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옥시와 배출가스 조작 사태를 일으킨 폭스바겐과 같은 비윤리적 기업이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배종석(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단순히 값을 비싸게 받거나 부품의 내구성을 줄이는 경우와는 달리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장사하거나 속이는 경우는 허용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배종석 교수는 학부생부터 고민해온 경영학의 내재적 가치를 탐구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이를 후배들이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본교 경영학과에서 ‘경영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 배종석(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에는 결국 좋은 경영자,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 경영학을 정의해 주십시오
 
“경영학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기업이 무엇이고, 기업이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동을 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경영학은 ‘기업의 이질성 가정(firm heterogeneity assumption)’을 기본전제로 한다. 기업마다 성과(performance)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가령 기업의 인사, 재무, 리더 등이 ‘다름’에서 성과차이가 비롯된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경영학은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물리학, 생물학같이 법칙에 지배받는 자연세계와 달리, 경영학의 대상이 되는 기업과 경영활동은 ‘존재론’적으로 규범의 지배를 받는 사회세계에 속하고, ‘인식론’적으로 사회세계에 어울리는 연구방법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가치론’적으로 기업과 사람의 본성에 기반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추구한다.

 

- 경영학에서 철학적 관점이 왜 중요합니까
 
“어떤 대기업 CEO가 이런 얘기를 했다. ‘경영대 졸업생은 4~5년만 일을 잘하고, 중간관리자가 되면 법대 졸업생이, 임원이 되면 문과대 졸업생이 잘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경영학은 남 밑에서 4~5년 일 잘할 사람을 키우는 전공이 된다. 경영대 교수로서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다. 대학교육은 ‘없어질 지식’, 즉 스킬이나 실용적인 것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변하지 않는 관점을 가지고 시시각각 바뀌는 환경과 비즈니스 모델에 적응할 역량을 가져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람의 본성에 기반을 둔 경영을 통해 기업의 존재이유가 잘 드러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인문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 철학적 접근으로, 경영학의 연구방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존재론적으로 기업은 사회세계에 속한 사회 종(種)이다. 자연세계와 달리 사회세계의 연구는 인과적 설명이나 기능적 설명이 쉽지 않다. 오히려 의도적 설명(intentional explanation)이 더 적합하다. 또한, 연구대상을 인식할 때 경험적 실재론(empirical realism)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험한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도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지만 존재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비판적 실재론’이 필요하다. 비판적 실재론이란 실재론적 존재론과 해석주의적 인식론을 결합한 철학적 입장을 말한다. 즉, 우리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 세계의 일부는 주관적 해석을 통해 구성되거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싹이 난 볍씨를 보지 못한 사람이 ‘볍씨는 생명력이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싹이 나지 않았으니 생명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비판적 실재론’적 관점에선 틀린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 관점을 위해선 경험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객체와 그 작동 기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경영학이 풍부하게 이론화될 수 있다. 실증주의에 입각한 계량적 방법만 고집하거나, 단순히 경영은 돈을 목적으로 하고 사람은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사람이 일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심리, 정치, 사회, 도덕 측면은 감춰질 것이다.”

 

- 기업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윤추구만이 기업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이윤은 사람으로 치면 피와 같다. ‘사람이 왜 먹고, 왜 사냐’고 질문하면 피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필요하지만 그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기업의 목적은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인류’는 고객만이 아니고 노조, 경영자, 주주 모두가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은 특정 그룹의 복리를 위해 다른 그룹의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없는 존재론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통계분석 패키지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다양한 비즈니스 솔루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미국 기업 SAS가 좋은 예다. SAS는 ‘혁신과 성과를 불러오는 검증된 해답을 전달한다’는 기업사명 아래 ‘공동체’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창립자 짐 굿나이트(Jim Goodnight)는 ‘내 자산(직원을 비유한 단어)의 95%는 매일 저녁 퇴근한다. 매일 아침 이들이 돌아오도록 작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는 경영이다. 그 결과 SAS는 이윤과 인류의 삶의 질 모두를 향상한, 즉, 바람직한 성과를 달성한 기업이 됐다. 이처럼 바람직한 성과는 ‘이윤과 ‘인류의 삶의 향상’이라는 두 차원이 통약불가능(incommensurability)의 특성을 보이게 되는데, 성과를 이루는 차원들이 서로 상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철학적 관점을 가진다면 기업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애플이 이전의 경험으로만 미래를 예측했다면 스마트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이라는 존재론적 상상력, 경영의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심미적 상상력, 경험하지 않은 실재를 볼 줄 아는 예감적 상상력 등이 있어야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 실증적이고 분절적인 ‘경험적 실재’에 한정된 인식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 할 때, 기업은 미래지향적 사고와 새로운 이론을 갖추게 될 것이다. 결국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하는 것’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연결되는 실존적 상상력이 중요한데, 이것은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 기업의 입장에서 윤리적 관점을 갖는 것이 왜 필수적입니까
 
기업에 윤리적 관점이 꼭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힘이 강해졌고 기업도 사회 종(種)으로서 전체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요즘은 SNS로 인해 공유와 확산이 쉬워져 묻혀있던 기업들의 비리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양극화에 대한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다.

