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가 화합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우리 사회의 시위 문화는 시간이 흐르며 같이 변해왔다. 격렬하고 투쟁적이었던 시위는 2002년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평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촛불집회는 최근 다시 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권력과의 충돌을 시위대 스스로 나서 방지하고 혼자,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양한 문화 행사도 곁들여지며 시위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투쟁에서 평화로, 그리고 축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시위는 운동권 조직이 주도하는 투쟁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격렬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던 민주화 운동권에 대한 반감으로 기존 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은 그 힘을 잃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중산층, 일반 시민이 운동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돼 방식에 있어 전환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평화적인 시위가 등장한 것은 2002년 일명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다. 처음에는 어린 나이에 장갑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두 여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민은 촛불을 들고 모였다. 하지만 가해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자 시민들은 그대로 촛불을 든 채 거리로 나와 ‘반미, 자주’를 외쳤다.

  촛불시위는 현재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어느 집단에 구속되지 않고 혼자 시위에 참여하는 개인이 등장했고, 무거웠던 시위 분위기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변화했다. 시위에 혼자 참여하려는 개인들은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서 개인들만의 연대를 이루고 있다. ‘혼자온사람들’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이예슬(여‧27) 씨는 “‘뻘쭘하지 않게, 다 같이 뻘쭘함을 없애보자’는 취지로 이 페이지를 만들게 됐다”며 “시위에 혼자 온 사람들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어디에 서야할지 눈치 보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시위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 단위로 소풍 나오듯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난 8일 부산에서는 ‘소리 나는 모든 것’을 두드리며 행진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부산지역 시국집회 행진을 진행했던 이준호(남‧28) 씨는 “기존의 시위는 주변 사람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쳐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재미있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우리의 목소리를 당당히 외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시위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 촛불로, 문화제로 시위의 방식은 변했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변하지 않았다.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네트워크가 바꾼 시위 문화
  시위의 형식과 분위기가 바뀐 것은 촛불 시위의 한계, SNS를 중심으로 한 집단행동의 네트워크화 등의 원인이 있다. 촛불시위라는 평화적인 방법이 등장한 데는 운동권에 대한 반감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평화적인 촛불시위에도 한계는 존재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시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준호 씨는 “평화적인 촛불 문화제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촛불만 들고 있고 정해진 몇 명만 나와서 발언했지만 최근의 시위는 다양한 사람들이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며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한데, 그 과정 안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시위 주최 측의 힘이 약해진 이유로는 네트워크화 된 조직이 꼽힌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수동적으로 집단의 위계적인 요소와 프레임이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내는 등 능동적으로 시위를 구성하고 있다”며 변화의 원인을 진단했다. 이전 시위 지도부가 했던 역할을 여러 네트워크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도 “예전의 학생운동 집단이 없어지며 조직적인 큰 흐름이 없어진 것 같지만 사실 인터넷의 여러 커뮤니티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며 “‘비조직적, 비동원적’ 시위라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집단적 흐름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응집된 힘의 지속성은 약해
 
네트워크화 된 조직으로 시위에 참여한다면 응집된 힘과 목소리가 쉽게 와해된다는 점이 새로운 시위 문화의 과제로 남는다. 응집된 힘이 그 다음 사안까지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병훈 교수는 “네트워크형 운동은 1회적인 성격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한번 모인 사람들의 힘이 지속되지 않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한계”라고 말했다. 이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조직적 담론과 시위의 지도부가 모인 힘을 지속시킬 수 있다”며 “한 운동의 가치를 확산하고 조직하려는 노력을 부정하지만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중대한 사안을 이야기하는 시위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준호 씨는 “모든 시위가 웃고 떠들며 진행돼서도 안 되지만, 각자가 시위의 목적과 정신만 잘 가지고 있다면 결국 단결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양분돼 대립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박상훈 학교장은 “다양한 목소리를 낼 때, 발전된 시민 문화를 지키기 위해 기존 정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세월호처럼 사회 전체가 안타까워하는 사안도 진보, 보수로 양분돼 정치적인 이슈가 돼버렸는데, 그 때처럼 사회가 양분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위 문화가 위의 지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인 판단을 더해 소수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훈 학교장은 “언론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폭넓은 시각으로,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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