채팅방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도 한두 명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보는 사람은 나뿐이고 이따금 한두 명이 들어왔다가 금방 나간다.
 
- 아저씨 자식도 이 방송 안 보겠네
- 이딴 걸 왜 해 씨1발 재미가 있어야지
ajswl1127 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유저 ajswl1127은 김부장과 나, 두 사람을 동시에 모욕하고 사라진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나조차도 김부장이 이 방송을 왜 하는지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김부장은 재미를 위해서 방송을 하는 것같다. 재미는 현대인의 필수 소양이다.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오직 그것만으로 돈을 벌기도한다. BJ는 이에 딱 적합한 직업이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거는 BJ도 있다. 그야말로 재미 경쟁 시대다. 그런 점에서 김부장은 젊은 나보다도 한발 앞서 재미 경쟁에 뛰어든 거다. 다만 김부장의 재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별 한 개도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그러나 김부장은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저들의 욕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는다. 매일 저녁 혼자 국밥을 먹고 집으로 가서 상패를 닦는 2시간 동안의 방송 포맷은 1회부터 40여 회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래도 김부장에게는 재미에 대한 자기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재미 때문이 아니라면 그는 이 방송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무엇, 이를테면 못 이룬 꿈이나 자아실현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닐까.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 그 답은 환갑이 되어야 알겠지. 상상만으로 미래의 나를 알 수 있다면 아마 오늘을 사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다. 그래도 굳이 지금의 김부장의 나이와 엇비슷해져 있을 미래의 나를 상상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확신하는 한 가지는 김부장처럼 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몇 년째 부장만 하면서 성실히 일했는데도 그 보상으로는 고작 장기근속 감사패 따위를 받는 인생 말이다. 그런 삶은 너무 소박하고 성실해서 흉내 낼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꿈이라는 게 이룰 수 없는 거라면, 나는 김부장의 소박하고 성실한 삶을 꿈꾼다.
 
언젠가, 나도 거창한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김부장과 박여사 그리고 내가 함께 살았던, 그나마 화목했던 시절이었다. 김부장은 어느 날 문득 내게 일회용 필름카메라 한 대를 사줬다. 손바닥 크기의 작고 가벼운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동네방네 돌아다녔다. 가장 많이 찍은 피사체는 김부장이었다. 김 부장은 내가 사진 찍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또 내가 찍은 다른 사진들도 좋아했다. 사진 찍는 법을 몰라 수평도 맞지 않은 사진들과 역광으로 온통 시뻘겋게 나온 사진들도 모두 김부장은 인화해 줬다. 사진관 아저씨는 왜 이런 사진을 인화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김부장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사진을 찍는 일은 나만의 재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역광으로 찍혀 시뻘겋게 나온 사진을 나는 더 좋아했다. 그건 마치 흰 옷에 튄 김칫국물 같았고, 예쁜 꽃무늬 벽지에 피어버린 곰팡이 같았다. 의도하지 않은 얼룩은 왠지 모를 힘이 있어서, 그렇게 나를 끌어당기곤 했다. 나는 사진을 마음대로 인화할 수 있는 사진관 아저씨가 되고 싶었다.
“그거 돈 한 푼도 안 돼.”
박여사가 내 꿈을 듣고선 말했다. 김부장은 자식 기를 죽인다며 박여사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꿈은 유리구슬 같은 거야. 소중히 하지 않으면 쉽게 깨져버려.”
나는 김부장을 향해 셔터를 터트렸다. 그 순간을 인화해 유리구슬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혼과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유리구슬은 깨져버리고 말았다. 김부장은 유리구슬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김부장은 오른쪽 끝에 놓인 마지막 장기근속 감사패를 든다. 이것만 닦으면 오늘 방송은 모두 끝난다. 그의 하루를 추측해보건대 특별히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매번 아무 말도 없이 방송을 끝내는 게 답답하지 않을까. 방송이라는 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인데 김부장은 시각적인 것 외에 어떤 소통도 시도하지 않는다. 혹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다. 김부장과 살아온 세월이 짧아서 그런지 나는 김부장을 이해하는 게 어렵다. 더 오랜 기간을 같이 살았던 박여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게 우연히 발견한 그의 방송을 계속 보는 까닭일 수도 있다. 김부장이 왜 방송을 하는지는 난 모르듯이, 왜 내가 이걸 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세상에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일도 많은 거야.”
박여사는 왜 김부장과 이혼하냐는 나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김부장은 내게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김부장이 박여사와 헤어지면서 나에게 벌어진 일들도 설명되지 않는 게 많다.
왜 내 자취방에 곰팡이가 그토록 잔뜩 피어야 했는지, 아니 왜 하필이면 그 방에 입주한 사람이 나여야 했는지! 설명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설명된다면 그 모든일이 재미없어질지도 모른다. 마술사의 트릭이 공개되면 아무도 마술을 신기해하지 않는 것처럼.
 
