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13:55 (일)
우리가 걸을 때마다 더 많은 목소리가 함께한다
우리가 걸을 때마다 더 많은 목소리가 함께한다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6.11.27 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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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주권찾기 깃발을 선두로 참가자들이 '박근혜는 하야하라'를 외치며 강남대로에서 행진하고 있다.
▲ 강남역 11번출구 옆 스테이지에서 한 대학생이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 가면을 쓴 한 대학생이 흰 피켓과 촛불을 들며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김지현 기자, 친기즈 수습기자 press@
“박근혜는 하야하라. 국민주권 다시 찾자. 국가주인 국민이다. 나라꼴이 엉망이다. 우리가 주권자다.”
 
24일 목요일 밤 8시 강남 한복판에서 분노에 찬 참가자들의 구호가 크게 울려 퍼졌다. 원래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겁게 거닐고 있을 이 강남거리를 그들은 진정한 국가 실현을 위해 거친 입김을 내뿜으며 행진하고 있었다.
 
 
오후 5시. 네다섯 명의 학생이 메모판을 들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돌렸다. 전단지에는 이날 진행될 시위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학생들은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숨은주권찾기’라는 단체의 일원이다. 숨은주권찾기는 지난 10월 30일 서울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시위대가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의 영향을 받은 서울대학교 학생 6명이 모여 만들기 시작한 단체다. 이후 홍보활동 등으로 약 80명으로 이뤄진 단체를 꾸리게 됐고 숨은주권찾기는 이날 24일 2차 시위 전 지난 15일 강남, 신촌, 대학로, 청량리 등 총 4곳에서도 약 1400명이 참가한 1차 시위를 이끌었다.
 
“저희에게 딱 1분 만이라도 투자해 주십시오. 현 시국에 대해 한마디만 써주시면 됩니다.” 검은색 긴 코트로 추위를 막고 당당히 마이크를 든 한 남학생은 넉살스럽게 시민들에게 다가가 종이를 건넸다. 그는 현 시국에 대한 생각을 종이로 표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적극적인 그의 태도에 시민들은 조금씩 눈길을 주며 관심을 보였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시위 홍보에 열중인 학생들을 한 여성이 바라보고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그는 26일에 있을 촛불집회를 알리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인 성정림(여‧35) 씨는 “청년들이 추운 날씨에 나와서 적극적으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고맙기도 하지만 마음 한 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오후 6시. 해는 저물어가고 어느새 11번 출구 앞에는 학생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참가자가 한명 한명 올 때마다 숨은주권찾기 학생들은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시위 참가에 필요한 흰색 가면, 촛불, 방석, 그리고 핫팩도 나눠줬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전달하고 담소를 나누며 어느새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고 했다. 이은지(여·22) 씨는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는데 고집불통인 것 같다”며 “답답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 떨려오는 손으로도 자신의 굳은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약 80명의 참가자들은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 모여 하얀 피켓을 들었다.
 
본격적인 시위활동이 시작되는 오후 7시가 되자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 숨은주권찾기 단체원들은 지난 1차 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발언 시간을 진행했다. 한 남학생은 당당히 자유발언 무대로 나와 현 시국에 대해 격정적인 어조로 비판했다. 최지규(한국외대 아랍어12) 씨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이 8글자만으로 시위 참가의 동기는 충분하다”며 “10월 29일 있었던 총궐기부터 비정상인 정권, 비정상적인 대통령을 정상화하자는 간절한 바람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자신을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자 소시민이라 소개한 한 대학생 여성은 “어려운 현 시국에서 벗어나 나도 평범하게 취업 준비하고 연애도 하며 과거의 희망했던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와중에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갈수록 바람까지 거세져 참가자들이 쥐고 있던 촛불이 하나둘씩 꺼지기도 했다. 그때 참가자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불을 지른 학생이 있었다. 그는 정유라가 나온 청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유라라는 선배 때문에 우리 학교에는 많은 기자가 매일같이 찾아옵니다. 친구들은 대학교에 제대로 진학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불안해야 하는 겁니까. 하루빨리 죄를 뉘우치고 자리에서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발언 중 감정에 복받친 그는 울먹이며 발언을 이어갔다. “대통령이 하야하고 최순실이 투옥되고 정유라가 죄를 뉘우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진풍경을 볼 수 있게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끝이 나고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며 행진 구호를 정했다. 참가자들은 자리에서 줄을 맞춰 일어나 행진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강남역 11번 출구를 시작으로 신논현역을 거쳐 다시 강남역 10번 출구로 되돌아왔다. 행진을 하는 약 40여 분 동안 다양한 시민들이 시위 참가자들을 바라봤다. 신논현역 근처를 지날 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다가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수고하세요”라고 응원을 보내는 시민들도 많았다. 시민들의 독려 때문이었는지 시위 분위기는 한껏 뜨겁게 고조됐다.
 
 
힘 붙은 시위 참가자들은 서로가 가져온 무거운 짐을 나눠 들고 바꿔 들며 더욱더 힘 있는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친구들과 강남 거리를 거닐다 행진하는 줄 뒤에 붙어 같이 행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 초라도 시위참가자들과 같이 달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 행진하는 내내 참가자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거리를 걸었다. 그들은 서로를 끝까지 따뜻하게 바라보며 위로했고 약속한 종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실제 그 위로를 입 밖에 내놓았다.
 
“수고하셨습니다.” 10번 출구에 도착하고 이날의 시위는 끝이 났다. 추위로 벌겋게 달아오른 참가자들의 볼엔 흐뭇한 주름이 그려졌다. 한 참가자가 말했다. “다음에 또 봐요.” 다른 한 참가자가 옆에서 답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고 싶진 않네요.” 다른 참가자 중 일부는 “이번 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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