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선거를 ‘둘 중 덜 나쁜 악마(the lesser of two evils)’를 뽑는 것이라 평했지만,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이기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그 파급력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를 잘 구현하고 있다고 자평하는 미국에서, 그들의 수장을 뽑는 선거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민의를 잘 반영하는 것일까.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의 저자이자 미국 정치 전문가인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안병진(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와 미국 대선의 흐름과 제도적 결함을 짚어봤다.


- 저서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서 이번 미 대선을 단순히 공화당 대 민주당, 트럼프 대 힐러리 구도로 보는 것이 아닌, 주류의 교체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근대 이후, 미국의 주류는 백인 기독교 문명 세력들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인구구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문화와 인종, 특히 히스패닉계가 늘어나고 선거에서 백인 유권자의 분포가 70% 이하로 떨어졌다. 또한 과거 석유경제 중심이었던 미국은 매개경제 중심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석유 같은 풍부한 자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이나 페이스북, 에어비엔비처럼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주는 매개 산업이 급성장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미국의 주류 구성원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

과거의 주류 계층이었던 석유 사업 종사자나 백인 중산층들은 보수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다른 인종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게 됐다. 공화당 내 강경보수주의자들은 히스패닉 등 상승하는 세력을 경계하며, 이들을 상승, 방조, 촉진하는 리버럴(Liberal)을 문명의 적으로 규정했다. 한편, 민주당은 몇 십 년에 걸쳐 세계화(Globalization)를 주도했는데, 특히 빌 클린턴 시대에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를 이끌었다. 그래서 미국 저소득층 백인들 사이에선 민주당이 중산층과 월스트리트만 대변하는 정당으로 비쳤다. 이러한 양당의 정치적 양극화와 대립은 문명적 적대감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절망감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백인 저소득층은 트럼프에 투표함으로써 현재 체제에 대한 종이돌(Paper Stone, 투표용지를 비유하는 말)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 시스템의 결함은 무엇인가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승자독식,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즉,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제3당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단순다수제로 당선된 대통령이나 상하원 의원은 다른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의 민의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샌더스 같이 신선한 공약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됐다. 이것이 미국 선거제도의 가장 큰 결함이다. 현재의 제도로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다.

선거인단 제도도 문제가 있다.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경합주)의 여론이 과대대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거인단 제도가 가진 실질적인 한계로, 특정 정당을 확실하게 지지하는 주의 민의는 선거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과 캘리포니아 주는 100% 민주당을 찍는데, 갈 길 바쁜 힐러리의 입장에선 자신을 무조건 찍는 지역에서 유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반대로 노스캐롤라이나 등의 경합주는 민주당, 공화당 양쪽에서 구애를 받고 그들이 요구하는 바가 공약으로 내걸린다. 이 같은 현상은 선거 본연의 의미를 위배하는 것이다.

- 확고한 양당체제를 뒤엎고 미국 대통령 선거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나
“19세기까진 미국에서도 확고한 양당체제가 정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단순다수제가 정착되고 결선투표가 배제됨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성을 갖게 됐고, 금권 선거로 인한 자본력의 차이가 나타났다. 또한 공화당, 민주당 같은 독점 정당이 제3당 이슈를 선점하거나 포섭하면서 양당제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최근 양당에 대한 극심한 불만이 쌓이면서 미국 시민들의 제3당에 대한 요구는 커져가는 추세다. 이번 선거에선 공화당의 트럼프, 민주당의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트럼프와 샌더스는 단순히 기존 정당을 장악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다음 대선은 얼마든지 공화당과 민주당을 넘어선 제3당이 나타나 기존 양당 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 또한 이로 인해 선거구제 개혁에도 새로운 동력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국가적으로 큰 위기가 오지 않는 한 현재의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2000년 미 대선에서 나타난 플로리다 투표용지 논란 당시에도 선거제도 개정 논란이 거셌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 미국 건국의 시조들이 헌법 수정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놨고, 기존 양당의 구심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이 체제가 변하긴 힘들 것이다.”

-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제도적 결함들이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와 민주주의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미국식 대통령제를 원형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도 정치적 양극화와 정당 간의 교착상태를 야기하는 제도적 결함을 인식하고, 그 극복 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개헌을 통해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연방제적 체제를 통해 분권화된 정치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 간 교착 상태 극복을 위해 의회 해산 등으로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결선투표제도 민의를 더 잘 반영하는 방법이다. 결선투표제는 선거에서 1위 후보가 충분한 수의 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한 두 후보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 제도다. 제3당이 1차 투표에서 다수표를 얻지 못하더라도 2차 결선투표에선 제3당을 찍은 사람들의 표가 다른 거대 정당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에 제3당의 의견도 그 가치가 높아진다.

물론, 제도가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제도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제도를 바꾸기 전이라도 극심한 정치, 경제의 양극화를 극복할 대담한 비전과 행동력을 가진 정치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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