김부장이 닦는 마지막 감사패는 크리스털로 되어있다. 그는 지문이 남지 않도록 왼손으로 부드러운 천을 이용해 감사패를 감싸 쥐고 오른손으로 또 다른 천을 이용해 조심스레 닦는다. 감사패의 굴곡진 곳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천을 움켜쥔 그의 손등에는 검버섯이 마치 곰팡이처럼 피어있다. 아니 어쩌면 검버섯이 아니라 진짜 곰팡이가 아닐까. 곰팡이 인간이었던 김부장과 평범한 인간 박여사는 결혼을 했고 반인반곰팡이의 나를 낳았다. 뒤늦게 박여사는 김부장이 곰팡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와 이혼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곰팡이 인간임을 몰랐지만 적당한 습도와 반지하라는 조건이 충족되자 그 속성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래, 정말로 나는 곰팡이였던 거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푸른곰팡이였으면 좋겠다. 그중에 몇 개는 페니실린으로 쓰여 적어도 쓸모 있다고 여겨지는 곰팡이니까. 김부장이 푸른곰팡이라면 나 역시도?
 
- 당신은 푸른곰팡이입니까?
- 당신은 푸른곰팡이입니까?
- 당신은 푸른곰팡이입니까?
- 당신은 푸른곰팡이입니까?
 
나는 채팅창에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올린다. 그의 방송을 보면서 처음으로 채팅창을 통해 그와의소통을 시도한다. 그러나 김부장은 말이 없다. 그는 마지막 감사패를 다 닦았는지 다시 원래 자리에올려두고 방송을 종료한다. 곰팡이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안다. 그렇지만 그저 확인받고 싶은 것일 뿐이다. 나도 쓸모 있을 가능성을.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창밖으로 한 무리의 대학생이 지나간다. 술에 취해 목소리가 커진 그들은쉴새 없이 웃는다. GTA의 목소리와 후레시의 웃음소리 같기도 하다. 나는 형광등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웃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는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곰팡내가 더 짙게 느껴진다. 코끝이 간질거리는 게 꼭 봄날 꽃가루가 날리는 것 같다. 에에취. 재채기하면서 튀어나온 침이 사방으로 튄다. 내일이면 저 자리마다 곰팡이가 피어날까. 후레시의 눈처럼 아주 까만 곰팡이가 피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검은곰팡이로 태어났다면 그중에서도 가장 까맣고 짙은 진짜 ‘검은’ 곰팡이가 되고 싶다. 어둠 속을 손을 뻗어 본다. 어두워서 손가락의 실루엣만 보여서 그런지 곰팡이로 검게 물들어 있는 느낌이다. 곰팡이 포자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곰팡이의 노래에는 끝이 없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거다. 그들의 번식력과 생존력은 노래에서 나온다.
곰팡이 꽃이 피었습니다.
곰팡이 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노래에 맞춰 밤새 곰팡이 포자들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