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박근혜정부가 국가기조로 내세워 전 방위적으로 추진했던 ‘문화융성’ 및 ‘창조경제’의 낯뜨거운 실체에서 드러난 비선실세의 각종 비리로 얼룩진 부조리이다. 특히 세월호 세대로 일컬어지는 청년들의 배신감과 무력감은 급기야 지난 날 군사정권의 독재를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6월 항쟁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표출되었으며, 이 정부를 하야 내지 탄핵 정국으로 끌어 내리고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말도 안 되는 사태를 목격하며 우리 예술인들이 더욱 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과 국민들의 문화예술향수를 위해 존재해야 할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권력을 남용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의 사망을 계기로 ‘예술인 복지’가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술인복지법이 2013년 제정되면서 예술인들은 적재적소에 예술인을 위한 지원 정책이 수반될 것으로 기대지만, 정부는 ‘예술인 긴급복지 지원’을 늘려달라는 현장예술인들의 목소리를 ‘특혜’라며 애써 외면했다. 대신 예술인들의 예산을 삭감시켰고, 앞서 말한 국가적 기조와 관련된 인프라와 특정 계층을 위한 사업에만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우리 문화예술계가 이러한 전대미문의 엄청난 국가적 재앙과 더불어 가장 첨예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은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사태이다. 최근 국정감사 및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문체부를 통해 세월호 관련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예술인,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등을 좌파 세력으로 분류하여 각종 지원금 심사에 있어 배제시켜왔다. 더욱이 블랙리스트는 2014년 중반부터 2015년 초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단계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그 숫자도 9,000여명에 달했다. 상당히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예술계를 현 권력의 입맛에 길들이려는 속셈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특히 심사과정에 지원 기관이 개입해서 특정 예술인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종용하거나, 그 심사 대상에게 직접 찾아가 포기를 권고했다는 기사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야말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국가예술지원 철학이 “지원하지 않고 간섭한다.”로 둔갑한 것이다.

  소위 문화예술의 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 더욱이 이 정부에서 표방하고 있는 ‘문화융성’과 철저히 괴리되는 ‘문화쇠퇴’적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예술 검열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예술인들이 창작관련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대표적 기관이라 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70년대 초 문화예술진흥법 재정과 더불어 설립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모태로 하고 있는데, 2003년 위원회로의 전환에는 민간 예술인이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예술을 진흥시키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 즉,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에 있어 핵심은 기관장을 포함한 위원 인사를 독임제가 아닌 민간 주도의 호선제에 의한 자율성과 투명성이었다. 공정성 있는 심의절차를 통해 궁극적으로 적재적소에 기금이 쓰이는데 있어 우리 예술인이 그 주체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현재, 기관장을 비롯한 위원 구성은 위원회 설립 취지와 무관하게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회전문 인사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인사의 문제는 문화예술위원회를 관리 감독해야 할 상위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도 마찬가지다. 결국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의 근본원인은 예술지원기관이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인사제도과 연관된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이성적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고 부조리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예술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창작행위를 통해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의 주요 속성은 ‘비판’과 ‘풍자’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때로는 위정자의 실정을 신랄하게 조롱하여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는 것이다. 예술이 ‘비판’과 ‘풍자’를 하지 못하는 구조라면 그 사회는 병든 것이며, 지난날 서슬 퍼런 독재의 회귀적인 이분법적 이념에 갇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술가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단돈 몇 푼에 팔아넘기거나 침해받지 말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예술정신을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예술장르의 환경개선을 위해 관련단체와 연합하여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예술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창작행위에는 매우 적극적인 반면, 환경개선을 위한 정책이나 모임에는 무관심하거나 다소 무기력하게 대처해 왔다. 여기에는 물론 지원기관 등의 정책 또는 행정서비스를 비판하는 것이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눈 부릅뜨고 지원기관의 인사와 심사과정이 과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또한 내가 속한 예술장르의 창작 및 복지 등의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개발과 연합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 최근 공연예술계를 중심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단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가 우리 예술인들에게 남겨졌다. 아울러 일반 시민들에게도 예술은 사회의 공기와 같아서 아름답게 지켜야 할 대상이지, 검열의 대상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알리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신영(성결대학교 조교수, 서울연극협회 정책조정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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