  폭스바겐 사태와 삼성전자의 전량 회수 조치를 보면 이제 단순히 눈앞의 이익이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관점’을 갖고 책임지는 것이 이윤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칸트식의 의무론적 관점이 아니라, 이윤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결과주의적 관점을 가지더라도 ‘윤리적 가치’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윤리경영’이나 사회적 책임을 수단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업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기업은 최소한 비난받지 않을 행동을 해야 한다. 지금은 기업이 사회를 주도하는 ‘기업의 시대’다. 자연스레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커지게 됐다. 책임 있는 기업의 역할을 위해선 최소한의 ‘비난받지 않을 행동’이 필요하다. 나아가 더 적극적인 윤리적 몫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난받지 않는,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 회사 내에서 집단적인 전문적 윤리의식을 형성해야 한다.

 

- 한국 기업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가치기반 경영(value-based management)이 필요하다. 한국기업들의 경우 그동안 성장과 수익이 지고한 목표였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치도 원칙도 무시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곤 했다. 원칙이 있어도 최고경영자부터 지키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제 가치에 기반을 둔 ‘좋은 경영’이 필요하다. 예전엔 규칙과 규정이 많았다. 예를 들어 ‘입사 2년 차 직원이 MBA에 갈 수 있느냐, 휴가는 며칠간 갈 수 있느냐’와 같은 수많은 문제에 대해 규정집을 확인해 봐야 했다.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가치기반 경영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핵심가치 3~5개를 정해 놓고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고 유연하게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든다.

  가치기반의 경영을 위해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JusT ABC’로 불리는 5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Justice(정의), Trust(신뢰), Accountability(책임), Benevolence(배려), Creation(창조)이다. 출발점이 되는 가치는 창조다. 창조는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한다는 목표 아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낸다는 것과 관계된다. 그런데 이 창조는 책임 있는 창조가 되어야 한다. 자원을 아끼고 효율성을 추구하며 다음 세대에도 지속 가능하도록 책임을 지며 창조해야 한다. 두 번째는 배려와 정의다. 배려는 ‘관계의 누림’이고 정의는 ‘권리의 누림’이다. 개인과 자연, 기업이 함께 상생함을 의미한다. 장애인 채용과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게 두는 것도 배려와 정의의 예다. 세 번째는 신뢰인데, 이것은 위의 네 가지 가치를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가치를 세우기 위해선 기업을 철학적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기업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시각이 있어야 기업이 가치기반의 경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가치에 기반을 둔 ‘좋은 경영’은 ‘좋은 경영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기업이 필요한 것은 결국 좋은 경영자, 좋은 사람이다. 한국에서도 존경받는 기업가와 경영자가 배출되어야 한다.”

 

- 철학적 경영이 요구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위해 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학자들이 일차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대학의 경영학 교수는 대부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다. 미국은 논리 실증주의에 경도된 경향이 있다. 그래서 미국 주도의 경영학자 배출, 그리고 그 학자들이 한국 경영대학에 포진하고 있는 한 극복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경영학 연구에서 기업을 자연종(種)으로 파악하여 물리주의화 된 방법론을 극복하고, 기업과 사람의 본성에 부합하는 경영학의 본질적인 의미를 실제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통해 경영학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학문’이 될 수 있다. 경영학 이론과 학문적 성과들의 변화들로 인해 대학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또한 직접 미래 경영자의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소개

배종석 교수는 본교 경영학과 82학번으로 졸업 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거시 인적자원관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본교 경영대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부 때부터 가져왔던 경영철학에 대한 궁금증을 탐구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과 프린스턴 대학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 교수의 조언을 얻어 시작한 ‘경영철학’ 공부는 “경쟁적 패러다임과 인사조직연구: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중심으로”, “인적 ‘가치창출’과 ‘인간가치’ 창출: 경영의 철학적 기반”, “패러다임 변화의 현상과 해석” 등의 다수의 논문으로 나타나 있다. 배종석 교수는 현재 한국인사조직학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기독경영연구원 원장과 기획예산처 기금운용평가단 기금평가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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