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박근혜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은 1%(18일 기준, 한국갤럽)로 사상 초유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20대 대학생 중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가 전무하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통계 수치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교정과 거리에서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19일 홍대입구역을 출발해 광화문을 향해 행진하는 대학생들이 줄곧 내뱉었던 구호다. 대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민주주의 유린에 분노하며 전국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 대학에는 시국선언문이 나붙고, 시위 한가운데에 각 대학의 총학생회기가 펄럭이고 있다. 지난 12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던 ‘전국 대학생 시국대회’에는 약 1만5000명의 대학생들이 운집했다. 대학생들은 1987년에도 민주화를 위해 행동했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행동하고 있다.

2016년 대학생 시국선언 이모저모
  혼란한 시기에 목소리를 내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시국선언’이다. 시국선언의 역사는 1960년 4·19 혁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반발해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이에 반발한 대학생과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며 저항에 나서자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결국 하야했다. 이후 시국선언은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당대 현실을 비판하는 창구로 활용됐다. 1974년 문학인 101인이 유신 치하에서 목숨을 내놓고 시국선언을 했다. 이어 1987년에는 전두환 군부정권의 4.13 호헌조치에 반발한 대학·사회·노동·종교 등 각계 단체에서 시국선언이 나오고 거대한 민주화 항쟁을 만들어냈다.

  현재(18일 기준) 본교를 포함해 전국의 약 145개의 대학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정유라 씨의 입학과 학사 비리 문제가 불거진 이화여대가 10월 26일 시국선언 릴레이의 첫 주자였다. 서울권 대학을 비롯해,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었던 경상권 대학들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대학의 특성을 살려 시국선언을 한 대학들이었다. 한예종 학생들은 전통굿을 통해 시국을 풍자하는 ‘시굿선언’을 했다. 동아방송예술대 학생들은 ‘레미제라블'의 수록곡인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를 개사해 합창하고 직접 만든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외대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10개 언어로 작성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에서 10개 언어로 돌아가며 낭독했다. 이슬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외국어대의 특성을 살리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외국에 널리 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국선언, 아프니까 청춘이다
  모든 시국선언이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본교와 서울대는 지난 10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학생들의 반발로 철회했다. 연세대 역시 시국선언문 발표를 위한 의견 수합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본교의 경우, 다른 정치적 의제를 배제하고 ‘박근혜 퇴진’이라는 현안에만 집중하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거셌다.

  몇몇 학교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시국선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제대 총학생회(회장=하창수)는 10월 31일 페이스북에 “시국선언이 자칫 정치적 선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학생회는 정치적 중립임을 밝힌다”고 게시해 논란을 샀다. 결국 인제대 총학은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인제대의 시국선언은 지난 3일 ‘나라를 걱정하는 인제대 학생 일동’에 의해 별도로 진행됐다.

  시국선언으로 학교 본부와 마찰을 일으킨 대학도 있었다. 서경대의 경우 학생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서경인들의 모임’을 결성해 시국선언을 하자, 학교 측에서 학칙에 위배된다며 징계하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로 서경대 학칙 11장 학생활동 65조에 따르면 교내·외 10인 이상의 집회를 할 때 목적·개최일시·장소·참가예정인원 등을 명시해 사전에 총장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시국선언을 한 송치윤(서경대 법학16) 씨는 “정치적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비민주적인 학칙이라고 생각하며, 시국선언에 대해 소극적인 총학에 대해서도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다양한 진통을 겪었다. 모든 대학생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없기에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허인혜(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의사를 어디까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있어 모두가 공감할 순 없다”며 “내용에 대한 비판과 이런 공방이 자유롭게 전개되는 분위기는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갈등과 함께 합리적인 토론의 과정이 수반돼야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다른 의견을 가진 여러 단위의 학생들이 시국선언문을 합의해 작성하면서 실제 ‘정치’를 배우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선언을 넘어 행동으로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시국선언을 넘어 다양한 행동으로 구체화 됐다. 전국 대학생 1만 5000명은 12일 거리에 모여 ‘전국 대학생 시국대회’를 열고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했다. 2015년 청년총궐기에는 1500명의 대학생이 모였던 것과는 비교되는 수치다.

  또한 동맹휴학처럼 수업을 거부하는 단체행동을 통해 저항을 표출하기도 한다. 동맹휴학은 학생들이 교육 또는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벌이는 집단적인 등교·수업 거부 운동이다. 1차 동맹휴학은 ‘인권네트워크 사람들(사람들)’의 주도로 10일과 11일 양일에 걸쳐 이뤄졌다. 1차 동맹휴학에 참여한 대학은 서강대, 성균관대 등 5개 대학이고 약 150여 명이 참여했다. 1차 동맹휴학에 참여한 최새흰(성균관대 국문15) 씨는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진 못한 것 같다”며 동맹휴학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길 바랐다.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관계자는 “숙명여대와 성공회대가 총학 차원에서 동맹휴학에 관한 의결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며 “동맹휴학의 문제의식이 보다 확산돼 더 많은 학우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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