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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무뎌진 사회 … 병원 접근성 높여 적극 치료해야
자살에 무뎌진 사회 … 병원 접근성 높여 적극 치료해야
  • 심기문 기자
  • 승인 2016.11.27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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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그래픽 | 허윤 기자 shine@
‘하루 37명 극단적 선택…자살률 12년째 OECD 1위’, ‘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 치료 못 받는 나라’
 
자살과 우울증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기사들에 무뎌져서일까. 자살은 어느새 사회에서 심각하지 않은, 익숙하고 당연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인 우울증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도움을 받으면 이겨낼 수 있는데도,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고민을 하고 있다.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그래픽 | 허윤 기자 shine@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
우울증과 자살은 높은 연관성이 있다. 2015년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진행한 121건의 심리부검 결과, 자살자 121명 중 88.4%가 우울증을 겪는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이헌정(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인지에 왜곡을 가져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한다”며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기웅(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2011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12.5%가 ‘확실한 우울증(definite depression)’을, 30%가 ‘유력한 우울증(probable depression)’을 겪고 있다. 확실한 우울증으로만 계산해도 600만 명 이상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함병주(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환자의 약 10%~15%가 자살을 시도한다고 연구됐다”고 말했다.
 
1차 의료기관의 역할 중요해
우울증은 치료를 받으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다. 우울증 치료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로 나뉜다. 정신건강 문제로 정신과에 내원한 경우 면담과 심리검사를 통해 우울증의 정도와 양상을 파악한 후 심한 경우 입원치료까지 해야 한다. 보통의 경우는 내원치료를 받으며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함병주 교수는 “초기 약물 치료가 실패하더라도 진단과 처방을 다시 하면 대부분 환자는 3개월 내에 호전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울증은 치료를 통해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과와 약물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 우울증 치료가 어렵지 않음에도 치료받는 비율은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울증 치료를 어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자살예방센터 정택수 센터장은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진료 기록이 남는데, 이를 꺼려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이헌정 교수도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에서 불이익이 있는 경우도 있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우울증을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으로 여기려는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경향도 우울증을 치료받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함병주 교수는 “인식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정신과 약물 치료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강조된다. 우울증은 흔히 일상생활에서의 불편을 동반하는데, 그 때 부담 없이 찾는 곳이 가까이 있는 1차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심리부검 결과 사망 전 1차 의료기관을 찾은 자살자는 전체의 28.1%로, 사망 한 달 이내 정신의료기관을 방문한 자살자 비율인 25.1%보다 높았다. 자살률을 낮추는데 성공한 핀란드는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에게도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함병주 교수는 “본교 안암병원에서도 모든 입원환자들에게 우울증에 관해 조사하고 있다”며 “이러한 조사가 의료기관 전체로 확산된다면 자살 예방, 우울증 관리 효과가 더욱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SSRI 항우울제 규제 완화 논란
최근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라는 항우울제 처방 규제를 둘러싸고 정신과 의사와 비정신과 의사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SSRI 항우울제는 항우울 뇌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최대한 오래 뇌에 남아있게 하는 방식으로 우울증을 치료한다.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과거의 항우울제에 비해 다른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세로토닌 농도에만 영향을 미쳐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정신과에서 SSRI 항우울제를 처방할 수 있는 기간이 60일로 한정돼 있다. 비정신과에서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함병주 교수는 “타과에서 전문적 치료 없이 항우울제만을 장기처방 할 경우 무분별하게 항우울제를 처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특히 우울증이 조증으로 전환되는 경우 치료과정에서 자살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SSRI 항우울제에 규제를 두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비정신과 의사들이 70% 이상의 우울증 환자를 진료한다. 정신과에서는 약물 치료가 힘든 30% 정도의 환자들을 주로 진료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의사 중 97%를 차지하는 비정신과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없다. 홍승봉 교수는 “SSRI 항우울제 처방 제한 후 우울증 환자들의 병원 접근성이 30분의 1로 떨어졌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우울증 치료가 어려워지면서 2002년 3월 처방제한 후 자살률이 2배 이상 급증했다”고 말했다. 자살률이 높았던 북유럽 국가에서는 SSRI 항우울제가 쓰이기 시작하며 사용량이 증가한 만큼 자살률이 줄어들었다. 홍승봉 교수는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SSRI를 우울증의 첫 번째 치료제로 쓰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규제로 인해 SSRI보다 부작용이 훨씬 많고 위험한 삼환계 항우울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승봉 교수는 “우울증상이 완전히 없어진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까지 항우울제를 투여해야 하지만, 처방제한으로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하루 37명이 자살로 생명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SSRI 처방 제한을 폐지하고 모든 진료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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