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작가 장지우는 ‘지우맨(ZEEWOOMAN)’이라는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창조하고 실현해내는 연속적 예술 작전으로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자전의 제목은, <지우맨 / 프로젝트: 비 더 히어로(Zeewoman / Project: Be the Hero)>다.

2014년 영등포의 신생공간 커먼센터에서 국내 데뷔 개인전을 열 때, 전시 제목이 <지우맨의 탄생(The Beginning of ZEEWOOMAN)>이었는데, 당시 그는 꽤 그럴듯한 설치 작업을 ‘망상의 장치’로 제시해 관객을 은근슬쩍 제 프로젝트에 동참시켰다.

평범한 오타쿠 남자 청년의 방처럼 꾸며진 곳에 발을 들이면, 만화책과 피겨 등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책상의 서랍을 열어봐도, 휴지통을 들춰봐도, 미장센이 제시하는 리얼리티의 해상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놓은 뭔가가 튀어나왔다.남의 방에 들어온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책장을 살펴보면, 이게 새로운 공간으로 연결되는 슬라이딩 도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통로를 지나 어둠 속으로 나아가면, 제시되는 것은 지우맨의 비밀기지. 즉, 본격적인 망상의 공간이다. 공들여 꾸민 세트에 감탄하며 지우맨의 슈트 등을 살펴보다가, 지우맨의 자리로 제시된 콘솔 앞의 의자에 앉으면, 일본의 특활물 문법을 빌려 2차 창작한 것처럼 뵈는 영상을 통해, 지우맨의 활약상을 시청하게 된다. 공룡 인형에 맞서 싸우는 지우맨 에피소드의 배경은, 역시 커먼센터의 옥상과 인근 영등포의 공장 골목.

이후 서서히 지우맨의 활용성을 확장해나가던 장지우는, 지난 10월 28일 오전 7시 30분, 대안공간 탈영역우정국에서 <민메이어택 리-리-리캐스트: 지우맨의 고백>을 공연했다. 일본어로 진행된 이 모노드라마는, 강연 형식의 퍼포먼스였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제 직업의 면모를 일일이 해석했다.

한데, “지우맨의 고백”은 <가면의 고백>을 참조적으로 지시하는 것이고, “민메이어택 리-리-캐스트”는 피겨를 통해 문화의 인용과 재인용 등을 반복하는 상황을 비평적으로 포집해냈던 작가 겸 기획자 돈선필이 2016년 신생공간 시청각에서 열었던 개인전의 제목이다. 즉, 이는 돈선필의 연출로 전개된 ‘살아있는 피겨의 공연’이기도 했던 셈. 하면, 고백하는 주체는 장지우인가? 아니면 돈선필인가? 혹시, 이 시대의 2차 창작 문화의 어떤 상징적 인터페이스/프로토콜이 고백하는 상황이라고 우길 참이었을까?

그러면 장지우는 왜 이런 작업을 할까? 그 답은 그가 영국 유학 시절에 전개했던 작업에 있는 것 같다. 2011년의 <고립(isolation)> 연작은, 공공장소에서 그가 일인 플래시몹처럼 뵈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기록한 영상들을 중심으로 한다. 영상 기록을 보면,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즉, 장지우의 초기 수행 프로젝트는, 백인종 중심의 사회에서 성적 주체로도 간주되지 않는/못하는 동아시아계 남성의 특성을 바탕으로 했던 것.

지우맨이라는 상징 형식도, 그가 자신을 효과적으로 재고립시키고, 그를 통해 사회화될 길이 마땅치 않은 어떤 남성성을 비평하기 위한 장치로 고안될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작가는 육군 특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굳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던 내 M2F 트랜스젠더 친구가 떠올랐다.

임근준 AKA 이정우,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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