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저녁, 대흥역 인근 카페에서 ‘평화를 고민하는 지구인들의 송년회’가 열렸다. 이주민을 돕는 본교 중앙동아리 레인보우스쿨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난민’이라는 주제로 화합과 연대를 꾀했다. 이 자리에서 ‘헬프시리아(Help Syria)’ 압둘 와합(Abdul-Wahhab) 사무국장은 “시리아 사람들은 죽음을 피해 난민이라는 차악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 행복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難民)은 인종, 종교 등의 이유로 본국에서 살 경우,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타국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현재 한국에서 난민 지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580여 명이다. 사실상 난민으로 간주하는 ‘인도적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1500명을 웃돈다.

 

▲ 그래픽 | 김선희 기자 hee@

되기 어려워서 난민(難民)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하며 공식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난민지위를 인정한 것은 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10년만인 2001년이다. 이후 난민인정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작년엔 105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신청자 수는 매해 급증하는 데 반해 인정자 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인정률은 3.8%에 그친다. 이는 법무부가 난민에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것을 방증한다. 난민인권센터 류은지 팀장은 “난민협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있던 ‘외국인 출입국 관리’의 통제 개념이 남아있어 ‘난민’에 대한 법무부의 인식이 호의적이진 않다”고 말했다. 

  난민제도를 남용해 국내 체류기간을 늘리려는 불법체류자들로 인해 난민 인정이 절실한 난민신청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난민인정절차는 서면 및 대면 인터뷰, 난민인권위원회의 심사 등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난민인권위원회는 1년에 4번 열리고 이 과정에서 소수의 난민인권위원들이 수천 명에 달하는 난민신청자들의 서류를 본다. 이러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지고 난민인정자의 수도 많지 않다. 1차 심사에 불복하면 이의신청, 행정소송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난민인정까지 3~4년 정도 걸리는 것이 다반사다. 류은지 팀장은 “절차가 미흡해 기간이 연장되면서 이를 남용하는 불법체류자들이 많아졌다”며 “절차의 문제에 따른 부작용을 난민신청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난민신청 자격을 입국 전에 심사하는 ‘회부심사 과정’에서도 허점이 있다. 회부심사는 난민 신청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심사기회를 줄 것인지를 정하는 단계다. 회부심사는 입국시에 공항이나 항만에서 난민신청을 한 사람에 한해 실시된다. 회부 결정을 받으면, 입국허가 혹은 조건부 입국허가를 받고 난민법상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받아 취직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회부심사에 대한 이의신청제도는 따로 있지는 않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박혜경 씨는 “심사기준이 분명치 않고 보수적으로 심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불회부 판정을 받으면 소송을 제외하고는 다시 기회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불회부 처분 후 머물게 되는 송환대기실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불회부 결정을 받으면, 통상적으로 입국불허처분을 받은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송환대기실에 구금된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머물게 되는 송환대기실은 관련 실정법 없이 운영되고 있다. 그곳의 외국인들은 햄버거 혹은 빵 한 조각만 먹을 수 있으며 그마저도 수량이 부족하면 받지 못하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박혜경 씨는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받도록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고 운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 그래픽 | 김선희 기자 hee@

두 얼굴의 인도적 체류허가
  ‘난민’의 지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난민 지위 대신, 보충적 지위인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게 된다. 정부 당국은 난민협약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난민을 인정하는데, 이 때 인정되는 난민은 해당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돼 ‘법정난민’이라고 부른다. ‘법정난민’으로 인정되기 위해선 난민협약에서 정의된 5가지 기준 중 적어도 한 가지에 부합해야 한다. 난민협약은 난민을 제1조에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내전’은 이 5가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단적인 예는 시리아인의 난민신청이다. 2015년 한 해에만 내전을 피해 400여 명의 시리아인이 한국으로 입국해 난민신청을 했지만 그들은 난민 지위를 얻지 못했다. 대신 대부분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됐다. 류은지 팀장은 “기존 난민협약에서 규정하는 난민의 범위가 협소해 인도적 체류허가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보충적 보호의 개념으로 기존의 난민 정의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보호받을 만한 사유가 있는 자에 한해 ‘사실상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도적 체류허가는 난민보다 한 단계 낮은 지위다. 최근 체류기간이 1년에서 3개월로 더 짧아져, 그들의 지위는 더 불안정해졌다. 또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다보니,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병원에 가지 못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인도적 체류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 없어 저소득층으로 편입되지만 아동 수당 지원, 건강보험 가입 등이 제한된다. 한편, 난민의 경우 배우자와 직계 가족이 모두 난민으로 인정되는데 반해, 이들은 가족결합이 적용 되지 않아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거주하지 못한다.

  장복희(선문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 법은 난민의 정의를 난민협약에 근거해 좁은 의미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난민의 범위를 넓혀 난민과 유사한 자들을 보호하도록 해야 하며, 난민개념을 세분화해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그래픽 | 김선희 기자 hee@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난민이 되면 투표권을 포함한 정치적 권리를 제외하고, 한국인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의료보험,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한국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도록, 한국어, 한국문화 등에 대한 재교육 역시 실시된다.

  하지만 한국의 난민지원제도는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보니, 재한난민 중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 상태에 있다. 캐나다는 난민들의 자격증과 경력을 법적으로 인정하면서 고급 인력을 캐나다 사회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재한난민들은 자국에선 전문직에 종사했어도, 한국에서는 공장노동자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난민은 3년의 체류기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장해야 하는 등 불안정한 신분이어서 안정된 직업을 가지기 힘든 것이다.

  난민 출신인 욤비 토나(Yiombi Thona, 광주대 자율융·복합학부) 교수는 “600여 명에 달하는 난민 중에서 고작 1명만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모두 빈곤상태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한국어 교육, 직업 알선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난민법에는 취업허가와 재교육에 대한 정부의 의무를 추상적으로만 명시하고 있어 실질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토나 교수는 “재교육은 단기간에 겉핥기식으로만 이뤄지고, 취업에 대한 가이드 없이 한국말도 못하는 난민들이 취업시장으로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난민신청자는 매년 늘어나 올해 5711명을 기록했다. 2016년, 난민 관련 예산은 450억 원에서 85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1월부터 난민신청자에게 지급되는 기초 생계비와 지급 범위 역시 소폭 증가했다. 난민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난민의 모습은 동정과 선정으로 소비된다. 공익법센터 어필 진유선 활동가는 “난민을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하거나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필 윤지수 활동가는 “난민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 내전 등에 대한 전지구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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